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ry H]김흥국 “싸이 따라하냐고? 벼락 인기는 내가 원조!”

입력 2013-05-03 07:00:00
카카오톡 공유하기
프린트
공유하기 닫기

젊은 세대는 김흥국을 개그맨이나 예능인, 심지어 축구인으로 아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김흥국은 “그동안 100곡이 넘는 노래와 10장의 앨범을 내놓은 10대 가수”라고 말한다. 김흥국은 자신을 ‘벼락스타’로 만들어준 ‘호랑나비’를 24년 만에 리메이크한 ‘호랑나비2’를 내고 본업인 가수로 돌아왔다. 김종원 기자 won@donga.com 트위터@beanjjun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나태주 시인의 ‘풀꽃’이 노래한 것처럼 화려하지는 않지만 그 존재만으로도 가치 있고 빛이 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드라마나 영화의 진한 이야기를 든든하게 받쳐주는 배우, 묵직한 무게감으로 변치 않는 팬들의 사랑을 받는 가수, 명작을 탄생시키기 위해 밤을 지새우는 스태프 등 각 분야에서 묵묵히 존재감을 빛내고 있는 인물들의 사람 냄새(Human)나는 따뜻한 이야기(History)를 ‘스토리 H’를 통해 전합니다.


■ ‘호랑나비2’ 내고 본업 가수로 컴백한 김흥국

딸한테 영감 받아 리메이크 뮤비 기획
부제가 ‘강북스타일’? 애향심서 비롯

‘호랑나비’ 하나로 지금껏 잘 살아왔지
싸이처럼 유튜브 스타? 들이대는 거야

콧수염, 우스꽝스러운 춤사위, 중독성 강한 멜로디와 가사…. 이 가운데 하나만 말해도 주인공이 누군지 삼척동자도 안다. “앗싸! 호랑나비∼”라고 외치며 전 국민에게 흥겨움을 준 가수 김흥국(54). 1989년 히트곡 ‘호랑나비’를 요즘 트렌드에 맞게 리메이크한 ‘호랑나비2’를 들고, 그가 돌아왔다. 일렉트로닉 사운드에 ‘깨알 같은’ 추임새와 랩을 더해 ‘핵폭탄급’ 위력을 자랑한다. 여기에 1년을 공들인 뮤직비디오까지 갖출 건 다 갖췄다.

“으아∼”라는 감탄사를 연발하며 “세계를 겨냥한 유튜브 스타가 되겠다”는 그럴 듯한 포부까지 내놨다.


● “싸이 의식? 나라고 되지 말라는 법 있나?”

김흥국은 지난해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유튜브를 통해 세계적인 인기를 얻는 것을 보고 무릎을 쳤다.

“으아∼! 한발 늦었다.”

3년 전 미국에서 유학 중인 딸이 유튜브에 각종 동영상을 찍어 올려놓고 노는 것을 보며 아이디어를 얻었다. 히트곡 ‘호랑나비’를 뮤직비디오로 만들어 유튜브에 올린다고 딸과 ‘철썩 같이’ 약속했는데, 게으름에 시기를 놓치고 말았다.

“당초 계획은 지난해 여름이었다. 그 무렵 ‘강남스타일’이 치고 나왔다. ‘소나기는 피하라’ 해서 ‘강남스타일’을 피해 올해 봄에 내놓았더니 떡하니 ‘젠틀맨’이 나왔다. 역시 빠른 놈이 이기는 거다.”

김흥국은 자신의 고향인 서울 강북이 상대적으로 소외된 느낌이라 세계에 알리고 싶다고 했다. 그래서 노래 제목에 ‘강북스타일’이라는 부제도 붙였고, 뮤직비디오에도 강북 곳곳의 풍경을 담았다.

“기획은 1년 전부터 했고 어릴 때부터 살던 곳이라 곳곳을 잘 안다. 그냥 ‘들이대’면 좋은 장면이 나온다. 축구장, 잘 가꾼 공원, 깨끗한 화장실 등 알릴 곳이 너무 많다. 하하하!”

이 정도면 지나치게 싸이를 의식하는 게 아닐까. 그는 트레이드마크인 너털웃음을 지으며 “왜 그러면 안 되나?”고 되묻는다.

“싸이를 보면서 자극을 받았다. 다들 따라한다고 말하지만, 나는 1990년대 ‘벼락 인기’를 누려본 원조다.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당시엔 유튜브도 없었고, 뮤직비디오를 만들지 못해 이번에 도전한 거다. 나이는 들었고 세월은 흘렀지만 건재하다는 걸 보여주면서 당시 내 노래를 즐겨 듣던 베이비부머 세대에게 다시 한 번 힘내라 응원해주고 싶었다.”


● “축구인? 정치인? 나는 가수다”

10∼20대는 김흥국을 개그맨이나 예능인, 심지어 축구인으로 안다. 그만큼 본업인 가수로는 활동이 뜸했다. 하지만 그는 “간간히 신곡도 내놓았고, 그동안 100곡이 넘는 노래와 10장의 앨범을 내놓은 10대 가수”라고 자랑했다. 히트곡이 ‘호랑나비’와 ‘59년 왕십리’ 밖에 없다는 의견도 “내 자신이 웬만한 인기곡은 히트곡으로 치지 않는다”고 큰소리쳤다.

“가수도 아닌 사람이 이런 시도를 한다면 장난이라며 손가락질할 거다. 하지만 난 1979년 밴드 드러머로 출발해 가수 생활 34년째인 뮤지션이다. 다만 ‘호랑나비’가 워낙 강해 그 곡을 깰 만한 노래가 나오지 못했다. 어느 유명한 작곡가라도 그 후속타를 못 만든다. 이렇다, 저렇다 말이 많아도 ‘호랑나비’로 집안도 일으켰고, 지금껏 살아왔다.”

축구와 라디오 등으로 잠시 발길을 옮겼던 그는 이제 본업인 가수로 돌아왔지만 “축구는 운명과도 같은 것”이라고 했다.

“축구는 절대 버릴 순 없다. 내년에 브라질에도 가야 하고. 하하하! 11살 때부터 축구선수 생활을 했다. 집안이 어렵고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셔서 꿈을 접고, ‘열두 번째 선수’가 된 거다. 해외를 돌아다니며 자비로 태극기를 나눠줬다. 처음엔 비난하는 사람도 많았지만, 이제는 애국자 소리를 듣는다.”

그의 최종 목표는 정치인이라는 이야기도 심심찮게 불거졌다. 새누리당 정몽준 의원의 최측근으로 통하고, 또 최근 채널A ‘박종진의 쾌도난마’에 출연해 “4·27 재보궐 선거 격전지인 서울 노원병에 출마를 고려했다 포기했다”는 사실이 공개돼 화제를 모았다.

“축구로 친해진 정 의원 때문에 그런 말이 처음 나왔다. 그때부터 ‘김 의원’ ‘김 특보’라고 불렸다. 선거 때만 되면 ‘나오지 않겠냐’고 말이 많았다. 하지만 가족 때문에 꿈을 접었다. 살다보면 기회가 있을지는 모르겠다. 그렇지만 지금은 여기까지!”

이정연 기자 annjoy@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트위터@mangoostar




뉴스스탠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