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황태훈]‘제2의 박찬호’ 사라진 고교야구

입력 2011-06-08 03: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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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태훈 스포츠레저부 차장

5일 목동야구장. 제65회 황금사자기 전국고교야구대회 겸 첫 주말리그 왕중왕전 4강전이 열렸다. A고 야구부의 학부모 B 씨는 “아이의 진로 때문에 걱정”이라고 했다. 그의 아들은 초등학교 3학년 때 야구를 시작했다. 야구로 성공하는 게 유일한 꿈이었다. 그런데 올해부터 주말리그를 한다며 갑자기 정규 수업을 들으라는 지시가 떨어졌다. 문화체육관광부와 교육과학기술부, 대한야구협회의 방침이라는 거다.

“아이는 ‘모르는 수업을 듣는 게 괴롭다’고 했어요. 방과 후 훈련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파김치가 되죠. 야구를 그만두게 하고 과외를 시킬 수도 없고….”

6일 잠실야구장. 충암고가 황금사자기 대회 결승에서 광주일고를 6-1로 꺾고 우승했다. 충암고 선발 변진수는 이번 대회에서 원맨쇼를 했다. 5경기 연속 완투승. 그의 헌신이 없었다면 충암고의 우승도 없었다. 주말에만 경기가 열리면서 무리한 등판이 가능해졌다.

주말리그는 ‘주중에는 공부하고 주말에는 야구하자’는 좋은 취지로 출발했다. 일본에서 봄과 여름 두 번 열리는 고교야구 전국대회를 벤치마킹했다. 4000여 개 팀이 지역 예선을 거쳐 고시엔구장에서 왕중왕을 가린다. 고교야구는 연간 100만 관중이 몰릴 정도로 인기가 높다. 공영방송 NHK는 전 경기를 생중계한다.

그러나 일본과 한국의 현실은 극과 극이다. 국내 고교 팀은 53개다. 일본의 80분의 1 수준이다. 이번 황금사자기 대회에 출전한 팀은 총 28개 팀이다. 경기장엔 관중이 거의 없다. 예선 탈락한 25개 팀은 연습만 하고 있다. 공영방송 KBS는 지난해까지 계열사 케이블TV를 통해 한두 경기씩 중계했다. 그러나 올해는 “다른 프로그램이 이미 편성됐다”며 중계를 하지 않았다. 다른 케이블TV는 경기당 중계료로 1000만 원을 요구해 결국 황금사자기 대회는 방송 없이 진행됐다.

한 프로야구 스카우터는 “앞으로는 제2의 박찬호 추신수 같은 대어가 나오기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실전 감각이 떨어져 야구 수준도 하향 평준화된 탓이다. 올해 주말리그가 탄생하면서 지방 대회는 모두 없어졌다.

C고 야구부 감독은 “주말리그는 초등학교, 중학교부터 단계적으로 실시하는 게 옳다”고 말했다. 대학과 프로 진출을 앞둔 고교 선수에게 야구는 입학시험이다. 이들에게 갑자기 공부하라는 건 ‘교실에서 놀아라’라는 얘기나 마찬가지라는 거다.

박찬호는 1994년 미국 프로야구 LA 다저스에 입단했을 당시 영어를 거의 몰랐다. 아는 팝송이 있느냐는 질문에 “해피버스데이 투 유(생일 축하합니다)”를 불러 주위를 민망하게 했다. 그 역시 공부 대신 야구에 다걸기(올인)했기 때문이다. 그런 박찬호가 주말리그 제도하에 있었다면 메이저리그 아시아 선수 최다승(124승)을 거둘 수 있었을까.

주말리그가 좋은 취지를 살리려면 야구 선수 눈높이에 맞춘 특화 수업을 해야 한다. 예선에서 탈락한 팀들이 실전 감각을 유지하도록 별도의 리그를 만드는 등 대안이 제시되어야 한다. “야구와 학업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놓치면 누가 책임질 것이냐”라는 고교 선수 학부모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황태훈 스포츠레저부 차장 beetlez@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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