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구수 160개’, ‘3일 연속 완투’.. 팀운명 짊어진 고교야구 에이스들

입력 2011-06-07 14:3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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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힘들어요. 우리 팀에는 저를 대체할 투수가 없었으니까…"

지난 6일 막을 내린 제65회 황금사자기 전국고교야구대회 겸 주말리그 왕중왕전(스포츠동아·동아일보·대한야구협회 공동주최)의 주인공은 충암고 변진수였다.

변진수는 왕중왕전 5경기를 모두 완투하며 5승 무패, 평균자책점 1.20으로 팀의 우승에 결정적인 공헌을 했다. 대회 최우수선수 및 우수투수상을 거머쥐는 것은 당연한 일.

변진수는 이번 대회에서 5경기, 45이닝을 모두 자신이 책임졌다. 총 투구 수는 624개. 특히 경남고와의 16강전에서는 9이닝 동안 158개의 공을 던졌으며, 이후에도 6월 4일부터 6일까지 열린 8강-4강-결승전을 모두 완투하는 투혼을 보였다.

그는 황금사자기에 앞서 벌어진 주말리그에서도 충암고의 총 48이닝 중 39.2이닝을 책임지며 4승 1패를 기록한 바 있다. 주말리그의 총 투구 수는 549개다.

이처럼 에이스에게 지나친 부담이 지워진 것은 올해부터 고교야구 제도가 '주말 리그'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주말에만 경기를 치르고, 경기가 끝나면 1~2주간 체력을 회복할 수 있는 시간이 있기에 매 경기 에이스가 최대한 많은 이닝을 책임졌다. 이처럼 경기 간격이 긴 시스템은 왕중왕전 16강전까지 유지된다.

변진수는 1회전 대 성남고전 6-1, 8강전 대 제물포고전 7-1 등 경기 종반인 7회까지 콜드게임에 준하는 점수차로 앞서는 상황에서도 교체되지 않았다. 다른 팀들 역시 후보 투수를 선발로 종종 내세우기도 하지만, 위기를 맞으면 즉각 에이스가 등판한다.

이후 8강전부터 결승전까지는 경기 간격이 짧아졌지만, 주말리그나 황금사자기 초반 경기에서조차 거의 경험을 쌓지 못했던 투수를 더 강한 팀, 더 높은 무대에서의 경기에 투입하기는 쉽지 않다. 결국 모든 부담을 에이스가 짊어지게 됐다. 이는 변진수만 해당하는 일이 아니다. 많은 팀들의 에이스들이 비슷한 상황에 놓여 있다.

장충고 최우석은 황금사자기 1회전에서 1회 투아웃 상황에서 일찌감치 마운드에 올라 연장 13회까지 12.1이닝 동안 133개의 공을 던졌다. 최우석은 뒤이은 야탑고와의 16강전에서는 선발로 등판, 연장 11회까지 가는 접전을 홀로 감당했다. 이틀에 걸쳐 치러진 이 경기에서 최우석은 무려 163개의 투구수를 기록해 이번 대회 최다투구수의 주인공이 됐다.

유신고 이재익은 광주일고와의 8강전에 선발등판, 연장 10회까지 145개의 공을 던진 끝에 끝내기 실책으로 패하자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주저앉아 주변을 안타깝게 했다. 이재익은 16강전에서도 1회 1사 후 구원등판, 125개를 투구한 바 있다.

팀별로 5-6경기를 치렀던 주말리그를 돌아보면 경기고 오석(3승1패 38.1이닝 2완투), 강릉고 김승현(3승 35이닝 2완투), 제물포고 이효준(3승 39.1이닝 2완투), 포철공고 허건엽(5승1패 32.2이닝) 등이 변진수처럼 팀의 운명을 혼자 짊어졌던 대표적인 선수들이다.

이들 '원맨팀'이 야구팬들에게 더욱 안타깝게 다가오는 이유는 변진수의 충암고 외에는 성적이 좋지 않았다는 점이다. 제65회 황금사자기 4강에 오른 팀들은 신유원-김웅의 야탑고, 권택형-이진범의 덕수고, 이현동-서동욱-이기범이 효과적으로 나눠 던진 광주일고까지 모두 확실한 계투진을 갖춘 팀들이었다.

프로야구에서 선발투수는 한계투구수는 통상 100개로 이야기되며, 6선발을 운영하거나 투수가 류현진이나 로페즈처럼 이닝이터인 경우에도 120-130개 안팎에서 끊어주기 마련이다.

아직 신체적 성장이 끝나지 않은 고교 선수는 지나치게 많은 투구는 선수생명에 위협으로 다가온다. 많은 투수 유망주들은 프로 입단 후 팔꿈치 또는 어깨 수술을 거치며, 그 과정에서 가능성을 꽃피우지 못하는 재능도 많다.


한화 이글스의 '7억팔' 유창식(19)은 지난해 광주일고 재학 시절 황금사자기에서 6승 중 4승을 책임지며 팀을 우승으로 이끌었다. 하지만 스프링캠프 때 어깨 염증이 발생했고, 현재 2군에 머물러 있다. 같은 해 청룡기의 영웅 심창민(18, 삼성라이온즈) 역시 입단 직후 어깨 통증을 호소해 치료 중이다.

정영일(전 LA에인절스)은 2006년 대통령배 고교야구 1회전 대 경기고 전에서 13.2이닝 동안 무려 242개의 공을 던져 화제가 됐다. 정영일은 그 해 5월 열린 청룡기 결승전에서 선발등판, 연장 16회까지 완투하며 222개의 공을 던져 다시 한번 화제가 됐다.

이 대회에서 9일 동안 정영일의 총 투구수는 무려 741개. 이후 100만 달러의 계약금을 받고 메이저리그 LA에인절스에 입단한 정영일은 5년간 단 33.2이닝만을 소화하며 부상에 시달린 끝에 지난달 27일 방출됐다.
동아닷컴 김영록 기자 bread425@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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