
섬진강 상류의 아늑하고 평온한 천담마을이 고향인 저는 좌우로 나지막한 푸른 산들이 병풍을 이루고, 산 아래엔 시원하게 흐르는 맑은 강 사이에서 살았습니다.
부모님께서는 몇 평 안 되는 좁은 텃밭에 채소 농사를 지으셨는데, 우리 가족들이 매일 먹는 싱싱한 채소는 모두 여기서 난 것들이었죠. 그러다 몇 년 전 아버지를 먼저 보내신 엄마는 혼자서 적적하게 지내시다가 대도시에 사는 오빠네로 올라오셨습니다.
하지만 도심 속 회색 콘크리트덩이 아파트 속에 지내시는 게 꼭 갇혀 사는 것 같다며 갑갑해 하셨고, 결국 다시 고향으로 내려가셨습니다.
그리곤 “농사꾼에게는 역시 밀짚모자와 호미가 어울리는 것이여. 그동안 내 몸에 맞지도 않는 구두 신고, 마트에 가서 시금치 한 단, 상추 한 주먹 사다 먹으면서 내 맘이 편치 못혔다. 아무리 그래도 내 손으로 농사지어야, 니들 헌티도 싱싱한 자연을 그대로 맛보게 해줄 수 있지 않겄냐”라고 말씀하시고는 다시 밭농사를 지으셨죠. 그러던 중 한 번은 무 농사를 지어서 쌀자루 한 가득 보내주셨습니다.
기껏해야 소고기를 넣고 끊인 무국이나, 고등어 조림할 때 밑에 까는 정도로만 무를 요리할 줄 알았기 때문에, 요리하는데 많은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그래도 싱싱할 때 먹어야 할 것 같아서, 처음에는 무생채도 해먹고, 무국도 끓여 먹고 했습니다. 하지만 무 하나가 팔뚝만한 것이 얼마나 큰지, 한 개를 가지고 몇날 며칠을 해먹었습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쌀자루 안의 무는 좀처럼 줄지를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엄마가 힘들게 농사 지어 보내신 무를 내다 팔수도 없었기에, 먹어도 먹어도 줄지 않는 쌀자루 안의 무를 볼 때면 한숨부터 나왔습니다.
일단은 오래 두고 먹기 위해서 바람이 잘 통하는 베란다에 두고, 깍두기를 시도해 봤습니다. 그런데 제대로 맛이 안 나더라고요.
남편이나 아이들은 무만 봐도 속이 미식 거린다며 제발 당분간은 밥상에서 무를 안 보게 해달라고 할 정도였습니다.
하는 수 없이 먹다 남은 무는 신문지에 싸서 냉장고에 넣고, 많은 날을 보냈습니다. 한 달쯤 지났을까요? 이젠 무국을 끓여도 괜찮겠지 싶어서 잊고 있던 먹다 남은 무를 냉장고에서 꺼냈는데, 반 토막 남은 무에는 싹이 돋아있었고, 반으로 잘라보니 바람이 들어 푸석푸석했습니다.
우선 급한 대로 바람이 덜 든 건 따로 골라놓고, 더 이상 못 먹을 것 같은 무는 차마 버릴 수가 없어서 반을 자른 페트병에 물을 담고, 무를 잘라 담아, 화분을 만들어 집안 곳곳에 뒀습니다.
그러자 곳 싹이 나서 그 어떤 화초보다 예쁜 모습으로 자라주었습니다.
무를 생각하면 지금도 속이 상하지만, 앞으로 다시는 이런 일을 만들고 싶지 않아 깍두기를 비롯한 각종 김치 담는 법을 배우고 있습니다. 열심히 배우고 익혀서 이번에는 꼭 제가 엄마께 김치를 담가드릴 겁니다.
From. 조숙미|인천시 계양구
행복한 아침, 왕영은 이상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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