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 잃은 LG ‘운명의 기로’에 섰다

입력 2014-04-25 06:4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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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 김기태 감독이 자진사퇴한 23일 대구 삼성전에서 8회초 3-5로 뒤지고 있자 선수들이 침울한 표정으로 경기를 지켜보고 있다. LG는 이날도 3-7로 패해 4연패에 빠졌다. ‘자진사퇴’를 통해 LG를 살리려고 한 김 감독의 승부수는 과연 통할까. 사진제공|스포츠코리아

■ ‘감독 자진사퇴’ 최후의 승부수 통할까

김기태 감독, 최하위 LG 동기부여 위한 ‘마지막 선택’
‘포스트 김기태’ 결단 늦어질 땐 암흑기로 돌아갈 수도


야구사전에 프로야구 감독이 쓸 수 있는 새로운 작전을 올려야 할 것 같다. 김기태(45) LG 감독은 23일 사령탑으로 단 한 번밖에 할 수 없는, 그러나 그 어떤 것도 대신할 수 없는 매우 강렬한 작전을 냈다. ‘내가 죽어서 팀을 살린다’는 최후의 작전이었다.


● “코치 중 단 한 명도 팀을 떠나지 말라”

여러 추측과 의혹이 뒤따르고 있지만, 김 감독이 자진사퇴한 가장 큰 이유는 최하위로 추락한 LG가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동기를 부여하기 위해서였다. 김 감독은 사퇴하면서 이 부분을 다수의 사람들에게 수차례 강조했다.

백순길 LG 단장은 24일 “김기태 감독이 (나를)찾아와 ‘지금 팀에 가장 필요한 것은 분위기를 한번에 뒤바꿀 수 있는 큰 동기부여다.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내가, 감독이 사퇴하는 거다’고 말했다. 만류를 많이 했다. 그러나 자신이 희생하더라도 팀을 살리고 싶다는 의지가 매우 강했다”며 안타까워했다.

2011년 SK 김성근 감독(현 고양원더스 감독)은 구단과 재계약 문제를 놓고 갈등하다 팀을 떠났다. 당시 다수의 코치들이 감독의 뒤를 따라 자진사퇴했다. 그러나 LG는 단 1명의 코치도 김 감독의 뒤를 따라 사직서를 내지 않았다. 김 감독의 간곡한 부탁이 있었기 때문이다. LG 한 코치는 “감독님이 23일 대구구장으로 떠나기 전에 코치들을 모아놓고 자진사퇴 의사를 말했다. 그리고는 ‘코치 중 단 한 명도 팀을 떠나지 말고 끝까지 선수들과 더 좋은 성적으로 시즌을 마무리할 수 있도록 전력을 다해달라. 팀을 위해, 선수들을 위해, 내가 그만두는 거다. 코치가 함께 물러나는 일이 생기면 팀이 곤란해진다. 내가 그만두는 게 의미가 없어진다’고 말씀하셨다”고 털어놨다.


● ‘삭발결의’에 비통함 느껴…베테랑 선수들과의 갈등설은 사실무근

주변 말을 들어보면 김 감독이 사퇴를 결정적으로 결심한 것은 21일 대구 원정길에 선수들이 삭발을 하고 나면서부터다. 구단 프런트와 주위 코치들에게 “감독이 잘못한건데 선수들이 죄인처럼 머리를 잘랐다”며 비통해했다.

김 감독은 선수들 앞에서는 밝은 표정을 지으려고 애썼다. 그러나 22일 LG는 삼성에 1-8로 완패했다. 심기일전하며 나선 경기에서 선발투수 코리 리오단이 대량실점(6이닝 7실점)으로 무너지는 통에 힘 한번 못 써보고 또 고개를 숙이고 말았다. 결국 김 감독은 더 큰 변화를 위해 자신의 희생을 결심한 것이었다.

20일 한화와 벤치클리어링 이전 LG 고참선수들이 빈볼을 지시하는 과정에서 감독과 갈등이 있었다는 추측도 나왔다. 그러나 이는 사실무근이다. 백 단장은 “김 감독의 가장 큰 업적은 베테랑 선수들이 팀을 위해 희생하고 가장 열심히 앞장서서 뛰게 만든 점이라고 생각한다”며 “이병규 선수가 ‘제발 감독님 다시 모셔달라’고 부탁하더라. 김 감독과 노장 선수들의 불화가 있었다는 것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김 감독은 베테랑 선수들에 대한 배려가 남달랐다. 베테랑 선수들도 김 감독을 누구보다 잘 따랐다. LG 선수들이 스프링캠프에서 “감독님 재계약을 위해서라도 열심히 하자”는 말을 많이 했던 이유다.


● 암흑기로 돌아갈 것인가? 새 돌파구 찾을 것인가? 기로에 선 LG

김 감독은 선수시절부터 강력한 카리스마와 따뜻한 리더십으로 유명했다. 후배들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선배였다. 감독이 된 후에도 변한 것은 없었다. LG를 살리기 위한 최후의 승부수, 마지막 작전으로 결국 자신의 희생을 택했다.

김 감독의 바람대로 LG가 새 돌파구를 찾을 수 있을지 여부는 얼마나 빨리 사령탑이 안정을 찾느냐에 달려있다. 웅덩이에 빠진 팀을 위해 김 감독이 자신을 희생해 사다리를 놨다면 이제 올라가서 달려갈 방향을 잡는 새 사령탑의 역할이 중요하다.

일단 LG는 조계현 수석코치 체제로 간다. 대부분 시즌 도중 감독이 물러난 경우는 이미 좋은 성적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그래서 대행체제로 잔여 경기를 마무리하고 새 감독을 찾는다.

그러나 LG는 이제 19경기만을 치렀을 뿐이다. LG가 쉽게 김 감독을 포기하지 못하는 이유다. 김 감독의 복귀 가능성이 매우 낮지만 새 감독이냐, 대행체제냐의 결정이 어려운 것도 100경기 이상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LG는 지금 기로에 서있다. 프런트의 빠른 결단이 필요하다. 과거의 암흑기로 돌아갈지, 아니면 김 감독이 내린 마지막 작전을 수행해 새로운 돌파구를 마련할 수 있을지 궁금하다.

이경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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