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세로 늘린 의원 보좌진… 일하는 곳은 총선 지역구

입력 2011-06-14 03: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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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개발 인력부족” 증원… 엉뚱한 표밭다지기에 전용인턴까지 지역구 보내기도

경기도에 지역구를 두고 있는 한나라당 A 의원의 국회 의원회관 사무실은 썰렁하다. 4급 보좌관 1명과 인턴 2명만이 사무실을 지킨 지 두 달째다. 나머지 보좌관 1명과 5급 비서관 2명 및 6, 7, 9급 비서 1명씩 3명 등 모두 6명은 곧바로 지역구 사무실로 출근한다.

이들의 주요 업무는 지역 민원 해결과 조직 관리다. 민원 해결은 곧 표로 연결돼 작은 것 하나라도 소홀히 다뤄서는 안 된다. 보안을 철저하게 유지해야 하는 조직 관리는 절대 모르는 사람에게 맡길 수 없다. 일대 결전을 앞두고 지난 3년간 공들인 조직이 자칫 흔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의원이 참석하기 힘든 행사도 꼼꼼히 챙겨야 한다.

이들의 목표는 단 하나. 자신들이 ‘모시는’ 의원의 재선 성공이다. 내년 4월 총선을 10개월 앞두고 벌써부터 국회의원들은 ‘지역구 앞으로’를 외치고 있다. 지난해 6·2지방선거와 이후 재·보선에서 여야를 오가는 ‘시계추 민심’을 지켜보며 의원들 사이에서 “중앙무대에서 잘해봐야 소용없고 믿을 건 지역조직뿐”이라는 인식이 빠르게 확산된 결과다.

문제는 의원들의 의정활동을 뒷받침하라며 정부가 혈세를 들여 지원하는 보좌진이 무분별하게 지역구로 내몰리고 있다는 점이다. 지역구를 챙기는 일도 의정활동의 일부라지만 입법활동과 행정부 견제라는 국회의원의 본령과는 거리가 있다. 의정활동을 경험하라고 뽑은 인턴까지 지역구로 보내는 의원실도 적지 않다.

386 운동권 출신 민주당 B 의원의 의원회관 사무실에는 보좌관 1명과 9급 여비서 1명만 근무한다. 수행 비서를 제외한 6명이 지역구 사무실로 출퇴근한다. 여기에는 인턴 2명도 포함돼 있다. 한나라당 C 의원도 인턴 2명을 포함해 7명을 지역구 사무실로 보낸 지 오래다. 서울사무실에는 보좌관 1명과 6급 비서 1명만 근무한다. 이들 2명으로는 상임위나 기타 국회 일정을 챙기기도 버겁다. C 의원이 올해 발의한 법안은 2건에 불과하다.

지역구에 보낸 인턴은 지역 유지의 자녀라는 소문도 의원회관에선 흔히 나돈다. 의원은 지역 유지와의 관계를 돈독히 하고, 그 자녀는 경력을 쌓을 수 있으니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식이라는 것이다. 일부 비례대표 의원까지 미리 점찍어 둔 ‘예비 지역구’로 보좌진을 파견하는 등 의정활동의 전문성을 강화하기 위해 도입된 보좌진 제도의 취지는 총선을 앞두고 점점 퇴색되고 있다.  
▼ “의정 보조? 지역 민원해결-조직관리에도 시간 모자라” ▼

전체 의원 297명(현재 2명은 의원직 상실)은 각각 최대 9명까지 보좌진을 꾸릴 수 있다. 4급 보좌관 2명, 5급 비서관 2명, 6·7·9급 비서 각각 1명씩 3명, 인턴 2명의 보수를 모두 국가에서 지원해 주기 때문이다. 특히 지난해 3월 의원들은 법을 바꿔 5급 비서관 1명을 증원했다. 당초 2009년 4월 이 법을 처리하려다 여론의 비판을 받자 1년여를 미루다 결국 통과시켰다. 이로 인해 연간 190억여 원의 세금이 추가로 들어가고 있다.

의원들은 5급 비서관을 증원하는 명분을 이렇게 들었다. 다양한 경력자와 전문가들이 보좌진으로 들어오면서 국회의원의 입법활동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법률 발의 건수가 과거에 비해 대폭 늘어났고, 예산·결산 심사와 국정감사 등 의원들의 의정활동도 과거보다 훨씬 활발해졌다는 게 의원들의 자평이다. 특히 국회가 상시적으로 운영되는 추세를 감안할 때 국회의원의 지원 인력은 아직도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늘린 5급 비서관 가운데 의원들이 내세운 입법활동에 전념하는 비서관은 찾아보기 어렵다. 상당수 의원이 지역구에서 일하는 기존 인력에게 비서관이란 타이틀을 달아줬기 때문이다. 통상 지역구에 있는 사무국장이나 조직부장 등에게 보좌관이나 비서관 직급을 달아주는데 5급 비서관 1명이 신설되자 서울사무실 인력을 충원하기보다는 대부분 지역사무소의 인력을 늘린 것이다. 18대 국회 들어 인턴의 보수도 월 100만 원에서 120만 원으로 올랐다.

이 때문에 입법활동을 보조하기 위한 비서관을 지역구에서 근무하도록 하는 것은 국회의원들의 ‘인사권 남용’이라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지역구 관리 인력은 근본적으로 후원금으로 운영하는 것이 원칙이다. 국회의원의 경우 임기 4년 내내 후원금을 모을 수 있도록 한 것은 지역구 관리에 현실적으로 돈이 든다는 점을 감안한 조치다. 반면 광역단체장이나 교육감, 기초단체장은 선거 때만 후원회를 둘 수 있다.

그럼에도 의원실당 보좌관과 비서관 등 평균 3명을 지역구에서 활동하게 하면서 입법활동이나 행정부 견제와는 무관한 일에 매년 2억 원에 가까운 세금이 낭비되고 있다. 지역구 국회의원 전체(245명)를 놓고 보면 500억 원에 가까운 혈세를 의원의 지역구 챙기기에 쏟아 붓는 셈이다. 여기에 의원실 정원을 감안해 책정된 각종 사무실 운영비를 더하면 그 규모는 더 커진다.

의원들에게 지원되는 세금도 점점 늘어나고 있다. 지난해 예산안 통과를 놓고 여야 의원들이 육탄전을 벌이면서도 세비를 5.1% 올리는 데는 여야가 의기투합했다. 가족수당과 자녀학비보조수당도 올해 신설했다. 의원의 입법활동비는 현재 189만여 원에서 내년부터 313만여 원으로 뛴다.

의원 세비도, 보좌진 수도 늘어나는데 의정활동의 질을 높일 수 있는 방안만 여전히 겉돌고 있는 셈이다. 한나라당의 한 당직자는 “국가가 보수를 주는 의원실 소속의 별정직 공무원들은 지역에서 상시 근무하는 것을 금지해야 한다”며 “그렇지 않으면 보좌진 수를 늘리고 의원실에 각종 지원금을 증액하는 데 대해 국민적 공감대를 얻기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이재명 기자 egija@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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