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2시 FM은 ‘까칠남 천하’

입력 2011-06-17 03: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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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설 마다않는 진행 윤성현-신해철 인기
他프로도 이동진-김형준 등 남자 DJ 진행

윤성현PD(왼쪽), 신해철(오른쪽) 동아일보DB, MBC제공

“게시판 통해 사연과 신청곡 남겨주세요. 단, 주문은 손님 맘이고 틀어드리는 건 주인장 맘입니다.”(KBS 2FM ‘심야식당’ 공식 홈페이지)

“본 방송을 청취함으로써 발생하는 정신적 육체적 물질적 피해에 대해 제작진 일동은 어떠한 책임도 지지 않음을 경고 드립니다.”(MBC FM4U ‘신해철의 고스트스테이션’ 오프닝 멘트)

‘까칠남’들이 새벽 2시에도 잠 못 들고 라디오에 귀 기울이는 올빼미족을 사로잡고 있다. KBS 윤성현 PD는 2009년 4월 ‘심야식당’을 신설해 직접 진행을 맡고 있다. 식당에서 “이모” 하고 주문하듯 청취자들은 그를 “윤 이모”라고 부른다. 팬카페 ‘옴므파탈 윤성현’의 회원 수는 2700명이 넘고, 지난해 말에는 이 프로의 인기에 힘입어 ‘라디오 지옥: 신청곡 안 틀어드립니다’를 출간했다.

지난달부터 경쟁 채널에서 ‘신해철의 고스트스테이션’을 진행하는 신해철도 인기 몰이를 하며 ‘윤 이모’를 위협하고 있다. 방송을 시작한 지 한 달 만에 게시판에 올라온 사연이 2000건을 넘어섰고, 방송을 들으며 실시간으로 올리는 한 줄 댓글도 4만5000건 넘게 달렸다.

‘고스트스테이션’은 시작부터 “작가 없는 방송”을 표방했다. “신해철이 가진 것을 표현하는 프로”라는 제작진의 설명대로 프로 진행은 신해철 맘대로다. 청취자들이 보내온 사연 선정과 선곡 모두 신해철이 직접 한다. 노래 없이 고민 상담만으로 1시간을 채우거나 노래만 연이어 틀어주는 경우도 있다. 신해철 특유의 독설도 빼놓을 수 없는 인기 비결이다. ‘길거리에서 여중생이 떨어뜨린 담배를 주워 주려 했다’는 사연에 “그럴 땐 그냥 지나쳐야지 배려가 없다. 다음 주에는 ‘전 왜 여자친구가 없을까요’라고 사연 보낼 사람”이라고 충고하는 식이다. 반말로 고민 상담 사연을 올리는 것도 고스트스테이션 특유의 문화다.

독설이라면 심야식당의 윤 PD도 빠지지 않는다. 다만 윤 PD는 “신해철 씨가 길게 독설을 하는 편이라면 나는 치고 빠지는 스타일”이라고 차별화했다. 청취자가 “꼭 한 시간만 방송해야 하나요? 시간 추가 안 되나요?”라고 하면 “여기가 노래방입니까? 안 됩니다”라고 응수하는 식.

원래 새벽 2시 라디오 프로 진행자는 나긋한 목소리의 여자 아나운서들이 주를 이뤘다. 하지만 2007년 윤 PD가 사이버 캐릭터인 남자 윌슨을 진행자로 내세워 방송했던 ‘올댓차트’ 이후부터는 남자들 차지가 됐다. ‘올댓차트’가 인기를 끌자 SBS 파워FM이 2009년 SS501의 김형준을 내세워 ‘김형준의 뮤직하이’를 편성했다. KBS는 윌슨 대신 윤 PD가 진행하는 ‘심야식당’을 시작했고, 남자들의 기세가 심상치 않자 MBC는 지난달부터 이 시간대에 편성했던 ‘이주연의 영화음악’을 오전 3시로 밀어내고 고스트스테이션을 내밀었다. MBC 표준FM도 오전 2시 ‘이동진의 꿈꾸는 다락방’을 새롭게 편성했다.

윤 PD는 “이 시간대에 마니아 청취자들이 모이면서 이들을 끌어들일 인지도 있는 외부 DJ들을 내세우는 쪽으로 변화가 일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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