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 그때 이런 일이] 저작권 없던 1978년 ‘동백아가씨’ 소송사건

입력 2010-11-03 07:00:00
카카오톡 공유하기
프린트
공유하기 닫기

가수 이미자(왼쪽)가 부른 ‘동백아가씨’는 ‘금지의 시대’에도 널리 인기를 모았고 창작자 사이에 송사까지 불러왔다. 위 사진은 영화 ‘동백아가씨’ OST. 스포츠동아DB

‘동백아가씨’는 한국 대중가요사에 길이 남는 노래다. 이 노래는 1963년 동아방송의 동명 드라마를 스크린에 옮긴 신성일·엄앵란이 주연한 영화의 주제곡이다. 이미자를 ‘엘레지의 여왕’에 등극시킨 대표적인 히트곡이다.

‘동백아가씨’는 영화의 연출자 김기 감독의 의뢰로 작곡은 고 백영호(2003년 작고) 씨, 작사는 한산도 씨가 맡았다. 한 씨는 백 씨와 함께 많은 히트곡을 발표하던 명콤비였다.

그런데 1978년 오늘, 작사가 한 씨는 절친한 동료인 작곡가 백 씨를 인장 위조, 횡령 등 혐의로 검찰에 고소했다.

한 씨는 ‘동백아가씨’ 등 백 씨가 작곡한 것으로 알려진 노래 가운데 100곡은 실제로는 자신이 만든 노래라면서 “작곡은 백 씨, 작사는 내 이름으로 하기로 하고 대신 작곡료의 30%를 받기로 했다. 양측의 양해 없이 작품을 팔 수 없다는 약속도 했지만 백 씨가 이를 어겼다”고 주장했다. 한 씨는 자신이 몸이 불편해 대중 앞에 나설 수 없어 이 같은 약속을 했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백 씨는 “내 곡의 일부에 한 씨의 도움이 있었지만 작곡 주장은 터무니없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검찰은 이 사건에 대해 “뚜렷한 증거가 없어 진실을 가릴 수 없다”고 결론을 내렸다. 하지만 일부 노래가 한 씨의 허락 없이 판매된 점은 인정했다. 이후 백 씨는 한 씨를 맞고소하기도 했다.

이 사건은 저작권 개념이 뚜렷치 않던 시기에 제기된 소송이어서 눈길을 모은다. 당시 ‘동백아가씨’는 1965년 ‘왜색(倭色)이 짙다’는 이유로 방송, 1968년에는 공연과 앨범 제작을 각각 금지당한 시기였다.

일부 연구자들은 ‘동백아가씨’가 1965년 한일협정에 반대하는 여론을 잠재우기 위해 ‘왜색 근절’이란 캐치프레이즈의 ‘희생양’이라고 주장했다. 정작 노래를 부른 이미자는 여론에 편승한 경쟁 레코드사가 당국과 결탁해 ‘금지곡’으로 묶은 것이라는 해석을 내놓기도 했다.

그 진실이 어떻든, ‘동백아가씨’를 둘러싼 창작자들의 송사는 서슬 퍼런 ‘금지’ 조치에도 불구하고 노래가 대중의 가슴과 가슴을 이어주며 정서의 힘으로 유통됐음을 어렴풋하게나마 읽게 한다.

윤여수 기자 tadada@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뉴스스탠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