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T로 본 새 영화] ‘간첩’ 허탈한 이야기 VS 추석특수?

입력 2012-09-21 11:1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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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ㅣ㈜영화사 울림

사명감보다 강한 건 매일 겪는 생활, 일상의 절박함이다.

고도의 훈련을 받고 남파된 지 10년을 훌쩍 넘긴 네 명의 간첩이 있다.

중국에서 밀수한 비아그라를 팔아 남한 가족은 물론 두고 온 북한 부모에게도 생활비를 송금하는 김과장(김명민), 복비를 악착같이 챙기는 억척스러운 싱글맘 강대리(염정아), 독거노인 윤고문(변희봉), 소 키우는 농촌총각 우대리(정겨운)다.

10년 만에 이들에게 암살 지령이 떨어지고 책임자 최부장(유해진)이 북에서 내려온다. 오랜만에 만난 간첩들은 지령보다 당장 구해야 하는 전셋값, 육아비에 연연한다.

얼핏 휴머니즘 강한 영화? 어쩌면 코미디? 아니면 드라마. 좀처럼 장르를 구분할 수 없는 영화 ‘간첩’(감독 우민호)이다.

●STRENGTH(강점)…일단 시작은 유쾌하다

간첩도 사람이다. 사람은 오래 머문 곳에 적응하기 마련. 하물며 그 시간은 20년에 가깝다.

‘간첩’의 주인공들은 부동산이나 축산업을 택해 일상 깊숙이 뿌리내린 삶을 살아간다. 영화의 시작은 유쾌하다. 진지한 남북의 작전, 첩보, 대립은 이제 ‘진부하지 않느냐’는 투다.

우리 곁 누군가가 생활형 간첩일 수 있다는 호기심도 일으킨다. 출발은 재기발랄하다.

20년 전 총을 묻어둔 산에 아파트가 들어서는 바람에 ‘멘탈 붕괴’에 빠진 김과장, 이사하다 총알을 몽땅 잃어버려 총만 남은 강대리의 모습은 우스꽝스럽다. 하지만 여기까지.

북한의 지령이 떨어지자 영화는 웃음기를 싹 거두고 갑자기 ‘정색’하기 시작한다. 살갑던 캐릭터들도 종적을 감춘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WEAKNESS(약점)…장르 욕심 탓? 흥행영화 인기 코드 집결

분명히 ‘간첩’을 보고 있지만 스크린에는 앞서 흥행한 영화 장면들이 스쳐지나간다.

간첩들의 면면을 소개하면서는 ‘도둑들’이, 가족을 챙기려 악다구니 치는 김과장의 모습에서는 김명민이 앞서 출연한 ‘연가시’가, 남파간첩이 겪는 인간적인 혼돈에서는 ‘의형제’가 떠오른다.

영화를 보며 또 다른 영화가 떠오르는 건 어쩔 수 없는 연상 작용이라고 치자. 그래도 ‘간첩’은 그 횟수가 잦다.

영화는 암살 작전을 두고 의견 갈등이 벌어지면서 심각하게 흐른다. 그 중심엔 간첩 4인방과 잔혹한 총잡이 최부장이 있다. 하지만 영화는 이들의 심리 변화에는 공들여 주목하지 않는다.

때문에 주인공 김과장이 변화하는 과정은 설득력이 약하다. ‘이념보다 가족이 먼저’라는 설정 하나만 갖고 밀고 나간다. 뚝심이라면 뚝심이다.

인물 간 과거사를 섞다보니 엉뚱한 에피소드가 튀어나오기 일쑤. 웃기려고 넣은 장면인데 도무지 웃음이 터지지 않을 때 그 허탈함이란…. 영화를 보고 나오면서 13년 전 영화 ‘간첩 리철진’의 재기발랄함이 그리운 건 또 다른 연상 작용이다.

● OPPORTUNITY(기회)…어쨌든 ‘추석 대목’ 효과

올해 추석 연휴는 예년보다 길다. 극장가는 대목인데 눈에 띄는 영화는 단 두 편 뿐. ‘간첩’과 이병헌 주연의 ‘광해:왕이 된 남자’. 호재다.

물론 액션 외화 ‘익스펜더블2’, ‘레지던트 이블5’, ‘럼다이어리’ 등이 있지만 추석에는 가족용 한국영화라는 오랜 흥행 공식을 고려하면 ‘간첩’과 ‘광해’의 동반 관객 싹쓸이가 조심스럽게 예상되는 상황. 영화 짜임새와 별개로 시기가 주는 ‘추석 특수’ 역시 상당할 전망. 어쨌든 운도 실력이다.

● THREAT(위협)…영화 홍보하기도 전에 개봉

개봉을 앞두고 주연 배우들이 벌이는 다양한 홍보 활동은 영화를 대중에게 알리는 첫 걸음이자 지름길. 특히 영화 마케팅에서 배우들의 홍보가 절대적이란 사실을 떠올릴 때 ‘간첩’이 처한 상황은 ‘짙은 먹구름’이다.

‘간첩’은 당초 일정보다 개봉 날짜를 일주일 앞당겼다. 이로 인해 18일 언론·배급 시사회를 열고 불과 3일 만에 개봉했다. 김명민, 유해진 등 주연 배우들은 개봉 하루 전인 19일에서야 겨우 인터뷰 등 활동에 겨우 돌입할 정도. 홍보 효과를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이야기를 적극적으로 알릴 기회조차 없이 공개된 ‘간첩’의 성적은 과연 어디까지 오를까. 손익분기점은 200만 명이다.

스포츠동아 이해리 기자 gofl1024@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트위터@madeinhar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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