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 전성기 히어로즈, 올 시즌 프로야구 ‘태풍의 핵’

입력 2014-03-31 06:4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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넥센 히어로즈가 2007년 네이밍 스폰서를 도입하며 미약한 출발을 알렸던 지난날을 딛고 작년 사상 첫 포스트시즌에 진출하며 장밋빛 미래를 열어가고 있다. 2014시즌 우승의 부푼 꿈을 안고 더욱 도약한다는 각오다. 2008년 3월 팀 창단식 모습. 스포츠동아DB

■ 프로야구단의 뿌리를 찾아서

프로야구 유일 자립형 구단
6. 넥센 히어로즈

2008년 현대 해체 동시에 8구단 히어로즈 설립
어려운 경제적 자립…선수 현금 트레이드로 연명
2010년 넥센타이어와 계약…선수들도 승승장구
작년엔 팀 창단 처음으로 포스트시즌 진출 성공
비인기 구단 설움 털고 올해는 ‘첫 우승’ 부푼 꿈


2007년 겨울. 센테니얼 인베스트먼트라는 투자 및 M&A 전문기업이 한국야구위원회(KBO)로부터 뜻밖의 제안서를 건네받았다. 경영난에 허덕이던 프로야구단 현대 유니콘스를 인수해 운영해 달라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당시 만 41세였던 센테니얼 인베스트먼트 대표이사 이장석은 고심을 거듭했다. 그러다 문득 마음을 굳혔다. “최초로 네이밍 스폰서를 도입하면 구단 운영 자금을 마련할 수 있겠다. 기존 7개 구단과는 다른 방식으로 운영해 꼭 성공해 보이겠다.” 2008년 1월 현대 유니콘스는 결국 공식 해체됐다. 동시에 센테니얼 인베스트먼트는 ‘히어로즈’라는 이름의 야구단을 설립했다. 프로야구 제8구단을 알리는 순간이었다. 다윗이 골리앗을 이기는 역사는 그렇게 시작됐다.

배영은 기자 yeb@donga.com 트위터 @goodgoer


● 한때는 ‘생존’과 ‘자립’이 목표였던 영웅들

출발과 동시에 부딪친 현실은 예상보다 더 혹독했다. 매년 수백억 원에 달하는 대기업들의 후원으로 유지돼온 프로야구에서 히어로즈의 등장을 반기는 이는 별로 없었다. “8개 구단 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임시방편일 뿐, 곧 매각될 것이다”라는 추측과 소문이 끊이지 않았다.

선례가 없으니 경제적 자립도 쉽지 않았다. 첫 네이밍 스폰서였던 우리 담배는 1년 만에 계약을 해지했다. 결국 삼성에 장원삼, 롯데에 황재균, LG에 이택근, 두산에 이현승을 차례로 보냈다. 현금 포함 트레이드였다. “선수를 팔아 구단 운영한다”는 비난이 쏟아졌다.

그래도 히어로즈는 조금씩 앞으로 나아갔다. 2010년 넥센타이어라는 새로운 네이밍 스폰서를 찾았다. 금민철과 김민성을 비롯해 간판선수들과 맞바꿔온 자원들이 하나둘씩 제 몫을 해내기 시작했다. 2010년엔 팀 사상 첫 타이틀 홀더(구원왕 손승락)를 배출했고, 유격수 강정호도 리그 정상급으로 성장했다. 넥센타이어와 재계약에 성공한 2011시즌 중반에는 트레이드를 통해 LG에서 박병호를 데려왔다. 도약을 위한 기반은 그렇게 다져졌다.


● 마침내 시작된 히어로즈 역사의 ‘2기’

히어로즈 이장석 대표이사는 2008년에 이런 ‘예언’을 했다. “2012년까지 팀의 기틀을 잡고, 2013년부터 우리 팀의 2기를 시작하겠다”고. 당시 그 말을 귀담아 들은 이는 거의 없었다. 그러나 그 호언장담은 거짓말처럼 현실이 됐다. 넥센은 2011년 말 프리에이전트(FA)가 된 이택근을 다시 데려왔다. 4년 최대 50억원을 건네 자존심도 세워줬다. 박병호는 2012년부터 정규시즌 최우수선수(MVP)로 우뚝 섰고, 신고선수로 들어온 서건창은 신인왕이 됐다. 처음으로 3명의 골든글러브 수상자(박병호 서건창 강정호)를 배출했다.

그리고 2013년이 왔다. 넥센이 고단했던 6년의 결실을 맺는 해였다. 정규시즌 3위에 올라 창단 후 첫 포스트시즌에 진출했다. 팀의 간판이 된 박병호는 2년 연속 MVP를 수상했고, 소방수 손승락은 투수 골든글러브까지 거머쥐었다. 늘어난 스타 선수들과 높아진 팀 순위만큼 구단 살림살이가 좋아진 것은 물론이었다. 넥센은 성적에 걸맞은 파격적 연봉 계약으로 풍요로운 겨울을 보냈고, ‘비인기 구단’의 설움도 점점 잊어가고 있다. 이제 넥센은 당당히 2014시즌 ‘우승’의 꿈에 부풀어 있다. 히어로즈의 전성기는 지금 막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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