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영희기자의 호기심천국] 빈볼, 실수였다고? 90%는 작심하고 맞힌다

입력 2011-01-22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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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의일까, 실수일까’  SK 나주환이 시즌 중 투구에 맞아 괴로워하고 있다. 대부분 실수로 포장돼 있지만 야구 관계자들은 “빈볼의 90%는 무언의 메시지가 담겨있다”고 입을 모은다.스포츠동아DB

야구판의 시한폭탄 ‘빈볼의 막전막후’
몸 겨눈 직구에 담긴 무언의 메시지…
맞은 타자는 “일부러 던졌다”고 하지만, 그것을 시인하는 투수는 없다. 역으로 “손에서 공이 빠졌다”는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는 타자도 드물다.

한 시즌에 수도 없이 일어나는 빈볼시비. 모든 일에는 원인과 결과가 있고, 빈볼에도 무언의 메시지가 담긴다. 그리고 그것은 ‘은폐된 언어’이기에 내막에 대한 무수한 추측을 낳는다.

과연 빈볼의 막전막후에서는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을까.


○맞을 짓 한 타자, 허벅지에 보호 장구 착용하기도

빈볼은 야구의 불문율을 깼을 때 나온다. 큰 점수차로 리드하고 있는 상황에서의 도루, 상대를 자극하는 과도한 세리머니 등이 주요 목록에 올라있다.

때는 2004년. 미국 출신의 A팀 용병투수는 지금은 전설이 된 B타자에 대한 불만이 많았다.

그는 동료투수에게 “과도한 액션을 많이 한다. 상대에 대한 예의도 중요하지 않은가. 메이저리그에서는 저런 식으로 하면 바로 빈볼이 날아든다. 그런데 왜 한국투수들은 경고의 메시지를 주지 않는가?”라고 의문을 표시했다.

간판타자에게는 빈볼도 좀 더 신중하게 마련이다. 하지만 마침내 참을 수 없는 순간이 왔다. A팀 투수는 당시 상황을 이렇게 전한다.

“B선수 소속팀과의 경기였는데, 경기 후반이었고 우리가 크게 뒤지고 있었다. B선수는 2루 주자였다. 마침 유격수 땅볼이 나왔는데 우리 팀 유격수의 시야를 가리는 동작을 취하더라. 덕아웃에서는 ‘저건 아니지 않나’라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빈볼은 맞는 선수가 가장 잘 안다”는 말은 역시 진실이었다. 그것도 B타자는 공이 날아오기도 전에 이미 감지하고 있었다.

B타자의 다음 타석. 마운드에서 공을 만지작거리던 투수는 B타자를 보고 실소를 금치 못했다. 허벅지가 평소보다 두툼하게 부풀어 있었던 것이다. 빈볼을 예상한 B타자는 유니폼 안에 일종의 ‘보호 장구’를 마련했다.

A팀 투수는 “아마 스티로폼이나 뭔가 푹신한 것을 겹쳐 둔 것 같았다. 베테랑 선수인데 애처로운 마음이 들어서 그냥 맞히지 않았다”고 했다. 코칭스태프도 선수들을 진정시켰다. 하지만 A팀 선수들은 상대주축선수에게 보낸 ‘조소’만으로도 충분히 기 싸움에서 성과가 있었다.


○상호 용인하는 빈볼도 있다?


빈볼은 던지는 쪽도 사실 마음이 편하지 않다. 모 팀 투수코치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일부러 맞히는 것은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잘못 아닌가. 하지만 불가피한 상황은 분명히 있다. 우리 팀의 한 타자가 잘 치고 있었다. 그런데 그 타자가 다음타석에서 상대투수의 공에 맞았다. 우리는 전문가다. 대충 보면 일부러 던진 것인지 아닌 지를 안다. 이 때는 개인의 감정 차원이 아니라 팀워크의 문제다. 그럴 때 보여주지 못하면 바보 소리를 들을 수 있다.”

한국프로야구에서는 한 단계만 거치면 다 아는 선·후배 사이다. 빈볼을 던지는데도 용기가 필요하다.

한 투수는 “솔직히 미안하고 무섭기도 하다. 하지만 팀과 동료를 위한 행위라고 생각하면 용감해 진다”고 털어놓았다.

그런 점 때문에 상대 역시 용인하는 경우가 있다. 서울 팀에서 뛰다 은퇴한 C타자는 1군에 올라오자마자 빈볼을 맞았다. 그것도 평소 2군 시절부터 자신과 교류가 있는 투수에게…. 그 투수는 “C타자가 ‘감정이 있어서 그런 것은 아니잖나. 다른 사람은 몰라도 넌 괜찮다. 2군에서 네 볼 쳐서 1군에 올라왔으니…’라며 도리어 농담을 던졌다”는 비화를 전했다.

빈볼은 마구잡이 싸움이 아니기에 ‘경고의 메시지’면 충분하다. 머리 등 위험한 부위는 피한다.

하지만 마음을 먹었다면 ‘꼭’ 맞혀야 한다. 한 투수는 “타자가 피하는 것까지 고려해야 한다. 직접 타자를 맞힌다고 하기 보다는, 약간 뒤쪽을 겨냥한다.

다음 경기는 나올 수 있도록 위험한 부위는 피하되 전속력으로 던진다. 일단 타석에서 주저앉아야, 마운드로 올라와 싸움이 커지는 상황을 막을 수 있다”는 빈볼의 노하우(?)를 전했다.


○오리발은 확실히 내밀어라

지난시즌 거포로 자리 잡은 지방 모 구단의 타자는 홈런을 치고도 거의 전력으로 홈 플레이트까지 질주한다.

한 투수는 “지난 시즌 언젠가 그 타자에게 홈런을 맞았는데 살짝 손을 한 번 들었다가 나와 눈이 마주쳤다. 미안했는지 그 다음에는 다시 재빠르게 베이스를 돌더라”며 웃었다. 눈빛만으로도 서로의 마음을 읽은 것이다.

빈볼을 둘러싼 눈치싸움도 치열하다.

내막이 있다고 하더라도, 표면적으로는 투수가 가해자, 타자가 피해자다. 투수가 상대에게 ‘빈볼상황’을 들켰다면 철저한 ‘오리발’이 상책이다. 수도권 모 팀이 막강화력을 자랑하는 지방구단과 경기를 치렀다.

지방구단의 중심타자에게 빈볼을 던져야 하는 상황이었지만, 초구가 빗나가고 말았다. 타자가 대뜸 대들었다. “일부러 던진 것 아니냐”고. 투수는 “절대 아니다”라고 맞받아친 뒤, 결국 빈볼에 대한 마음을 접었다. 그리고 상황은 부드럽게 종결됐다.

제구력과 담력이 좋은 한 투수는 빈볼의 구종선택부터 남다르다. 보통 빈볼은 직구로 던지지만, 이 투수는 슬라이더를 활용한다.

상대타자가 “이거 빈볼 아니냐?”라고 하면, 어김없이 이런 대답이 돌아온다. “야, 빈볼을 변화구로 던지는 투수가 세상에 어디 있냐?” 타자는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1루로 향할 수밖에 없다.

한 포수는 “어떤 타자가 인터뷰 때 내 리드는 빤히 보인다고 해서 기분이 나쁘더라. 그렇다고 다 정타를 치는 것도 아니면서…. 배려가 전혀 없는 것 아닌가”라고 토로했다.

이렇게 예의 없는 짓을 했다면 일단 조심하고 볼 일. 하지만 빈볼을 둘러싼 논란은 야구가 존재하는 한 계속될 것이다. 때리는 쪽도 “없어져야 한다”고 하고, 맞는 쪽도 “필요악이다”라고 하는 경우가 있으니….전영희 기자 setupman@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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