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하균 “산? 몸서리쳐지죠”

입력 2011-07-14 07:00:00
카카오톡 공유하기
프린트
공유하기 닫기

영화 ‘고지전’에서 대규모 전투 장면을 촬영하기 위해 650미터 높이의 고지를 열 차례나 왕복했다는 신하균은 “배우의 자존심이 있는데, 못한다고는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설마 열 번 넘게 시킬 줄은 몰랐다”며 고된 촬영 현장을 회상했다. 임진환 기자 (트위터 binyfafa) photolim@donga.com

■ 100억 대작 ‘고지전’ 신하균, 그의 솔직담백한 수다

650m 고지촬영 ‘한번 더’했다가 열번 왕복
‘고지를 뛰어오르는’ 지문과 일곱달간 사투

“외로운 서른일곱 진한 멜로영화 한편 찍고 싶어요”


신하균(37)은 참 담백한 남자다.

그는 이야기를 할 때 일부러 감정을 포장하거나 말을 꾸며할 줄 모른다. 따로 관리하지 않는데도 매끈한 피부가 풍기는 이미지 역시 담백하다.

영화 ‘고지전’(감독 장훈·20일 개봉)에서 맡은 강은표는 이런 그의 매력을 고스란히 담은 담백한 남자다. 생사가 오가는 격한 전장에서 비극을 겪지만 좀처럼 감정에 흔들리지 않고 오히려 ‘관찰자’에 가까운 인물이 신하균이 맡은 강은표 중위다.

‘고지전’ 개봉을 앞두고 만난 신하균은 “세 번째 군인 영화라서 힘들 건 예상했지만 이 정도인 줄은 몰랐다”며 고개를 흔들었다. 그는 “예전에 군에서 제대할 때 ‘내가 다시 군복을 입나 보자’고 했는데 영화에서 세 번이나 군복을 입었다”며 “고지 촬영에 질려 산에 오르고 싶은 생각도 사라졌다”며 웃었다.

신하균은 2000년 ‘공동경비구역 JSA’와 2005년 ‘웰컴 투 동막골’로 남·북한 대치 혹은 전쟁 이야기를 소화했다. ‘고지전’은 그에게 분단에 관한 세 번째 작품. 앞선 두 편의 영화에서 동생의 이미지였다면 이번엔 이야기를 든든하게 이끄는 형의 모습이 강하다. 신하균은 “더 이상 막내로 버티긴 힘들다”며 호탕하게 웃었다.


● 가장 많이 들은 말 “한 번 더 하시죠?”

‘고지전’은 제작비만 100억 원이 투입된 대작이다. 고지에서 벌어지는 치열한 전투 장면만 10여 차례 등장한다. 규모가 큰 만큼 배우들의 고충도 컸다.

“시나리오에서 ‘고지를 뛰어 오르는 강은표’라는 지문을 읽으면 머릿 속으로 얼마나 고달플지 그림이 그려졌다. 비 오는 밤 전투 장면 부분을 읽을 땐 ‘이틀 동안 찍겠구나’ 싶었는데 예상이 맞았다.”

‘고지전’의 주 촬영지인 야외 세트는 해발 650미터 정상에 만들었다. 신하균은 7개월여의 촬영 기간 내내 매일 새벽 4시에 일어나 분장을 하고 정상까지 오르는 일을 반복했다. “고지를 탈환하는 첫 번째 전투 장면을 찍을 때는 ‘이러다 죽는다’ 싶었다. 평지부터 정상까지 100m 정도를 전력으로 뛰는데 경사가 70도였다. 한 번 찍고 내려오니 감독님이 옆에 와서 조용히 묻더라. 한 번 더 할 수 있겠냐고. 하하.”

영화의 첫 대규모 전투 장면을 촬영하기 위해 신하균은 650미터 높이의 고지를 열 차례나 왕복했다. “배우의 자존심이 있는데, 못한다고는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설마 열 번 넘게 시킬 줄은 몰랐다.”

‘고지전’은 한국 전쟁을 다룬 숱한 작품들 가운데 전쟁 발발이 아닌 휴전을 다룬 영화다. 전선의 요충지인 에록고지에서 남·북한 군인 사이의 지난한 전투를 그리며 강한 반전의 메시지도 던진다.

“1.4 후퇴부터 휴전협정까지 2년 동안 중부전선에서만 30∼40만 명이 죽었다는 사실을 영화를 찍으며 처음 알았다. 한국전쟁의 휴전이 새롭게 다가왔는데 ‘고지전’은 전쟁영화로서 새로운 지점이 아닐까.”


● 촬영 끝나고 지인들과 술…“당분간 한량처럼”

‘고지전’은 신하균의 한층 성숙한 매력을 느낄 수 있는 영화다. 비밀을 간직한 악어중대를 지켜보며 끝까지 흔들리지 않고 자기 자리를 지키는 인물이 강은표 중위다. “든든한 캐릭터 같다”고 하자 신하균은 “새로운 도전이었다”고 답했다.

“어릴 땐 제 걸 더 보여주길 원했는데 이번엔 든든하게 영화의 힘을 그대로 보여주면 된다고 믿었다. 그것만으로 내 연기에 의미가 있으니까. 그래도 배우의 본능은 표현하고 싶은 욕구인데 절제가 역시 어려웠다. 촬영 내내 ‘내가 하는 게 맞나’ 치열하게 고민했다.”

영화 촬영을 끝내고 신하균은 “한량이 됐다”고 했다. 매일 저녁 지인들과 어울리는 술자리가 계속되고 있다.

“낯가림은 좀 있지만 술자리에서 금방 친해지고 특히 남자들에게는 인기 있다”는 그는 “‘고지전’을 개봉하고 다음 작품을 시작하기 전까지 지금처럼 한량으로 살 것 같다”고 했다.

신하균은 스마트폰이 ‘대세’인 요즘 아직 폴더형 휴대전화기를 쓴다. 그의 휴대전화 바탕화면엔 집에서 키우는 고양이 두 마리의 사진이 저장돼 있다.

“전화번호에 새로 저장되는 사람들은 대부분이 남자”라며 “외롭다는 말은 하지만 사실 누군가에게 먼저 다가서는 성격이 못 된다”고도 했다.

이런 신하균이 하고 싶은 장르는 의외로 진한 멜로다. “장르 영화 가운데 가장 매력적”이라는 이유에서다. “어릴 때 재미있게 본 ‘첨밀밀’ 같은 작품이면 좋을 텐데 요즘엔 감정이 센 영화가 끌린다.”

이해리 기자 (트위터 @madeinharry) gofl1024@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뉴스스탠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