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만 “고향땅서 부활!…태극마크 다시 품겠다”

입력 2010-11-24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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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유격수’ 박진만이 고향팀 SK에서 새로운 도전을 시작한다. 국내 정상의 유격수로 13년 동안 탄탄대로를 걸어온 그지만 “나는 예전처럼 정상의 선수가 아니다”라며 처음부터 시작할 뜻을 전했다. 스포츠동아DB

2000년대 최고 유격수 삼성 떠나 SK행…오늘 日캠프 합류 죽기살기 훈련 각오도
‘명품 유격수’ 박진만(34)이 삼성을 떠나 SK 유니폼을 입었다. SK와 KIA의 치열한 영입경쟁 속에서 고향팀 SK를 택했다. 박진만은 “새로운 팀에서 뛸 수 있게 해준 삼성에 감사하며 새롭게 도전하는 마음으로 내년을 준비하겠다”고 말했다.

박진만은 2000년대 최고 유격수다. 그는 현대와 삼성에서 6번의 한국시리즈 우승을 이끌었고 5번의 골든글러브를 차지했다. 박진만이 합류한 SK 내야진은 역대 최강으로 손꼽힐 만큼 탄탄하다.

문제는 최근 2년간 하락세를 보였던 박진만이 명품 유격수의 모습을 다시 찾을 수 있느냐 하는데 있다. 박진만은 자신감이 넘쳤다. “SK에서 뛸 수 있게 된 것은 나에게 엄청난 행운”이라며 신인 같은 마음으로 도전하겠다고 했다.

2011년은 박진만이 프로 데뷔 16년째가 되는 해다. 현대와 삼성에서 최고의 유격수로 활약했던 그가 과연 SK에서도 명품 유격수로 거듭날지 주목된다.


○나는 정말 운이 좋은 남자!

박진만은 자신을 “정말 운이 좋은 남자”라고 표현했다. 당대 최고의 멤버를 자랑했던 현대와 삼성에서 뛰며 6차례나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했다. 2005년 삼성에 입단하면서 40억원이라는 FA(프리에이전트) 대박을 터뜨렸고 2009년에는 24억원에 또 한번 3년 계약을 체결했다.

2000년 시드니올림픽부터 2008베이징올림픽까지, 그는 부동의 국가대표 유격수였다. 부와 명예를 모두 거머쥔 그에게 선수생활 마지막을 함께 할 팀은 챔피언 SK다. SK가 유격수 나주환의 군입대로 걱정하던 차에 박진만의 SK 입단은 팀과 선수 모두에게 최고의 선택이 됐다.

데뷔 당시부터 줄곧 그를 상징했던 등번호 7도 김재현의 은퇴로 자연스럽게 그의 차지가 됐다. 타이밍이 이렇게 잘 맞아떨어지기도 쉽지 않다. 만약 박진만이 내년까지 계약을 마치고 시장에 나온다고 가정해보면 올해 같은 대접을 받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박진만은 “삼성에 있었으면 주전으로 뛰기가 쉽지 않다. 아마 은퇴생각을 했을지도 모른다”면서 자신을 보내준 삼성에 감사하는 마음을 잊지 않았다. 인천고 시절부터 박진만은 행운이 따랐다. 2학년 겨울 연습경기 도중 외야수와 부딪히며 왼쪽 무릎 십자인대가 파열돼 수술을 받았다. 담당의사가 “운동 계속하면 불구가 될지 모른다”고 할 정도로 큰 부상이었다.

당시 연고구단인 태평양이 그에게 1억원을 제시했지만 박진만은 고려대에 진학하려고 했다. 1년을 유급하는 사이 현대 유니콘스가 창단됐다. 계약금이 3억원으로 뛰었고 김재박 창단 감독은 “주전 유격수로 출전시키겠다”며 자신의 등번호 7을 주겠다고 약속했다. 무릎 부상으로 병역면제 판결까지 받은 박진만은 망설임 없이 프로를 택했다.


○영원한 우상 김재박 감독!


MBC 청룡의 김재박을 보면서 유격수로 꿈을 키웠다. 김재박의 등번호 7을 학창시절부터 달았고 프로에서는 김재박 감독과 9년을 함께 했다.

김재박∼류중일∼이종범∼박진만으로 국가대표 유격수 계보를 이어온 그의 플레이는 김재박과 가장 닮았다. “올해 강진에서 2군리그를 할 때 김재박 감독님이 감독관으로 오셨어요. 그때 ‘아직 너만한 유격수 없다’며 기회가 올 테니 딴 생각 하지 말고 몸 열심히 만들라고 하시더라고요.”

박진만은 현재까지 김재박과 똑같이 5번의 골든글러브를 차지했다. 유격수 부문 최다 골든글러브 6회 수상이 내년시즌 그의 목표다.


▶Who 박진만?

○생년월일=1976년 11월 30일 ○출신교=서화초∼상인천중∼인천고 ○키·몸무게=177cm·78kg(우투우타) ○프로 데뷔=1996년 현대 입단(2차 우선지명) ○2010년 성적=46경기 131타수 31안타(타율 0.237) 1홈런 14타점 14득점 ○2010년 연봉=6억 원

○형! 공이 총알이에요!

일본 진출을 모색하고 있는 배영수와 얼마 전까지 함께 훈련했다. 롱토스를 하는데 딱 3년 만에 어깨가 아프지 않았다. 공도 시원하게 뻗어가고, 배영수가 “형! 공이 총알이에요”라며 격려해준다.

2007년 12월 베이징올림픽 아시아지역 예선을 마친 뒤 박진만은 어깨 부상을 당했다. 웨이트 트레이닝 도중 어깨가 끊어지는 통증을 느꼈다. 정규리그와 더불어 2000년 시드니올림픽부터 국제대회에 빠짐없이 참가한 그의 어깨에 이상이 온 것이다. 휴식이 필요했지만 쉴 수 없었다.

2008년 3월 올림픽 최종예선에 참가했고 올림픽 때는 주사를 맞아가며 금메달을 따냈다. 2009년 제2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은 도저히 참가할 수가 없었다. 어깨가 아프면서 무릎과 허리에도 부상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삼성의 팀 리빌딩에 맞춰 신인 김상수가 경기에 뛰는 횟수가 잦아졌고 박진만은 많은 시간을 2군에서 보냈다. “2군에서 쉬면서 몸상태가 좋아졌습니다. 어깨도 아프지 않고요. 이제 지난 2년 동안의 부진을 회복해야죠.”


○시헌이와 정호에게 도전합니다!

박진만은 2년 동안 벤치를 지키면서 많은 생각을 했다. 선수는 역시 뛰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 데뷔 후 13년 동안 탄탄대로를 달려온 그에게 지난 2년은 가시밭길이었다.

양준혁과 송진우 같은 대스타들이 “한번 벼랑에 서보면 야구가 얼마나 소중한지 알 수 있다”고 한말을 피부로 느꼈다. “이번 아시안게임 때 보니까 손시헌이나 강정호가 정말 잘하더라고요. 이제는 제가 후배들에게 도전해야죠.”

박진만은 22일 메디컬체크를 받고 24일 SK가 마무리 훈련을 하고 있는 일본 고지로 떠난다. “지금까지는 죽기살기로 훈련한 기억이 없다. 하지만 이제는 정말 그렇게 해야한다고 생각한다”는 게 그의 새로운 마음가짐이다.


○수비도 슬럼프가 있다!

2008베이징올림픽 결승전, 3-2로 앞선 9회말 1사 만루서 쿠바의 자랑 구리엘이 타석에 섰다. 그 순간 박진만은 “정대현의 슬라이더를 잡아당기면 유격수 땅볼이다. 대현아, 낮게…”를 외쳤다. 박진만은 구리엘의 스윙 궤도와 정대현의 슬라이더가 부딪혔을 때의 결과를 예상하고 있었다.

“나한테 온다고 생각했다. 위기나 결정적 순간에 항상 타구가 나에게 오기를 기다렸어요.” 그의 생각대로 결과는 유격수 땅볼이 됐고, 더블플레이를 성공시키며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올해 박진만은 평범한 타구를 놓쳤다.

선동열 삼성 감독은 정규시즌 도중 “박진만의 몸놀림이 예전 같지 않다. 불안하다”고 했다. 박진만도 “수비하면서 자신감이 없었던 적은 처음이에요. 공이 나에게 오지 않기를 바랐죠.” SK 내야는 현역 최강이다. 3루수 최정, 2루수 정근우, 1루수 박정권, 포수 박경완까지 물샐 틈이 없다. SK 내야 중심에 박진만이 섰다. 그의 명품수비가 재현된다면 SK 내야는 역사상 최강으로 기억될 것이다.


○잘 왔다! 같이 잘 해보자!


김성근 감독은 SK 입단을 결정한 박진만에게 “잘 왔다. 같이 잘 해보자”며 반겼다. 절친한 박경완도 “잘 왔다. 잘 해보자. 너도, SK도 운이 있다”고 했다. 박진만이 선수로서 가장 이루고 싶은 목표는 2000경기 출장이다. 통산 1639경기에 출장한 그가 2000경기를 목표로 잡은 것은 적어도 ‘앞으로 3년은 자신 있다’는 생각에서 비롯됐다.

그리고 2013년 WBC에 다시 한번 태극마크를 달겠다는 목표도 털어놓았다. 박진만은 “지금 나는 예전처럼 정상에 있는 선수가 아니다. 도전하는 마음으로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박진만이 국민 유격수의 모습을 되찾을지 여부는 프로야구 전체의 관심사다.

그는 현대와 삼성에서 6번의 한국시리즈 우승을 이끌었고 5번이나 골든글러브를 차지한 선수다. 지난 2년간 부진했지만 SK 유격수 박진만이 여전히 주목받는 이유다.

[스포츠동아 해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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