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스볼 피플] KIA 안치홍 1할 멘붕 엘리트, 벼랑에서 길을 찾다

입력 2013-05-25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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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A 안치홍은 개막 이후 줄곧 타율 1할대의 극심한 부진을 겪어왔다. 자청해 2군을 다녀온 그는 마음을 비우고 심기일전하기로 마음먹었다. 사진제공|스포츠코리아

■ KIA 안치홍

3할·황금장갑·연봉 2억 잘나가던 5년차
엘리트 경력 비웃듯 1할 타율 곤두박질
자청해 내려간 2군서 비우고 또 비우고
소중한 경험… 이젠 앞만보고 뛰고싶다


프로야구에서 뛰고 있는 타자들은 하루에도 몇 번씩 ‘성적표’를 받는다. 그것도 매번 ‘시험’을 앞둔 수험생처럼 말이다. 타자는 타석에 설 때마다 자신의 성적이 그대로 찍힌 전광판을 마주한다. 시험을 잘 봤을 때 성적표는 그 무엇보다 자랑스럽다. 그러나 반대일 경우, 세상에서 가장 부끄러운 자화상이 따로 없다.

전광판에 찍힌 ‘3할’은 타자 스스로에게는 큰 자부심으로 작용하고, 팬들에게는 ‘강타자’의 판단기준으로 활용된다. 상대팀에는 경각심을 불러일으킨다. 한 시즌이 끝나면 2할7∼8푼의 타자와 3할을 친 선수가 기록한 안타 개수에는 사실 큰 차이가 나지 않지만, 3할 타자가 주는 상징성은 매우 크다.

그러나 타율이 2할7∼8푼은 고사하고 2할대 초반이라면 타자의 심정은 어떨까? 더 심하게는 매 타석 1할대의 타율이 아로새겨진 전광판을 마주한다면? 그것도 골든글러브를 수상한, 한국프로야구의 미래로 불리는 스타 선수라면? 24일 1군에 복귀한 KIA 안치홍(23)은 “이제 전광판에 찍힌 1할 타율을 똑바로 바라보겠다”고 말했다.

안치홍은 아마추어 때는 물론 프로에서도 최고의 엘리트 코스를 밟아왔다. 공부로 치자면 초등학교 때부터 전교 1등을 놓치지 않았다. 수재, 천재 소리도 들었다. 최고의 선수들이 모인다는 프로에서도 데뷔하자마자 주전이었다. 선수층이 두껍고 수준이 매우 높아진 현재의 프로야구에서 투수도 아닌 고졸 야수가 데뷔 첫 해 주전으로 뛴다는 것은 극히 드문 일이다. 그러나 안치홍은 2009년 데뷔와 함께 KIA의 2루를 책임졌고, 한국시리즈 우승 주역으로도 활약했다.

지난해까지 프로에서 4년을 보내는 동안 3할(2011년)도 쳤고, 두 자릿수 홈런(2009년)도 날렸다. 골든글러브(2011년)도 품었다. 정근우(SK)의 뒤를 이을 미래의 국가대표 2루수라는 기대는 해가 갈수록 더 커졌다. 23세 프로 5년차지만, 올해 연봉은 2억원을 찍었다.

KIA 안치홍. 스포츠동아DB


호사다마랄까? 2013시즌 극도의 부진이 찾아왔다. 그동안 크고 작은 슬럼프를 겪긴 했지만, 이번에는 더 깊고 길었다. 2군행을 자청했던 13일까지 안치홍은 115타수 20안타, 타율 0.174를 기록했다. 당시 규정타석을 채운 53명의 타자 중 유일하게 1할대 타율이었다. KIA 선동열 감독과 코칭스태프는 그동안 쌓은 커리어, 공수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생각해 팀이 치른 31경기에서 단 한 차례도 빼지 않았다. 그만큼 믿었고, 기다렸다. 그러나 좀처럼 실마리를 찾지 못했다. 전광판에 찍힌 1할대 타율을 마주보며 야구를 시작한 이후 처음 느끼는 괴로움과 조급함에 시달렸다. 결국 스스로 2군행을 요청했다. 2011년 6월 허리 부상으로 잠시 1군 엔트리에서 제외된 적은 있었지만, 성적 부진 때문에 2군으로 내려간 것은 처음이었다.

24일 광주 NC전을 앞두고 안치홍은 묵묵히 타격훈련을 마쳤다. 그리고 “그동안 생각이 너무 많았다. 부진이 이어지니까 이것저것 생각하면서 더 좋지 않아졌던 것 같다. 전광판에 찍힌 1할 타율이 보이고, 계속 부진하니까 마음이 조급해졌다”고 털어놓았다.

퓨처스(2군)리그에서 모든 것을 비우기로 했다. 6경기를 치렀다. 자신은 데뷔하자마자 스타였고 1군 경기 출전이 당연하게 여겨졌지만, 2군의 모든 선수들은 벼랑 끝에서 승부를 하고 있었다. 그는 그 곳에서 뛰고 땀을 흘렸다. 안치홍은 “마음이 비워진 것 같다. 고민하기보다는 앞만 보고 뛰고 싶다”고 힘주어 말했다. 지나가던 팀 선배 최희섭이 어깨를 툭 치며 “아주 먼 미래까지 큰 힘이 될 수 있는 소중한 경험이라고 생각하자”고 격려하자 살며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3회말 복귀 첫 타석에서 깨끗한 우전안타를 날리고 1루를 밟았다.

광주|이경호 기자 rush@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트위터 @rushlk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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