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기희 선수. 스포츠동아DB
이번에는 런던올림픽 4분의 기적으로 유명한 국가대표 중앙수비수 김기희(24)가 희생양이 됐다.
김기희의 원 소속 팀은 대구FC다. 대구는 작년 9월 김기희를 카타르 알사일리아로 9개월간 임대 보냈다. 6월 말이면 임대기간이 끝난다. 김기희는 임대만료 시점에 맞춰 원 소속 팀 복귀나 다른 리그로의 이적 등 여러 옵션을 놓고 저울질 중이었다. 특히 사우디아라비아 명문 알 힐랄이 김기희에게 큰 관심을 보였다. 100만 달러 이상의 이적료를 제시하며 완전이적을 추진했다. 중국과 일본의 상위 클럽들도 김기희 영입 경쟁에 뛰어들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김기희는 황당한 사실을 알게 됐다. 대구가 올 1월 김기희도 모르게 전북 현대와 이적합의를 해버린 것이다. 전북이 10억원 이상 이적료를 지불하기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김기희는 물론 대리인조차 이 사실을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는 점이다.
김기희는 자신의 동의도 없이 이적이 추진됐다는 사실에 발끈했다. 전북으로는 절대 갈 생각이 없고 해외에서 선수생활을 더 하겠다며 완강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매해 피해보는 선수 속출
이런 일은 김기희가 처음이 아니다.
가깝게는 작년 초 작년 초 김주영(서울) 사태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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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경남 소속이던 김주영은 구단과 바이아웃 조항을 맺어 국내구단 중 7억 원 이상을 지불하는 팀이 나오면 이적이 가능했다. 서울은 바이아웃 이상을 제시했고 김주영도 서울을 원해 이적이 성사단계에 있었다 하지만 경남은 좀 더 좋은 조건을 제시한 수원 삼성으로 김주영을 보내려고 했다. 김주영이 반발하면서 이 문제가 표면화됐다. 프로연맹까지 중재에 나서면서 김주영은 우여곡절 끝에 서울 유니폼을 입었다.
김주영은 그나마 바이아웃이 있어 원하는 팀으로 갔지만 울며 겨자 먹기로 꼼짝 없이 팀을 옮긴 선수도 많다.
국가대표 출신 미드필더 윤빛가람(제주)이 대표적이다.
2011년 말 윤빛가람은 자신의 의사와 상관없이 경남에서 성남 일화로 현금 트레이드됐다. 해외진출 등을 모색하던 윤빛가람은 강력하게 항의했지만 어쩔 수 없이 결국 성남으로 이했다.
●이기주의로 뭉친 구단, 손놓은 연맹 모두 문제
왜 자꾸 이런 전근대적인 일이 벌어지는 걸까.
프로연맹의 독소조항 때문이다.
연맹 규정 5장 33조는 ①각 구단은 보유하고 있는 소속 선수를 타 구단에 양도(임대 또는 이적)할 수 있다. ②선수는 원 소속 구단에서의 계약조건보다 더 좋은 조건(기본급 연액과 연봉 중 어느 한 쪽이라도 좋은 조건)으로 이적될 경우 이를 거부할 수 없다. ③선수가 이적을 거부하면 임의탈퇴 선수로 공시된다고 명시하고 있다.
쉽게 말해 대구와 전북이 김기희 이적에 합의하고 전북이 김기희에게 기존 연봉보다 1원이라도 더 주면 김기희는 이를 무조건 받아들여야 한다. 김기희가 이적을 계속 거부하면 임의탈퇴 선수가 돼 치명적인 타격을 입는다. 국내 축구에서만 볼 수 있는 로컬 룰이다. 축구 선진국 유럽에서도 구단 간 선수 이적은 흔한 일이지만 선수의 거부권을 인정하지 않고 구단 맘대로 이적시키는 경우는 없다. 선수의 직업선택 권리까지 무시되는 위헌적인 요소가 다분하지만 이 규정은 사라지지 않고 있다.
K리그 구단들이 이기주의로 똘똘 뭉쳐있기 때문이다.
K리그 구단들은 선수는 엄연히 구단의 자산이고 이런 이적행위는 재산권 행사라 주장한다. 구단 재정이 취약한 상황에서 이런 재산권조차 인정받지 못하면 존속 자체가 힘들다고 하소연한다. 비겁한 변명이다. 핑계에 불과하다. 선수를 마음대로 사고팔아 이익을 취하려는 ‘갑’의 횡포로밖에 안 보인다. 구단들이 반대하니 어쩔 수 없다는 논리로 팔짱만 끼고 있는 프로연맹의 행태도 문제다.
K리그가 올해 30주년이다. 이제는 독소조항을 손봐야 한다. 선수의 최소한의 기본권은 존중하는 K리그로 거듭나야 한다.
윤태석 기자 sportic@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트위터@Bergkamp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