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LB 강타자 제이슨 지암비 “한국에서 뛸 의향 있다”

입력 2012-08-17 10:3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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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이슨 지암비. 동아닷컴DB

[동아닷컴]

메이저리그에서 뛰는 빅리거들의 평균 선수 생명은 얼마나 될까. 미국 콜로라도대의 한 연구에 따르면 5.6년으로 채 6년이 되지 않는다.

여기 무려 18년 동안 메이저리그를 대표하는 강타자로 현역 생활을 이어가고 있는 선수가 있다. 콜로라도 로키스의 슬러거 제이슨 지암비(41).

1995년 오클랜드 어슬레틱스에서 빅리그에 데뷔한 지암비는 당시 팀의 4번 타자였던 마크 맥과이어의 그늘에 가려 초기에는 외야수, 3루수, 1루수를 전전하는 백업 선수였다. 하지만 맥과이어가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로 트레이드 된 1998년부터 팀의 주전 1루수로 기용되며 자신의 진가를 발휘하기 시작했다.

1998년 팀내 최다홈런(27개)을 기록하며 거포 본능을 뽐내기 시작한 지암비는 1999년 33개, 2000년 43개, 2001년 38개의 홈런포를 쏘아 올리며 빅리그를 대표하는 슬러거로 자리매김했다. 특히 2000년에는 자신의 한 시즌 최다홈런(43개)과 0.342의 고타율로 아메리칸리그 최우수선수(MVP)에 선정되기도 했다.

2001년 시즌이 끝나고 자유계약선수(FA)가 된 지암비는 7년 총액 1억 2천만 달러의 거액을 받고 뉴욕 양키스로 이적했다. 이적 후 2년 연속 41개의 홈런을 기록한 지암비는 2005년 7월 31일 메이저리그 데뷔 10년 만에 300홈런 고지를 밟았다.

2008년 시즌이 끝나고 양키스와 결별한 지암비는 자신의 원 소속팀이었던 오클랜드로 돌아갔다. 하지만 그는 더 이상 예전의 지암비가 아니었다. 잦은 부상으로 극심한 타격 슬럼프에 빠진 지암비는 부상자명단을 들락거리다 시즌 중 방출의 수모를 겪기도 했다. 하지만 그 해 플레이오프 진출을 위해 베테랑 타자를 찾던 콜로라도에 입단하며 메이저리그에 잔류할 수 있었다.

지암비는 메이저리그에서 뛴 18년 동안 429개의 홈런과 1405타점, 1967안타, 출루율 0.404, 장타율 0.523의 눈부신 성적을 거두고 있으며 그의 기록 행진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동아닷컴은 국내 언론 최초로 지암비를 미국 현지에서 만났다. 인터뷰가 진행되던 날 공교롭게도 부상자명단에 오른 지암비는 몸 상태가 좋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친절하게 동아닷컴 취재진을 맞아 주었다. 그는 또 “부상자여서 필드에 나가지 못해 미안하다. 내가 책임질 테니 마음껏 찍으라”며 사진 촬영이 엄격히 금지된 클럽하우스 내에서 취재진을 배려해 주는 자상한 모습도 보여주었다.

다음은 제이슨 지암비와의 일문일답.

제이슨 지암비. 동아닷컴DB




-부상자 명단에 올랐다. 현재 몸 상태는 어떤가?

“유행성 바이러스에 감염돼 그리 좋지 못하다. 하지만 크게 염려할 정도는 아니다. (웃으며) 잘 먹고 잘 쉬면 낫는 병이다. 하루 속히 복귀해 팀에 보탬이 되고 싶다.”


-지난 18년간 메이저리그 대표 슬러거로 활약했다. 자신의 성공비결을 꼽자면?

“나는 그 누구보다 야구를 사랑하고 좋아한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한 것도 비결이라면 비결일 것이다. 더불어 내 장점을 찾아 그 것을 지속적으로 개발한 것도 큰 도움이 됐다. (자신을 가리키며) 보다시피 내 덩치로 도루를 하며 그라운드를 휘젓고 다닐 순 없지 않은가? 결국 내가 잘할 수 있는 건 덩치에 맞게 장타를 생산해내고 그로 인해 상대팀 투수로 하여금 정면승부를 피하게 해 출루율을 높여 팀에 도움이 되게 하는 것이다. 다행히도 그런 전략이 주효했다.”


-고교시절 야구뿐만 아니라 농구와 미식축구도 매우 잘했다고 들었다. 진로선택이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 어떤 계기로 야구 선수가 되었나?

“미식축구를 정말 좋아했다. 하지만 엄청난 훈련에 비해 일주일에 겨우 한 경기만 하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농구도 잘했지만 내가 NBA에 진출해 마이클 조던처럼 주목 받는 선수가 될 자신이 없었다. 결국 내가 가장 잘할 수 있고 아울러 가장 좋아하는 야구를 선택한 것이다.”


-아메리칸리그 MVP를 비롯해 실버슬러거 상, 올스타 선정 등 일일이 거론하기 힘들만큼 많은 상을 받았다.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은 무엇인가?

“MVP와 올스타 등 모든 상은 다 특별하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오랜 시간 야구를 통해 팀원들과 함께 값진 추억을 만들 수 있었다는 것이다.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그들과의 인연, 그리고 그들과 함께한 소중한 순간들이 내겐 더 값지고 소중하다.”


-당신의 화려한 경력에 비해 아직 월드시리즈 우승 반지가 없다.

“그렇다. 그 점은 나도 정말 아쉽게 생각한다. 월드시리즈 우승은 모든 야구 선수들의 공통된 꿈일 것이다. 하지만 아직 현역생활을 이어가고 있으니 기회는 있다고 본다. 사람 일은 모르는 것이다. 하하.”


-프로야구 선수가 된 후 가장 행복했던 때를 꼽으라면?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라. 너무 많다. 우선 사랑하는 동생 제레미와 함께 한 팀(오클랜드)에서 뛰었던 것도 행복했고 어렸을 적부터 꿈꿨던 뉴욕 양키스 유니폼을 입은 시간도 내겐 너무 특별했다. 아울러 내가 동경하던 선수였던 마크 맥과이어, 돈 매팅리 같은 영웅들과 함께 뛸 수 있었던 것도 내겐 너무 큰 행복이자 영광이었다.”


-반대로 가장 힘들었던 때는 언제인가?

“부상으로 인해 팀 전력에서 제외되었을 때였다. 부상에서 회복해 옛 기량을 되찾는 건 늘 어려운 일이다.”


-메이저리그에서 많은 투수를 상대해 봤다. 가장 까다로운 투수는 누구였나?

“왼손 투수가 늘 까다로웠다. 특히 지금은 은퇴한 랜디 존슨이 제일 상대하기 어려웠고 한 명 더 꼽자면 페드로 마르티네즈다. 이 둘이 제일 상대하기 어려운 투수였다.”


-이미 부와 명예를 얻었음에도 불구하고 41세라는 적지 않은 나이에 계속 야구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유는 간단하다. 그 누구보다 야구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물론 전성기 때의 화려함은 없고 간간이 대타로 경기에 나서는 처지가 됐지만 팀의 고참으로 어린 선수들에게 내 경험을 전수해 주는 것도 야구를 계속하는 이유 중의 하나다. 내가 빅리그에 막 올라왔을 때 나 또한 마크 맥과이어나 리키 핸더슨 같은 당대 최고의 선수들에게 많은 것을 배웠고 그들에게 배운 것이 내 야구 인생에 큰 자산이 되었다. 이제 시간이 흘러 나 또한 젊은 선수들에게 내 경험을 전해줄 수 있다는 것이 너무 기쁘고 행복하다.”


-현재 통산 1967안타를 기록 중이다. 2000안타 고지가 멀지 않았다.

“(웃으며) 아직 현역생활을 이어가고 있으니 가능하지 않을까? 2000안타는 정말 특별한 기록이다. 내년에도 메이저리그에 잔류하게 된다면 꼭 이루고 싶은 기록이다.”


-메이저리그 구장 중 어느 곳이 가장 마음에 드나?

“전 소속팀이었던 오클랜드 구장도 마음에 들지만 보스턴이나 양키스처럼 메이저리그의 역사와 전통이 숨쉬는 구장이 개인적으로 마음에 든다.”


-은퇴하기 전 꼭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다면?

“당연히 월드시리즈 우승이다. 개인 기록도 물론 중요하지만 야구가 팀 스포츠이다 보니 25명 팀원이 합심해 이뤄낸 월드시리즈 우승은 늘 기억에 회자될 수 있는 가장 소중한 기록이라고 본다.”

제이슨 지암비. 동아닷컴DB




-야구 연습과 경기가 없는 날은 주로 무엇을 하며 시간을 보내는가?

“고향이 캘리포니아다 보니 서핑을 좋아하고 즐겨 한다. TV 보는 것도 좋아하고 아이와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도 좋아한다.”


-슬하에 자녀는 몇 명인가?

“생후 9개월 된 딸 한 명이다. 나이 41살에 얻은 사랑스런 딸이고 막상 아빠가 되고 보니 이제야 진정한 어른이 된 느낌이다. 하하.”


-야구 선수들은 징크스가 많은 것으로 안다. 당신에게도 특별한 징크스가 있나?

“경기 전 왼쪽부터 양말을 신고, 야구장에 나갈 때는 오른발부터 운동장에 닿게 하는 등 젊었을 땐 많았다. 하지만 나이가 들다 보니 어느때부터 안 하게 되더라.”


-아메리칸리그와 내셔널리그 모두 다 경험해 봤다. 개인적으로 어느 쪽이 더 마음에 드는가?

“일장일단이 있다. 아메리칸리그에는 대타로 출전할 수 있어 좋고 경기에 자주 출전할 수 없는 지금의 내 경우에는 투수 교체 시 대타로 자주 경기에 나설 수 있는 내셔널리그가 더 유리해서 좋다.”


-만약 다시 태어난다면 그때도 야구를 할 것인가?

“(단호하게) 물론이다. 나는 정말 야구를 사랑한다!”


-지난 2003년 시즌 후 은퇴한 동생 제레미는 어떻게 지내나?

“사업을 하며 잘 지내고 있다. 동생 안부도 물어줘 정말 고맙다.”


-당신도 은퇴 후에 동생처럼 사업을 할 생각인가?

“그렇지는 않다. 솔직히 현 소속팀인 로키스를 비롯 몇 개 구단으로부터 은퇴 후 진로에 대한 질문을 받았다. 하지만 지금은 현역선수인 만큼 야구에 집중하고 은퇴 후 무엇을 할 것인가는 그때 가서 생각해 보겠다.”


-지암비 당신에게 야구란 어떤 의미인가?

“야구는 내 심장과도 같을 만큼 내게 부여하는 의미가 매우 크다. 다섯 살 때 처음 야구를 시작한 후 야구는 내 인생의 전부였고 나는 그 누구보다 더 야구를 사랑해왔다.”


-한국에도 당신 팬들이 많다. 그들에게 한 마디 해달라.

“영광이다. 한국 팬들에게 너무 고맙다. 한국에 직접 가보지는 못했지만 인터넷 등을 통해 한국 관련 사진은 많이 봤다. 정말 아름다운 곳이더라. 꼭 한국을 방문해 그 아름다운 모습을 직접 내 기억 속에 담고 싶다.”


-마지막 질문이다. 메이저리그를 경험한 선수들의 한국무대 진출이 늘어나고 있다. 지암비 당신도 기회가 된다면 한국에서 뛸 생각이 있는가?

“물론이다. 예전에 일본에서 일본 올스타 팀과 경기를 한 적이 있는데 매우 인상적이었다. 물론 한국야구가 미국과는 환경이 많이 다르겠지만 기회가 된다면 한국에서도 뛰어보고 싶다.”

로스앤젤레스=이상희 동아닷컴 객원기자 sanglee@indiana.ed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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