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율화의 더 팬] 직장인도 야구선수도 누구나 ‘4번타자’일 순 없다

입력 2011-04-22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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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친구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어느날 직장 상사가 이런 질문을 하더란다. “자네는 그동안 이 조직에서 몇 번이나 적시타를 쳤다고 생각하나?” 글쎄, 자타가 공인하는 열성 야구팬인 나도 그 질문에는 뭐라고 답해야 할지 모르겠다.

“병살타나 치지 않으면 다행이지요. 적시타는 무슨…”이라는 자학성 답변, 또는 “어머, 저도 적시타를 치고 싶은데 제 앞에 주자가 하나도 못 나가지 뭐예요?”라는 책임 전가형 발언을 하지 않았을까. 그러고 보니 평소 직장에서의 내 태도를 그대로 반영하는 듯해 부끄러워진다.

우연의 일치인지 내가 일하고 있는 언론중재위원회가 올해 프로야구와 함께 창립 30주년을 맞이했다. 그러니까 아마도 난 30년 전에 이미, 장차 못 말리는 야구광이 되어 언론중재위원회에 근무할 운명이었던가 보다.

공교롭게도 내 인생의 가장 큰 두 가지 축이 같은 해에 서른 번째 생일을 맞이하고 보니, 조직과 야구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나는 이 조직에서 어느 정도의 역할을 하고 있을까. 타율이나 방어율로 따지면 어느 만큼이며, 내 응원팀의 선수로 친다면 누구 정도라고 해야 맞을까….

마음 같아서는 큼지막한 홈런을 날리고는 위풍당당하게 그라운드를 도는 4번 타자였으면 좋겠고, 9회말 2사 만루에서 마지막 타자를 삼진으로 돌려세우고 주먹을 불끈 쥐는 에이스이고도 싶다.

하지만 누구나 4번 타자, 누구나 에이스인 조직이 있을까? 있다 한들 그 조직이 원만하게 잘 돌아갈까? 적시타가 나오기 위해서는 일단 주자가 누상에 나가야 할 것이고, 때로는 주자를 진루시키기 위해 희생번트를 댄 선수도 있을 게다.

물론 주자를 불러들인 안타 한 방도 더없이 소중하지만, 그 한 방을 기다리며 착실하게 제 몫을 다한 다른 선수들 역시 찬사를 받아야 마땅하지 않을까.

야구는 9명이 9분의 1이라는 자신의 몫을 충실히 해낼 때 이길 수 있는 스포츠이며, 바로 그런 팀이 강팀이다.

조직도 마찬가지이리라. 때로 몸을 아끼지 않고 공을 맞고 나가 결승 주자가 되거나, 착실히 희생번트를 대서 주자를 한 베이스 더 진루시킬 수도 있을 테고, 그런 날에도 여전히 나는 4번 타자나 에이스 못지않게 소중한 조직의 구성원일 것이다.

만일 내가 상사로부터, 그동안 몇 번의 적시타를 쳤느냐는 질문을 받는다면, 어깨에 잔뜩 힘이 들어간 풀스윙으로 게임을 망치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대답해야겠다.

하루하루 욕심 부리지 않으며 내 본분을 충실히 하고 있다고, 행여 가장 빛나는 자리가 아닐지라도 조용히 한걸음씩 걸어가고 있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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