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건 전문기자의 스포츠로 읽는 세상] 선동열과 김연경…너무 다른 해외이적 첫 단추

입력 2013-05-15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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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동열, 여론 등에 업고 일본진출 성공
김연경, 흥국생명·협회 등돌리고 고립


1995년 한일슈퍼게임이 끝난 뒤였다. 해태 선동열은 구단과 연봉협상 테이블에서 “일본에 진출하고 싶다”고 했다. 구단은 연봉을 올리기 위한 발언으로 쉽게 생각하고 대처했다. 당시 한국야구위원회(KBO) 규약에 따르면 선수의 해외진출은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선동열은 “안되면 야구를 그만 둔다”며 호소했다. 대중이 움직였다. 1985년 입단해 11시즌을 채운 뒤였다. 한국야구에서 할 만큼 했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다. 구단 실무자는 반대였다.

해결방법은 해태 박건배 구단주가 만들었다. “여론조사의 결과를 따르겠다”고 했다. 찬성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집안의 귀한 보물을 놓고 남의 집 사람들의 말을 따르는 게 맞냐”며 구단은 울분을 토했지만 결국 선동열은 자신을 얽어맨 그물을 뚫었다. 해태는 그 대가로 2번의 임대료를 챙겼다. 주니치에서 4년을 보낸 선동열은 주니치와 다시 한 번 재계약을 노렸으나 해태가 또 찾아와 임대료를 달라고 하자 두 말 않고 유니폼을 벗어 버렸다.

한국배구연맹(KOVO)도 김연경 이전에는 해외이적에 관한 규정조차 없었다. 김연경은 흥국생명에서 4시즌을 뛴 뒤 2009년 9월부터 2시즌을 일본 JT마블러스에서 활동했다. 김연경의 가능성을 눈여겨 본 일본배구관계자의 발언이 계기였다. 김연경도 원했다. JT는 김연경 영입을 탐탁지 않아 해 1+1시즌 계약을 제안했다. 김연경의 재능은 일본에서 만개했다. 그때부터 흥국생명은 김연경의 해외이적에 따른 이익을 단 한 푼도 챙기지 않았다. 우리 선수가 해외에서 성공할 수 있도록 힘써보자는 선의에서 시작했던 까닭이다.

일본에서의 활약을 계기로 유럽진출 기회도 생겼다. 터키 페네르바체에서의 성적도 좋았다. 유럽리그에서도 에이스였고 2012런던올림픽에서 한국여자배구가 4강에 오르는 데 큰 역할을 했다. 그러나 김연경은 올림픽을 앞두고 흥국생명과 틀어졌다. 터키에서의 선수생활이 한국과는 너무 달라 힘들었던 것이 원인이라고 알려졌다.

김연경은 이후 자유계약선수라며 버텼다. 갈등이 증폭되자 배구협회와 흥국생명, 김연경이 만나 마련한 방안이 3자 합의서였지만 불완전한 봉합이었다. 논란의 불씨는 여전히 타고 있다. 김연경은 지금 국제배구연맹(FIVB)의 최종결정도 배구협회의 중재도 불공정했다면서 부정하고 있다. 자신의 편이 될 수도 있던 사람과 단체를 적으로 돌려버렸다. 본인의 뜻인지 에이전트의 판단인지는 알 수 없으나 그래서 김연경은 밖으로만 돌고 있다. 고립됐다.

아무리 자신의 주장이 옳고 처한 상황이 불합리하다고 하더라도 그 말을 들어주거나 동의해서 도와주는 사람이 없으면 문제해결이 불가능하다.

멋진 스파이크가 나오기 위해서는 수비수의 리시브와 세터의 좋은 토스가 필요한데 김연경은 지금 혼자서 배구를 하고 있다. 그 상황이 딱하다. 해결책은 의외로 가까운데 있는데 잘 보이지 않는 모양이다.

marco@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트위터@kimjongke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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