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에이트’에 낚이다!

입력 2011-06-20 16:4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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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슈퍼에이트’ 포스터

'음흉한 교장, 여고생을 관사에 불러서….' '순진한 40대 가정주부에 이런 몹쓸 짓을….'

최근 한 포털 사이트 뉴스코너에 등장한 기사들의 제목이다. 보기만 해도 확 끌리는 이런 선정적인 제목에 '낚여' 마우스를 클릭하면 실망스럽거나 한심한 내용이기 일쑤다. 얄팍한 말장난으로 누리꾼을 유혹하는 이런 제목들은 여고생을 관사에 부른 교장만큼이나 '음흉'하고, 순진한 가정주부에 가한 행동 이상으로 '몹쓸 짓'이다.

우리는 하루 종일 누군가가 벌이는 '낚시질'(유혹하거나 속이는 행위를 일컫는 은어)에 노출돼 있다. 휴대전화에는 툭 하면 '고객님은 상담하신대로 즉시 2000만원 대출이 가능하십니다'라는 정체불명 '김 팀장'의 문자메시지가 뜬다. 냉면 한 그릇 옆에 산처럼 쌓인 갈비 사진을 보여주며 '냉면 한 그릇 가격에 둘 다 드립니다'라는 매혹적인 문구를 보고 음식점을 찾아가면, 정작 냉면과 함께 나오는 것은 거의 회를 뜬 수준의 얇은 고기조각 몇 개인 것이다.

최근 나는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한 편을 보고 이처럼 '낚였다'는 인상을 강하게 받았다. 심지어는 불쾌한 마음까지 들었다. 물론 2억 달러라는 천문학적인 금액을 쏟아 붓고도 '뽀로로' 수준의 캐릭터와 이야기를 전달하는 데 그친 '그린랜턴: 반지의 선택'이라는 재앙에 가까운 블록버스터는 논외로 하겠다.

지금 말하려는 영화는 J J 에이브람스 감독이 연출하고 스티븐 스필버그가 제작해서 화제가 된 '슈퍼 에이트'란 작품이다. '두 영화 천재가 만났다'며 호들갑을 떨었던 이 영화를 보고 나니, 딱 '죽도 밥도 아니다'란 문구가 떠올랐다. 치밀하고 촘촘한 스토리 텔링을 하는 각본가로 이름을 날린 뒤 '미션 임파서블 3' '스타트렉: 더 비기닝'을 잇따라 연출하며 영화예술가로서 놀라운 재능을 보여준 에이브람스의 상상력은 스필버그라는 대가를 만나면서 맥주 캔처럼 구겨져버렸다.

이건, 스필버그가 잘나가던 과거에 만날 만들던 SF(공상과학)영화의 2011년 버전에 지나지 않는다. 에이브람스는 없고, 그 자리엔 스필버그가 만든 'SF영화 시방서'에 따라 공장처럼 찍어낸 공산품만이 있을 뿐이었다.

아, 에이브람스의 장기가 빛을 발한 곳도 한 군데 있기는 했다. 정체불명 괴물의 전신을 영화 끝날 때까지 보여줄 듯 보여줄 듯하며 보여주지 않다가 끝나기 5분전에 살짝 한 번 보여주고 마는 '필살기' 말이다. 에이브람스가 제작한 '클로버필드'에서도 그랬듯, 그는 공포감만 한껏 조성하고 괴물의 실체는 '아주 살짝' 보여주는 방식을 통해 컴퓨터그래픽에 들어가는 비용을 살벌한 수준으로 줄이는 '싸게 찍기'의 달인인 것이다. 에이브람스가 '클로버필드'라는 유혹적인 제목(알고 보니 영화 속에서 단 한 번도 언급되지 않는 클로버필드는 제작자인 에이브람스가 운영하는 제작사가 있는 거리 이름에 지나지 않았다)으로 관객들을 '낚았듯', 이번에도 굉장한 뭔가를 보여줄 듯 한껏 부풀렸다. 하지만 그 '굉장한 뭔가'의 실체는 얇고 또 시대착오적이었다.

영혼을 거는 예술가들 사이에선 기업과 달리 '시너지'란 게 존재하기 어렵다고 나는 생각한다. 가정해 보라. 인상주의 화가 고흐가 입체파 화가 피카소를 만나 공동작업을 했다면(물론 활동시대는 다르지만) 시너지가 났을까? 마찬가지로, 에이브람스가 스필버그라는 든든한 후원자를 만난들 시너지를 낼 수 있을까? 천재가 천재를 만나 타협하면 둔재가 될 뿐이다. 아무리 비즈니스 논리가 지배하는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일지라도 영화가 감성상품인 이상 예술적 타협과 절충은 최악의 상황으로 달려가는 열차표를 끊는 것이나 다름없다. 국내에서도 재기 발랄했던 장진 감독이 상업영화의 대가인 강우석 감독과 만나 결코 시너지를 일궈내지 못했듯 말이다.

대가는 존경받아야 한다. 하지만 또한, 대가는 극복되어야만 한다. 예술은 그래야 발전한다.

이승재기자 sjda@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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