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ekend Interview]구대성 “난 던질 수 있어 행복하다”

입력 2011-12-24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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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이름 뒤에 ‘불패’라는 단어가 붙었던 투수. 한국 야구의 ‘레전드 소방수’ 구대성이 호주 프로야구 시드니 블루삭스의 수호신으로 부활했다. 지난 시즌 호주 리그 구원왕에 올랐고, 21일에는 호주 올스타전 역대 1호 세이브를 기록하면서 또 한 번 ‘불패’ 신화를 만들고 있다. 스포츠동아DB

■ 끝나지 않는 전설…시드니 블루삭스의 구대성

2000년 태극기를 가슴에 달고 뛴 시드니…
오늘도 그는 그 마운드에 다시 선다

마흔이 훌쩍 넘어 도전한 호주야구…벌써 네번째 나라
어느덧 승리의 공식으로 통하는 ‘KOO!’

“아직은 한국에 돌아갈 때가 아니다”
하루라도 선수생활을 더 하고 싶은게 그의 뜻이다


그 마운드에 다시 섰다. 태극기를 가슴에 달고 일본에서 온 ‘괴물’과 맞대결하던 자리였다. 한국 프로야구 사상 첫 올림픽 메달을 목에 걸기 위해 160개의 공을 던져야 했던 장소였다. 9회를 홀로 오롯이 버티면서 열한 명의 일본 타자들을 삼진으로 돌려세우던 곳이었다. 2000년 시드니올림픽 야구 한국과 일본의 3·4위전. 마쓰자카 다이스케(보스턴)를 상대로 1실점 완투승을 거뒀던 한국의 왼손 투수는 12년이 흐른 지금 ‘그때 그 곳’에 다시 서 있다. 올림픽 야구 경기가 열렸던 그 야구장은 이제 시드니 블루삭스 소속 구대성(42)의 홈구장이 됐기 때문이다. 구대성이 마운드에 오를 때마다 블루삭스스타디움에는 “쿠(Koo)”라는 함성이 울려 퍼진다. ‘이제 분명히 이긴다’는 믿음의 표현이다. 스포츠동아는 화려했던 시절을 뒤로 한 채 호주에서 새 야구 인생을 꽃피우고 있는 구대성과 국제전화로 인터뷰했다. 활기찬 목소리와 담담한 자신감, 그리고 야구에 대한 열정. 한국이 기억하는 구대성 그대로였다.
● ‘네 번째 나라’ 호주에 가자마자 초대 구원왕

그의 이름 뒤에는 ‘불패’라는 단어가 붙곤 했다. 한국에서 9연속시즌 두 자릿수 세이브(1994∼2007·해외 진출했던 2001∼2005년 제외)와 7연속시즌 20세이브(1996∼2007)를 해냈다. 둘 다 역대 최다 기록이다. 또 역대 두 번째로 많은 통산 214세이브를 올렸다. 200세이브를 돌파한 한국투수는 그와 김용수(전LG), 오승환(삼성) 뿐이다.

그런 그가 한국을 떠나 호주로 갔다. “벌써 네 번째 나라에서 야구를 하게 됐다”고 쑥스럽게 웃는다. 1993년 빙그레에서 데뷔했고, 2001년부터 일본 오릭스에서 4년을 뛰다 2005년에는 메이저리그 뉴욕 메츠 유니폼도 입었다. 그가 은퇴하면서 “가족들과 함께 호주로 가기로 했다. 새로 창설되는 프로야구에서 뛰어볼 생각”이라고 했을 때, 전성기를 훌쩍 지난 베테랑이 또 다른 족적을 남길 것이라고 예상한 이는 많지 않았다.

하지만 늘 그랬듯 구대성은 달랐다. 가자마자 호주 프로야구 초대 구원왕에 올랐다. 올스타전 1호 세이브도 기록했다. 은퇴한 ‘레전드’가 전해오는 승전보에 다시 한국이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구대성은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그 어떤 무엇보다 야구를 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다. 이 곳에 와서 좋아하는 야구를 계속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 열정적인 선수들과 함께 하니까 예전에 신나게 야구하던 생각이 많이 난다.”
● 옥스프링, 그리고 토마스와의 인연

처음 호주에 왔을 때, 어떤 보직이라도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어차피 야구로 영화를 누리려고 온 게 아니었다. 그런데 오자마자 LG 용병 출신인 크리스 옥스프링을 만났다. 플레잉 코치를 맡는다고 했다. 옥스프링이 단번에 케빈 볼스 감독에게 추천했다. “구대성이 한국 야구에서 손에 꼽히는 클로저였다”고. 그래서 구대성은 출발부터 소방수가 됐다. 어디서든 뒷문을 걸어 잠글 운명이었나 보다.

호주는 한 시즌 48경기를 치른다. 구대성은 18경기에 등판해 2승 1패 12세이브에 방어율 1.00을 기록했다. 세이브 1위였다. 새 시즌 첫 경기를 앞두고 열린 시상식. 구대성은 자신의 이름이 영문으로 새겨진 구원왕 트로피를 받았다. 한국에서 상이란 상은 다 받아봤던 그다. 1996년에는 18승 3패 24세이브에 방어율 1.88을 기록해 다승·승률·구원·방어율 1위를 석권하기도 했다. 그해 최우수선수도 당연히 구대성이었다. 하지만 낯선 무대에서 성공적으로 의미 있는 발걸음을 뗀 베테랑에게는 작지만 소중한 상패였다. 그는 “상이란 건 언제 받아도 기분 좋은 것 같다. 생소하면서도 즐겁고 뿌듯하고…. 어쨌든 묘한 기분이었다”고 털어놨다.

올해도 그는 건재하다. 8경기에서 승리 없이 2패에 4세이브, 방어율 4.82를 기록 중이다. 지난달 24일 애들레이드와의 원정경기에서 한꺼번에 5실점하면서 방어율이 급상승했을 뿐, 나머지 경기에서는 자책점이 0이다. 그는 강조했다. “매 순간이 즐겁고 신난다. 이곳에 와서 나쁜 기억은 하나도 없었다.” 최근에는 한화에서 한솥밥을 먹었던 브래드 토마스가 팔꿈치 수술과 재활을 마치고 시드니 블루삭스에 합류했다. 토마스에게 마운드를 이어 받는 구대성의 모습. 낯설지 않다.
● 호주 교민들의 환대 “구대성이다!”

호주 리그는 출범 후 두 번째 시즌을 치르는 중이다. 아직 야구를 전업으로 삼는 선수들이 많지 않다. 대부분 비시즌에는 다른 일을 하다 시즌이 시작되면 오후에 야구장으로 출근한다.

구대성은 “여기는 연봉도 없다. 대신 경기마다 출전 수당을 받는다. 20대 초반의 젊은 선수들이 대부분이라 야구를 제대로 하고 싶다는 의지와 패기가 넘친다”고 귀띔했다. 소속팀의 볼스 감독조차 구대성보다 여섯 살이나 어린 1975년생이니 말 다했다. 하지만 구대성은 “알려진 것보다 수준이 낮은 리그는 아니다. 빠른 속도로 수준이 올라가고 있고 정말 재능 있는 선수들도 많다”고 했다. 한국에서 수준급 용병으로 꼽혔던 옥스프링과 토마스가 뛰고 있는 것만 봐도 그렇다. 어딜 가나 구대성은 화제를 만들어 낸다. 하다못해 메츠에서 짧은 1년을 보낼 때도 그랬다. ‘괴물 좌완’ 랜디 존슨의 공을 받아쳐 2루타를 치고 보내기 번트 때 홈까지 쇄도해 득점을 올리는 희대의 명장면을 만들어 낸 주인공이다. 호주에서도 그렇다. 한국에서 슈퍼스타였던 40대 선수가 마무리 투수로 활약하는 것만으로도 재미있고, 타자에게 등을 돌리다시피 하면서 공을 감추다가 타자의 타이밍을 빼앗는 독특한 투구폼도 당연히 화제다. 무엇보다 한국 야구에 목말랐던 호주 교민들에게는 가뭄의 단비와도 같은 존재다.

구대성은 “경기가 열릴 때마다 교민들이 많이 보러 오신다. 예전에 좋아했던 선수라면서 사진도 같이 찍자고 하시고 사인도 받아 가신다”고 귀띔했다.
● 15번 아닌 30번 달고 ‘대성불패’

아쉽게도 그는 호주에서 15번을 달지 못했다. ‘대성불패’의 상징과도 같은 등번호, 한화가 ‘7억 좌완’ 유창식에게 물려준 바로 그 번호다. 구대성은 “입단하자마자 15번을 달 수 있겠냐고 물었는데, 하필이면 시드니 전체 스포츠팀에서 영구 결번이 돼 있는 번호라고 하더라. 그래서 하는 수 없이 30번을 받았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제 등번호는 중요하지 않다. 끝이라고 생각했던 야구를 계속하게 됐고, 가족(아내 권현정 씨, 딸 영은, 아들 상원)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 많아졌다. 행복할 따름이다.

한국에 대한 그리움이 없다면 거짓말이다. 가끔 인터넷으로 한국 프로야구 경기를 보고, 예전에 함께 뛰던 동료들의 활약을 보면서 박수를 친다. 무조건적인 응원을 보내주던 한국 팬들도 그립다. 구대성도 “한국에서 응원해주시는 분들이 많다고 들었다. 지금도 대전구장에서 박수 보내주시던 팬들을 생각하면 감사한 마음 뿐”이라고 했다. 그래도 아직은 돌아갈 ‘때’가 아니다. “당분간은 한국에 가서 지도자를 하고 싶다는 마음은 없다. 지금은 내가 할 수 있을 때까지 최대한 오래 야구를 해보고 싶다”는 게 구대성의 뜻이다.

21일. 구대성은 호주 프로야구 사상 첫 올스타전에 외국인 선수로 구성된 월드 올스타팀 멤버로 출전했다. 그리고 8-5로 앞선 9회 마무리 투수로 등판해 세이브를 따냈다. 구대성은 여전히 ‘불패’다. 장소가 한국이든 일본이든 미국이든 호주든 달라지지 않는다. 상대가 야구든 인생이든 마찬가지다.
● Who is Koo Dae Sung?

▲ 생년월일 = 1969년 8월2일
▲ 출신교 = 대전 신흥초∼충남중∼대전고∼한양대
▲ 키·몸무게 = 183cm·85kg
▲ 경력 = 1993년 빙그레∼2001년 오릭스∼2005년 뉴욕 메츠∼2006년 한화∼2010년 은퇴 후 호주 시드니 블루삭스 입단
▲ 한국 통산 성적 = 67승 71패 214세이브 18홀드, 방어율 2.85, 1221탈삼진
▲ 국가대표 경력 = 2000시드니올림픽, 2006월드베이스볼클래식 등

배영은 기자 yeb@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트위터 @goodgo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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