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day View]김종호 “아직도 2군 가는 꿈을 꾼다…살아서 나가야 하는 이유다”

입력 2013-08-19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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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C 1번타자로 자리 잡은 김종호는 더 이상 무명선수가 아니다. 도루 단독 1위를 달리면서 최고의 ‘리드오프’로 평가받고 있다. 스포츠동아DB

■ 올 시즌 최고의 리드오프…NC 부동의 1번타자 김종호

늦게 시작한 야구…나 때문에 형·
누나 희생
대학 땐 대표팀 뽑히고 프로 성공 자신감도
삼성 입단 기쁨도 잠시뿐…주전 경쟁만 6년

지난해 NC 특별지명, 장난전화인 줄 알았죠
제2의 이종욱? 김경문 감독 눈에 들 줄이야
이제 곧 30대…소중한 기회 놓치지 않을 것


세상에 사연 없는 사람은 드물다. 그러나 나를 위해 많은 이들의, 특히 가족의 큰 희생이 있었다면 인생은 더 절실하고 간절해진다. NC 김종호(29)는 2013시즌 리그 최고의 ‘리드오프(lead-off)’로 평가받고 있다. 많은 이들은 도루 1위를 달리는 NC 1번타자 김종호에 환호한다. 그러나 2012년까지의 김종호 삶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 그와 단둘이 마주하기 전, 오랜 기다림 끝에 손에 잡힌 성공에 대해 아주 조금이라도 성취감과 마음의 여유를 느끼고 있을 줄 알았다. 그러나 김종호 스스로는 지난 6년간, 희망보다 절망이 더 빠르게 자랐던 그때를 조금도 잊지 않고 있었다.


● 도루 1위…“그러나 오늘도 2군행이 두렵다”

“단 한번도 내가 주전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 항상 언제 2군에 갈지 불안하다. 감독님이 시키는 것은 무엇이든 다 할 생각이다. 이제 야구장에 나오는 것이 즐겁다. 그래도 지난날을 잊을 수는 없다. 가끔 2군에 가는 꿈을 꾼다. 악몽이지만 몸이 아플 때 그 꿈을 꾸고 나면 통증이 사라진다. 이제 30대다. 여기서 또 소중한 기회를 놓치면 다시는 오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안다. 오늘도 난 절실하다. 간절한 마음으로 그라운드로 뛰어나간다.”

뜻밖의 말에 대부분 잘 알고 있는 2013시즌의 김종호가 아닌, 그 이전의 무명 야구선수 김종호에 대해 듣고 싶었다, 함께 영화 속 타임머신을 타듯, 시간의 순서와 상관없이 과거로 떠나봤다.


#2012년 11월…2군 선수 김종호

스물여덟. 대부분 남자들이 이제 갓 사회에 첫 발을 내딛고 나아가고 있을 나이다. 그러나 프로야구 2군 선수에게 스물여덟은 정년이다. 30대 유망주는 없다. 팀은 더 이상 기다릴 이유가 없다. “나 때문에, 내가 야구를 해서, 나를 먼저 뒷바라지해야 했기 때문에, 큰형은 군복무를 마치고야 대학에 갈 수 있었다. 누나도 꿈을 다 펼치지 못했다. 그러나 프로에서 6년의 시간은 원망스럽게도 너무나 빨리 흘러갔다. 마치 사선에 서 있는 마음으로 마지막 기회를 잡기 위해 하루하루를 치열하게 살았다.” 희망과 절망이 교차하고 있던 그때, 2012년 11월 15일 갑자기 전화벨이 울렸다. 신생팀 NC에 지명됐다는 얘기였다. NC는 기존 8개 구단에서 팀당 ‘보호선수 20인 외 특별지명’을 했는데, 삼성 선수 중에서 그를 낙점한 것이었다. 그의 첫 대답은 “장난전화죠?”였다.


#1995년, 그리고 2007년…출발

남들보다 늦은 시작이었다. 초등학교 6학년, 그것도 가을. 야구 유니폼을 입은 동네 형이 그렇게 멋있어 보일 수 없었다. 친구들과 동네에서 야구를 하고 있는데 그 형이 왔다. 잘난 체를 하는 모습을 보며 ‘나도 꼭 야구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모님은 당연히 반대를 하셨다. 운동은 힘들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고 계셨던 같다.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고 조르고 매달리는 통에 결국 허락을 받았다. 그리고 그때부터 아낌없이 뒷바라지를 해주셨다. 막내아들 때문에 큰 형과 누나가 큰 희생을 해야 했다. 대학 때는 대표팀에 뽑혀 국제대회도 참가했다. 나름 ‘차세대 1번 후보’라는 소리를 들으며 2007년 삼성에 입단(신인드래프트 2차지명 4순위)했다. ‘꼭 프로에서 성공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있었다.”


#2012년…김경문의 눈에 띈 ‘1번 지명타자’

NC 김경문 감독은 김종호를 경기장에서 처음 봤던 순간을 이렇게 기억하고 있었다. “2012년 퓨처스리그에 있을 때 삼성과 경기를 했다. 상대 팀 출전명단이 왔는데 1번타자가 지명타자였다. ‘1번이 왜 지명타자?’라는 생각에 ‘혹시 1번은 어깨에 부상을 입었냐?’고 물었다. 코칭스태프 쪽에서 ‘발 하나는 최고인데 수비가 약하다. 그래서 지명타자로 나오는 것 같다’는 말을 하더라. 아무튼 그 점이 인상적이었다. 그래서 더 유심히 봤던 것 같다.” 김종호는 삼성에 입단하며 ‘명문 팀에 들어왔다’고 즐거워했지만 21세기 최강 팀의 전력은 막강했다. 빠른 발 하나는 자신 있었지만 1군에는 대주자의 대가인 강명구가 있었다. 도무지 틈이 없었다. 기회가 주어지기도 했지만 어이없는 실수를 하기도 했다. 그러나 김경문 감독은 김종호에게서 이종욱(두산)의 옛 모습을 느꼈다. 폭발적인 스피드, 정확히 노려치는 스윙…. 강하지 않은 어깨는 빠른 발로 충분히 극복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더 살피고 또 살폈다. 조용히, 그리고 예리하게….


#다시 2012년 11월…‘네가 10억짜리 선수냐?’

2011년에 전력 평준화를 위해 한국프로야구 사상 처음 2차 드래프트가 실시됐다. 김종호는 팀당 주축전력 40명 밖에서 뽑는 2차 드래프트에서도 다른 팀에 선택받지 못했기 때문에, 이듬해인 2012년 보호선수 20인 외 NC 특별지명에 자신이 포함되리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훈련이 없어 집에서 쉬고 있었다. 어떤 기자분이 전화를 주셨다. ‘이름 혹은 전화번호를 착각했나?’ 그러다가 ‘아∼, 장난전화구나’ 그렇게 생각했다. 믿을 수 없었다. 그리고 믿을 수 없을 만큼 기뻤다.” 가장 전력이 강한 삼성에서 선택한 김종호. 당장 ‘10억(이적료)짜리 선수가 아니다’, ‘NC와 김경문 감독의 실수다’라는 부정적인 반응이 먼저 쏟아졌다. 다른 팀에서 지명된 이승호와 송신영, 고창성, 모창민, 조영훈 등에 비해 지명도가 뒤지는 것은 사실이었다.


#2013년 4월…NC 리드오프 탄생

‘과연 1군에서 성공할 수 있을까?’ 여러 의문부호가 뒤따랐다. 올 시즌 김종호의 4월 타율은 0,233이었다. ‘리드오프’로는 분명 부족했다. 그러나 김경문 감독은 쉽게 흔들리는 지도자가 아니다. 개막 초 잠시 2번으로 기용한 적이 있을 뿐, NC 1번타자는 김종호였다. 단 한 경기도 선발 출장에서 제외한 적이 없었다. 그러면서 시즌 내내 꾸준히 타율 3할과 출루율 4할 안팎을 유지하는, 그리고 40개 이상 도루를 성공한 무결점 리드오프가 탄생했다.

NC 1번타자로 자리 잡은 김종호는 더 이상 무명선수가 아니다. 도루 단독 1위를 달리면서 최고의 ‘리드오프’로 평가받고 있다. 스포츠동아DB



● 경기에 꼭 나가야 한다, 그러기 위해 1루에 꼭 나가야한다!

다시 돌아온 2013년 8월. 김경문 감독은 “솔직히 이 정도까지는 기대를 안했다. ‘도루 30개 하면 얼마나 좋을까’ 그랬는데 50개를 바라보고 있다. 무엇보다 투지와 근성이 대단한 선수다. 내가 말려야 할 정도다”며 흐뭇해했다.

김종호의 목표와 바람은 ‘오늘도, 내일도 경기에 나가고 싶다’로 변함이 없다. 그리고 그 목표를 위해서 ‘꼭 살아서 1루에 나간다’는 다짐을 스스로에게 외친다.

남들보다 출발은 많이 늦었다. 야구를 시작한 것도, 프로에서 빛을 보기 시작한 것도 모두 늦었다. 그러나 김종호는 누구보다 빨리, 열심히 뛰고 있다. 더 이상 고독한 레이스도 아니다. 시련을 극복한 그의 질주에 박수를 보낸다.

이경호 기자 rush@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트위터 @rushlk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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