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남자가 사는 법] 비공식 기록까지 합치면…‘2군 선동열’ 솔직히 창피해

입력 2011-03-23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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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 연고지명으로 계약금 500만원에 빙그레에 입단했다. 하지만‘2군 100승 투수’,‘2군 선동열’이라고 불리면서도 1군 무대와는 인연이 없었다. 사진제공|이은승 감독

1989년 연고지명으로 계약금 500만원에 빙그레에 입단했다. 하지만‘2군 100승 투수’,‘2군 선동열’이라고 불리면서도 1군 무대와는 인연이 없었다. 사진제공|이은승 감독

■ 2군 100승…정말 했을까?
은퇴할 때까지 1∼2군을 들락날락하는 엘리베이터 인생의 연속이었다. 2군과 달리 1군에서는 불펜 대기였다. 컨디션 조절이 쉽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다 자신의 준비 부족 탓인데 그때는 불만만 쌓였다.

남들은 이은승을 두고 “2군 100승 투수”, “2군 선동열”이라고 부르지만 솔직히 듣기 싫다. “부끄럽다. 2군 기록을 누가 기억해주나? 100승을 했는지는 정확히 모른다. 다만 비공식 경기까지 합치면 대략 그쯤 이겼을 것 같다는 짐작만 든다.” 1군에서 1승도 못해 사무치는 한으로 남을 뿐이다.

그렇게 1997년까지 버텼다. 될 듯 될 듯 하는 주변의 기대와 내면의 희망 때문에 야구를 그만둘 순 없었다. 그러나 아무리 바라도 안 되는 일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고질인 허리가 또 괴롭혔다. 그렇게 방황하던 무렵, 1997년 겨울 납회식을 끝난 뒤 구단의 호출을 받았다. 올 것이 왔다고 생각했다.

방출, 그리고 은퇴. 쌍방울에 갈 수도 있었지만 9년에 걸친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고독한 사투를 끝내기로 했다. 야구인명 사전조차 이은승의 은퇴를 기억하지 못한다. 1994년 자유계약선수 공시라고 잘못 기재하고 있으니까.
안산 | 김영준 기자 gatzby@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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