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100번씩 후회하는 발레리나 인생 무대 서면 사르르…발레리나 김주원

입력 2009-12-14 13:5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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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레리나 김주원. 사진|박화용 기자 inphoto@donga.com

발레, 아름다운 라인 만드는 예술 날씬해서 부럽다고요? 아침마다 온몸 쑤시는 힘든 일
노래없는 뮤지컬 ‘컨택트’위해 처음으로 ‘호두까기…’포기 ‘또 다른 예술’ 벌써부터 설레요
꽤 오래 전의 이야기.

행사 취재를 갔다가 우연히 발레리나들을 보았다. 발레리나들은 재잘재잘 수다를 떨며 대기실로 들어오더니 바닥에 주저앉아 몸을 풀기 시작했다.

그 유연한 몸과 도도한 품격이라니! 문어와 백조를 조합한 판타지 세계의 생물을 보는 듯했다.

발레리나들이 몸을 푸는 모습을 훔쳐보았다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횡재를 한 기분이었다.

이 이야기를 했더니 김주원(32) 씨가 씁쓸하게 웃었다.

“간단한 스트레칭이었을 거예요. 저희가 몸 푸는 모습을 보신 분들은 다들 가슴 아파하세요. 너무 힘들게, 숨이 턱까지 차면서 하거든요. 코스가 있는데, 그거 다 하고 나면 체력이 극한까지 소모돼요.”

김 씨는 “발레리나는 정말로 백조”라고 했다.

물 위의 우아한 모습 아래로는 쉼 없이 물질을 해대는 발이 있다. 백조보다는 대부분 오리를 예로 들긴 하지만.

김 씨는 한국발레를 대표하는 국립발레단의 간판스타다. 국립발레단에 입단한 것이 올해로 12년째. 그런데 올 겨울은 그에게 특별하다. 연말이면 어김없이 공연되는 ‘호두까기 인형’ 캐스팅에서 빠진 것이다. 호두까기 인형에서 김 씨의 역할은 주인공 마리.

“호두와 함께 하지 않는 내 생애의 첫 해인 것 같다”고 김 씨는 말했다.

김 씨가 ‘호두’에서 빠진 이유는 뮤지컬 ‘컨택트’에 출연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발레리나가 뮤지컬을?” 할 법도 하지만 대답은 간명하다. “컨택트니까”.

‘컨택트’는 상당히 파격적인 작품으로 통한다. 이유는 ‘노래가 없는’ 뮤지컬이기 때문이다. “노래가 없는 뮤지컬이 어디 있냐”는 논쟁을 불러일으켰지만 2000년 토니상 뮤지컬부문에서 최우수작품상을 포함해 4개 부문 수상을 휩쓸었다.

‘컨택트’는 세 개의 에피소드로 구성돼 있다.

1·2장을 묶어 한 시간, 3장을 한 시간 공연한다. 중요한 3장 에피소드의 타이틀이 ‘컨택트’다. 김 씨는 이 3장에서 여주인공 ‘노란 드레스의 여인’으로 등장한다. 이 역은 해외에서도 주로 수석 발레리나들이 맡는다.

“이참에 아예 노래까지 연습해서 뮤지컬 쪽으로 정식 데뷔해 보는 건 어떨까요?”라고 물으니 “제 노래 한 번 들어보실래요? 그 말씀, 쑥 들어가실 걸요?”하는 대답이 냉큼 돌아왔다.

발레는 사람의 몸으로 표현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라인을 만드는 예술이다. 김 씨는 “발레는 몸의 아름다움만 감상해도 충분하다”라고 했다. 그 몸의 아름다움을 만들기 위해 ‘뼈를 깎는 고통’을 넘어선 ‘뼈와 근육이 뒤바뀌는 고통’과 싸우고 있다.

발레리나 김주원. 사진|박화용 기자 inphoto@donga.com


발레리나처럼 ‘억울한’ 예술가가 또 있을까. 생명 짧지, 늘 연습해야 하지, 몸 혹사하지, 부상 걱정 심하지, 못 먹지(김 씨는 여기에 ‘돈도 쪼금 받지’를 추가했다). 김 씨만 해도 평소 3~4개 작품을 동시에 준비한다. 매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연습. 주역들은 남아서 연습을 더 하는 게 보통이다.

공연 전막을, 본인 말로 ‘뛰고’ 나면 1.5kg이 쑥 빠진다. 의사 말로는 축구 한 경기보다 에너지 소모가 더 크다고 한다. 그래서 발레리나들은 잘 먹는다. 안 먹으면 기운이 빠지고, 체중이 너무 줄어서 안 된다.

“저희를 날씬하다고 부러워하는 여성분들이 많아요. 그런데 이거 아세요? 아침에 일어나면 발을 땅에 디디지도 못 할 정도로 힘들어요. 허리, 골반도 너무 아프고요. 눈 뜨면 침대에서 10분 정도 몸을 풀어야 겨우 내려올 수 있을 정도죠.”

“발레리나가 된 것을 후회하지는 않습니까?”

“하루에 100번 넘게 한 적도 있죠. 그래도 무대에서 춤을 추다 보면 다 잊어버려요.”

발레는 정말 자기가 좋아서 해야 한다. 김 씨는 자신을 우상으로 바라보는 발레키드보다는 정작 부모들에게 할 말이 많다. 너무 힘든 길이기에 억지로 시킬 수 없는 것이 발레라는 것. 재능이 뛰어나지만 지나친 압박감을 못 견뎌 중간에 그만 두는 아이들을 너무도 많이 봐 왔다.

“발레를 스포츠로 생각하는 분들이 의외로 많으신 것 같아요”라고 김 씨는 말했다. 발레리나 강수진 씨의 발이 화제가 된 일이 있다. 일그러지고 심하게 벗겨진 강 씨의 발은 사람들에게 인간승리의 진한 감동을 주었다.

“아우! 강수진 선배님 발 때문에 발레인구가 줄었다는 말이 있어요. 왜 보여 주셔가지고. 선배님 세대만 해도 저희보다 10년 위시거든요. 요즘엔 그 정도까지는 아니죠. 무용수마다 다르기도 하고요. 사실 강 선배님 발은 발레하기에 적당하지는 않아요. 그런 발로 그런 경지에 오르셨다는 게 놀랍죠. 사실 제 발도 안 좋아요. 이건 비밀인데 … (소근소근) 발가락이 손가락처럼 길어요.”

발레리나 김주원 씨의 뮤지컬 첫 나들이. 컨택트는 2010년 1월 LG아트센터와 고양아람누리에서 공연된다.

양형모 기자 ranbi@donga.com
사진 | 박화용 기자 inphot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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