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영희 기자의 호기심 천국] 170km 벽도 깨졌다…구속 무한진화

입력 2011-04-22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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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움닫기 후 던지면 셋포지션보다 16km↑
전설의 외야수 클레멘테 구속 177km 추정

김시진 감독 “밸런스 깨지면 스피드 떨어져”
일부는 “또 한번 정지동작” 무용론 주장도
야구란 무엇인가(레너트 코페트著)’에는 이런 일화가 소개돼 있다. 1984년 메이저리그 올스타전. 아메리칸리그의 ‘강속구 투수’ 로저 클레멘스(당시 보스턴)는 타석에서 내셔널리그의 ‘닥터K’ 드와이트 구든(뉴욕메츠)을 상대했다.

구든의 직구위력을 실감한 클레멘스는 깜짝 놀랐다. 그리고 포수 개리 카터에게 자신도 구든 못지않은 직구를 갖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이후 클레멘스는 투구배합에서 직구를 최대한 활용했다. 그렇게 빠른 공을, 인간이 도저히 쳐낼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알고도 못 친다”는 강속구는 모든 투수들의 로망이다. ‘대한민국 에이스’ 류현진(한화)조차 스포츠동아 트위터 인터뷰에서 “새 구종을 장착할 수 있다면, 꼭 던지고 싶은 것”을 묻자, “170km짜리 직구”라고 답할 정도다. 마침내 20일, 아롤디스 채프먼(신시내티)은 106마일(170.6km)을 던지며 마의 170km벽을 깼다. 과연 인간은 얼마나 빠른 공을 던질 수 있을까?


○도움닫기 후 던지면 177km도 가능하다?


과학자들은 “만약 던지는 공간을 마운드 위로 한정하지 않고 순수하게 구속만을 측정한다면, 인간한계치는 더 높아진다”고 말한다.

‘야구의 물리학’에서 예일대 물리학과 명예교수인 로버트 어데어는 “외야수들이 달리면서 던지면, 투수가 셋포지션에서 던지는 것보다 시속 16km이상 이득을 본다”고 계산했다. 체육과학연구원(KISS) 송주호 박사(생체역학)는 “달리는 가속 덕분에 관성력(운동 상태를 유지하려는 성질)을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어데어의 추정에 따르면 메이저리그의 전설적인 외야수 로베르토 클레멘테가 라이트필드에서 달리면서 공을 던질 때의 최고속도는 시속 177km다. 시범경기에서 160km를 던지며 화제를 모았던 리즈(LG)도 “클레멘테라면 충분히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현역 시절 외야수와 투수를 모두 경험한 심재학(넥센) 코치도 투수(130km대 후반)일 때보다 외야수(140km대 중반)일 때 구속이 더 잘 나왔다.

이런 현상은 볼러(투수)가 도움닫기 후 공을 던지는 크리켓의 사례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크리켓대표팀 이화연(27) 주장은 “스핀볼러(변화구투수)가 약 5∼10m 정도만을 뛰어서 던지는데 반해, 패스트볼러(강속구투수)의 도약거리는 약 20m 정도 된다”고 했다.

말링다(스리랑카) 같은 볼러는 엄청난 주력을 활용해 사이드암으로도 150km 이상의 구속을 기록한다.


○도움닫기하면 구속증가? 밸런스 유지가 관건


김시진(넥센) 감독 역시 “투창을 생각해보라. 제자리에서 던지는 것과 달려오면서 던지는 것이 같은가. 구속차를 정확히 말하기는 힘들지만, 150km대 투수가 도움닫기 후 170km를 던질 수 있다는 것은 일리가 있다”고 했다.

하지만 김시진 감독은 단서를 달았다. “얼마나 밸런스를 잘 유지하느냐가 관건이다.” 바로 이 점 때문에 정민태(넥센) 투수코치와 양상문(전 롯데감독) MBC스포츠+ 해설위원 등은 “달리면서 던지면 몸이 많이 흔들린다.

밸런스가 안 좋은 투수의 경우에는 오히려 구속이 떨어질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그래서 외야수들도 스텝이 잘 맞아야 좋은 송구를 한다.

스포츠동아 이효봉 해설위원은 “투수가 2루에서부터 달려와서 던진다고 하자. 그 때 릴리스 직전 다리를 드는 동작은 어떻게 할 것인가. 힘을 모아서 던지려면 또 한번의 정지동작이 필요할 수 있다”며 아예 도움닫기 무용론을 주장하기도 했다. 리즈(LG) 역시 “나도 캐치볼 할 때는 도움닫기해서 던져보는데, 구속을 측정해보지는 않았지만 더 나오는 것 같지는 않다”고 했다.


○지난 100년, 시간이 ‘흐를수록’ 구속도 ‘늘었다’

남자 100m세계기록은 1912년 도널드 리핀코트(미국·10초6)부터 2009년 우사인 볼트(자메이카·9초58)까지 100년 간 1초가 줄었다.

남자마라톤세계기록 역시 1908년 존 하예스(미국·2시간55분18초)부터 2008년 하일레 게브르셀라시에(에티오피아·2시간3분59초)까지 100년 간 50분 이상 단축됐다. 리핀코트, 하예스와 동시대에 메이저리그 최고의 강속구투수는 ‘빅트레인(Big Train)’ 월터 존슨이었다.

“공이 워낙 빨라 공에서 기차소리가 났다”고 할 정도였다. 하지만 메이저리그 전문가 송재우 해설위원은 “과학자들이 당시 화면을 보고 추정한 결과, 구속은 140km 정도였다”고 했다. 체격조건과 기술의 향상 등으로 야구에서도 구속이 향상되고 있다는 것이 정설이다.

송 위원은 “2010년 타계한 밥 펠러가 그 당시(1940∼50년대) 160km이상을 던졌다는 얘기도 있었지만, 과학자들이 화면을 보고 측정한 결과 156∼158km 정도였다”고 덧붙였다. 스티브 달코스키라는 마이너리그 투수가 1950∼60년대 110마일(177km)을 던졌다는 얘기가 전설처럼 남아있지만, 정확히 확인된 바는 없다.

메이저리그에서 최근 몇 년 간의 기록을 종합한 결과, 95마일(153km)에서 1마일이 올라갈 때마다 타자의 헛스윙 비율은 높아진다고 한다.

양상문 해설위원은 “투수들의 변화구 사용이 잦아지면서 타자들의 대처능력 또한 향상됐다. 다시 빠른 직구에 대한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투수들이 구속향상을 위해 더 노력할 것이고, 미국과 한국에서 모두 앞으로 더 빠른 공이 나올 것”이라고 전망했다.

전영희 기자(트위터@setupman11) setupman@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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