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인’ 10번째 클럽가입…시대는 1000만 영화와 함께 흐른다

입력 2014-01-22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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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층은 물론 중장년 관객의 공감을 이끌어내며 1000만 관객을 넘어선 ‘변호인’. 40대 이상 관객의 극장 관람 문화가 정착됐다는 한 증거이기도 하다. 사진제공|위더스필름

■ 한국영화, 1000만 도전기


한국영화로는 9번째로 1000만 관객 넘어서
‘실미도’서 ‘변호인’까지 15
세이상 등급 인기
휴먼드라마 소재가 대세…재관람 빈도 늘어

멀티플렉스 대중화·가족단위 관람 자리매김
대자본 영향력…한국영화가 풀어야 할 숙제


‘스크린 혁명!’

2004년 2월20일자 한 일간지 기사 제목이다. 당시 언론은 ‘한국영화 1000만 시대’라는 큼지막한 제목 아래 다양한 기획기사를 쏟아냈다. 2003년 12월24일 개봉한 강우석 감독의 ‘실미도’가 58일 만인 이듬해 2월19일 사상 첫 1000만 관객을 돌파한 상황은 그 큰 제목의 어감을 실감케 했다. 그로부터 10년 뒤. 영화 ‘변호인’이 한국영화로는 9번째, 외화를 통틀어 10번째 ‘1000만 클럽’에 가입했고 지난 10년 동안 관객은 거의 매년 1000만 영화의 탄생을 목격해 왔다. 그만큼 관객은 크게 늘었고 시장도 커졌다. 한국영화가 걸어온 1000만 관객의 울퉁불퉁했던 10년의 길을 되돌아보자.


● 1990년대 新 르네상스의 힘

‘영화 1000만 시대’는 어쩌면 1990년대 중반부터 싹을 틔웠다. 1995년부터 1999년까지 한국영화 관객은 연평균 28%가 늘었다. 시장점유율도 40%를 돌파하며 승승장구했다. 성장세는 2000년대 중반까지 이어졌고 당시 많은 영화 관계자들은 ‘1000만 시대’를 전망했다. ▲1999년 이후 ‘쉬리’와 ‘공동경비구역 JSA’ 그리고 ‘친구’ 등 초대형 흥행작의 등장 ▲1인당 연간 영화관람 및 반복관람 횟수 증가 ▲1997년 이후 멀티플렉스 극장의 증가 등이 그 전망의 요인으로 꼽혔다.

실제로 한국영화의 1인당 관람횟수는 2003년 1.32회에서 2012년 2.25회, 전국 스크린수는 2003년 1132개관에서 2012년 2081개관으로 크게 늘었다. 총 관객수 역시 2003년 1억194만명에서 이젠 2억명 시대가 됐다.

관계자들의 전망은 현실이 됐고 이후 한국영화는 거의 매년 1000만 영화를 생산해왔다.



● 1970년대 검열로 위축…1990년대 소재 자율화…일상문화

이전 한국영화는 1960년대 황금기를 거쳐 1970년대 이후 20여년 동안 ▲TV의 등장 및 확산 ▲검열로 인한 소재의 제한, 제작사 허가제, 상업성 강한 외화를 수입하게 해주는 쿼터 획득용 영화 제작 등으로 위축됐다. 질은 낮았고 관객은 외면했다.

하지만 1988년 ‘위험한 정사’를 시작으로 할리우드 직배영화가 진입하고 이에 맞서는 새로운 인력이 충무로에 들어서면서 상황은 바뀌었다. ‘결혼이야기’로 기획영화의 문을 연 신씨네 신철 대표는 “한국영화를 보지 않던 관객이 이젠 봐야 한다는 일종의 애국심으로 극장에 몰렸다”면서 “이후 한국영화 질적 수준이 높아졌고 관객도 조금씩 늘었다”고 설명한다.

관객은 이후 영화 제작자율화로 인한 자유로운 소재와 표현을 내세운 한국영화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여전히 지방 배급업자 혹은 비디오업자들의 전도금으로 영화를 제작했지만 1996년 ‘은행나무침대’(일신창투)와 1999년 삼성영상사업단이 제작비를 투자한 ‘쉬리’의 성공 이후 대기업과 금융자본이 들어오면서 산업화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특히 ‘쉬리’는 재능 있는 영화 인력과 대기업 자본, 체계적이고 과학적인 홍보마케팅 등이 결합하면서 새로운 시스템의 전범이 됐다.

이는 현재 시장의 중요한 디딤돌이 되며 문화상품이자 일상의 문화로서 영화를 자리잡게 했다.



● 15세 관람가, 휴먼드라마, 재관람 공통분

1000만 영화는 대체로 ‘15세 관람가’ ‘휴먼드라마’ ‘재관람’이라는 공통분모를 안고 있다.

늘어난 관객과 멀티플렉스의 대중화는 관객층을 넓히면서 가족단위 관객을 극장으로 불러들였다. ‘15세 관람가’ 등급이 상징하는 것도 가족단위 관객의 관람이 1000만 영화의 큰 힘이라는 사실을 말해준다. 또 모든 1000만 영화는 휴먼드라마라는 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멜로나 공포, 액션과 코미디 등 장르적 색채가 강한 영화들은 관람등급, 표현 수위 등 측면에서 다수의 관객을 동원하는 데 한계가 있다. 감동과 공감이라는 정서가 그만큼 많은 관객과 통한 셈이다. 한 번 본 영화를 다시 찾아보는 관객이 없이는 1000만 영화도 없다.

이렇듯 1000만 영화는 한국영화가 걸어온 험난한 길 위에서 태어났다. 그리고 여전히 갈 길이 멀고도 험하다고 충무로 사람들은 말한다. 특히 “5000만 인구 중 1000만명, 다섯 사람 중 한 사람이 한 영화만 봤다는 건 또 다른 면에서 생각해볼 만한 얘기”라고 입을 모은다.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다양한 영화를 볼 기회는 적고, 충무로를 지배하려는 대자본의 영향력은 더욱 커지는 상황, 1000만 영화의 이면도 한 번쯤 돌아볼 필요가 있다는 말이다.

윤여수 기자 tadada@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트위터 @tadada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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