래퍼들 ‘디스 혈전’…문화인가? 싸움인가?

입력 2013-08-26 07:00:00
카카오톡 공유하기
프린트
공유하기 닫기

스윙스로 촉발된 설전…인신공격 번져
일부 래퍼들은 홍보 위해 확전 부추겨
힙합 팬들 “이것이 진짜 힙합” 반색도

래퍼들의 공개적인 ‘디스’(diss·모욕, 폄훼) 혈전으로 한국 힙합계가 술렁이고 있다.

힙합듀오 슈프림팀의 전 멤버 이센스가 23일 한 음원공유 사이트에 발표한 ‘유 캔트 컨트롤 미’를 통해 전 소속사 아메바컬쳐와 다이나믹듀오의 개코를 공개비난하면서 촉발된 이번 ‘디스 혈전’은 래퍼 스윙스를 시작으로 테이크원, 어글리덕, 이센스, 개코(다이나믹듀오), 사이먼디(슈프림팀)가 서로 비난을 주고받는 ‘랩송 배틀’로 점점 뜨거워지고 있다.

랩으로 다른 래퍼나 못마땅한 사람들을 폄훼하고 비난하는 ‘디스’는 힙합계에선 ‘문화’로 인정받고 있지만, ‘게임’의 범주 내에서 서로 비난과 맞대응을 한다. 그러나 이번 ‘디스 혈전’은 인신공격성으로 흐르고, 전속계약해지와 관련한 진실공방 양상을 보이면서 우려를 자아낸다. 랩 배틀이 계속되다보면 비난의 수위가 높아지게 마련이고, 넘지 말아야할 선을 넘을 경우에 상당한 후유증도 예상된다.

힙합가수 자이언티는 25일 SNS를 통해 “그들과 한 자리에서 악수를 나누던 때가 그립다. 울적하다”는 심경을 토로했고, 얀키 또한 같은 날 “이 지경까지 오니 맘이 참 착잡하다. 정말 솔직한 개인 대 회사 이야기를 듣고 싶은 건지, 싸움구경 끝없이 하고픈 건지”라고 씁쓸한 심경을 내비쳤다.

국내 힙합전문 기획사를 운영하는 한 관계자는 “랩이란 게 원래 상당히 공격적인 수단이다 보니 과거에는 은유법을 사용하거나 당사자들만 알 수 있는 내용으로 디스를 했는데, 이번 디스 전쟁은 대단히 원색적”이라고 말했다.

더욱 우려스러운 건 노이즈 마케팅으로의 악용이다. 일부 래퍼들이 이번 디스 혈전을 자신의 홍보수단으로 이용하기 위해 확전을 부추기고 있다. 실제로 래퍼 타래는 25일 SNS에 ‘싸우지마’라는 프리스타일랩을 통해 “기회다 싶어 녹음하고 올리는 피라미들 멈춰라”라며 일침을 가했다.

그러나 국내 힙합시장에서 유례없는 ‘디스 혈전’으로 랩 문화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는 점은 힙합계로선 고무적인 일이다. 일부 힙합팬들은 ‘힙합플레야’ 등 힙합전문 사이트를 통해 “랩으로 벌이는 디스 전쟁은 힙합과 랩의 제 맛을 느끼게 한다”, “한국힙합 역사의 새로운 장이 펼쳐지고 있다”는 등의 의견을 내놓고 있다.

1990년대 미국에서는 뉴욕을 중심으로 한 동부힙합과 캘리포니아를 중심으로 한 서부힙합으로 파벌이 생겨, 랩으로 서로를 헐뜯다 총격전이 벌어지는 등 심각한 문제가 되기도 했지만 이들의 ‘랩 배틀’로 미국은 랩 음악의 전성기를 맞았다.

김원겸 기자 gyummy@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트위터@ziodadi




뉴스스탠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