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훈채 칼럼] 한국축구 16강에 관한 전망과 현실 사이

입력 2010-01-15 16: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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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한 달 동안 가장 많이 들었던 질문은 ‘한국이 16강에 진출할 수 있을까’였다.

송년회에 가든, 친구들을 만나든, 명절을 맞아 집안 모임에 가든 간에 그 물음은 흔해 빠진 연말연시의 덕담보다 더 많이 들었던 것 같다.

난 축구 전문가도, 점장이도 아니다. 그래서 그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난 그저 ‘글쎄요’라고 말하고 웃으며 머리를 긁적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4년 마다 찾아와 우리 축구 팬들을 괴롭히는 그 몹쓸 궁금증을 어떻게든 풀어볼 수 없을까 하는 마음에 한 번 고민해 보기로 했다.

먼저 우리는 솔직해질 필요가 있다. 논란의 여지가 있긴 하지만 한국이 아시아에서 가장 강한 팀이란 건 지난 20여 년 동안 충분히 입증된 사실이다. 그렇다고 해서 월드컵 무대가 호락호락하진 않았다. 그 동안 한국이 세계무대에서 겪어 왔던 수모는, 어떻게 보면 변방 아시아 대륙을 대표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치르게 된 신고식이었다고 할 수 있다.

월드컵은 6대륙 32개국이 참가하는 지구촌의 축제인 것처럼 잘 포장되어 있지만, 사실은 1930년 첫 대회가 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단 한 번의 예외 없이 유럽과 남미의 대결 구도로 유지되어 왔다.

아프리카와 아시아를 ‘끼워준’ 것도 54년부터였고, 그 이후 참가국 수가 24개국, 그리고 32개국으로 늘어나면서 겨우 네 다섯 팀 정도가 잔칫상 주변에 기웃거릴 수 있게 됐다.

이번 대회에서 한국이 속한 B조를 보면, 남미의 터줏대감 아르헨티나, 유럽의 신흥 강호 그리스, 아프리카의 거인 나이지리아가 포진해 있다.

다시 한 번 솔직히 말하자면, 이번에도 어려울 것 같다.

아니 실은 그 정도가 아니라, 지난 대회보다 훨씬 더 가능성이 낮다고 생각한다. 구체적으로 이야기하자면, 승점 1점만 거두어도 다행이다.

물론 이들 세 팀의 현재 상황은 그리 좋지 않다. 아르헨티나는 디에고 마라도나 감독의 지도력에 여전히 의문을 품고 있고, 조직력에 문제가 있는 나이지리아는 네이션스 컵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그나마 해볼 만 한 상대로 여겨지고 있는 그리스도 세대교체가 이루어지고 있어 어수선하긴 마찬가지다. 하지만 이런 문제들은 월드컵을 앞두고 있는 팀들이 겪게 되는 ‘통과 의례’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큰 의미를 부여하기엔 무리가 있다. 따지고 보면 한국도 그렇지 않은가.

대회가 시작되고 경기를 치르게 되면, 당일의 컨디션보다 대표팀이 자신의 경기를 펼칠 수 있는지가 더 중요할 것이다. 다른 팀들처럼 한국도 지난 수십 년 동안 만들어온 자신만의 색깔이 있다.

전술, 체력, 개인기 등 경기의 다양한 요소들이 오랜 실험과 단련을 통해 하나의 스타일로 자리 잡은 것이다.

한국 축구가 아르헨티나, 나이지리아, 그리스의 축구와 맞붙었을 때 과연 어떤 상호작용이 일어날지, 그 결과가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지금은 16강이라는 막연한 목표를 세울 게 아니라, 경기마다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고 좋은 모습을 보여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

조 3위로 예선을 마치면 선전, 16강에 진출하면 이변, 8강에 오르면 쾌거, 4강에 들면 신화가 되는 도전자의 위치에서 출발하는 것이 그리 나쁘지만은 않은 것 같다. 새해 초부터 어두운 전망을 내놓아서 송구스럽지만 너무 큰 기대를 걸었다가 실망하는 것보다 처음부터 마음을 비우는 게 낫다는 생각이다. 하지만 서운해 할 필요도 없다.

필자의 예상이 맞아 떨어진 적은 한 번도 없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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