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형모의 아이 러브 스테이지] 두 남자의 치명적 사랑…충격 반전에 등골 오싹

입력 2014-05-16 06:5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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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년 프랑스에서 열린 세기의 재판을 소재로 한 연극 M. 버터플라이는 두 남자 배우의 팽팽한 연기호흡이 돋보이는 수작이다. 연인이었던 송 릴링(오른쪽·김다현 분)이 남자였음을 알고 혼란스러워 하지만 눈을 감고 촉감에 의지해 다시 사랑의 감정에 빠지는 르네 갈리마르(이석준 분). 사진제공|연극열전

■ 연극 M. 버터플라이

1986년 프랑스 세기의 재판 모티브

이석준의 소름 끼치는 완벽한 연기
김다현의 남녀 오가는 중성적 매력
불꽃 튀는 연기대결 보는 맛도 쏠쏠


팬들 사이에서 ‘엠나비’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연극 M. 버터플라이. 클래식 음악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 제목이 푸치니의 오페라 나비부인과 연관이 있으리라는 것을 쉽게 눈치 챌 수 있을 것이다.

M. 버터플라이는 1986년 프랑스에서 열린 세기의 재판을 모티브로 한 연극이다. 상당히 충격적인 내용이다. 이 재판에서 외교관 출신인 버나드 브루시코와 그의 연인 쉬 페이푸는 기밀 유출혐의로 각각 6년형을 선고받게 된다. 이 세기의 연인은 남녀가 아닌 ‘남남’ 커플이다. 요즘 세상에 남남 커플이 세기적인 화제가 될 만한 일일까 싶기도 하다. 하지만 놀랍게도 버나드 브루시코는 재판정에서 “나는 쉬 페이푸가 여자인 줄 몰랐다”고 주장했던 것이다. 반면 쉬 페이푸는 “1964년 처음 서로 만났을 때 나는 젊은 청년의 모습이었다”라고 반박했다. 외교관과 경극배우로 만나 오랜 기간 연인관계를 유지하고, 성관계를 맺고, 심지어 아들(훗날 쉬 페이푸가 3000위안을 주고 데려온 아이임이 밝혀진다)까지 두었던 두 사람의 엇갈린 증언은 재판 결과 이상으로 세인들에게 충격을 던졌다.


● 두 배우의 불꽃 대결…마지막 충격적인 장면에 등골소름

M. 버터플라이는 이 기괴한 커플의 이야기를 다룬 연극이다. 중국계 미국인 극작가 데이비드 헨리 황의 대표작이다. 1988년 미국 워싱턴에서 초연됐으며, 이후 뉴욕 유진오닐씨어터에서 777회 연속 공연됐다. 이는 아마데우스가 보유하고 있던 기존 최장기 공연기록을 깬 것이다. 국내에서는 2012년에 연극열전4의 두 번째 작품으로 첫 선을 보였다.

이 만만치 않은 연극을 관람하는 포인트는 역시 두 배우의 연기에 있다. 버나드 브루시코와 쉬 페이푸는 극중에서 르네 갈리마르와 송 릴링으로 이름이 바뀐다. 두 사람이 처음 만나고, 중국의 문화대혁명을 겪고, 스파이가 되고, 마침내 재판을 받기까지 운명과 시간의 수레바퀴가 숨 가쁘게 굴러간다.

르네 갈리마르를 맡은 이석준의 연기는 확실히 경지에 다다른 느낌이다. 찌질하면서도 처연한 사랑, 자신의 정체성을 두고 몸부림치는 르네 갈리마르의 내면을 섬세하면서도 ‘독하게’ 표현했다. 오페라 나비부인을 차용한 마지막 장면은 압권이다. 긴 독백을 남기며 천천히 자신의 얼굴에 하얀 분칠을 해가는 이석준의 연기는 등골이 오싹할 정도다.

남자와 여자를 오가는 김다현(송 릴링)은 이석준의 원숙한 연기에 한 치도 밀리지 않겠다는 듯 시퍼런 불꽃을 튀긴다. ‘꽃다현’으로 불리는 미모(?)로만 승부하지 않겠다는 의욕이 느껴진다. 자칫 과장될 위험이 있는 여성스러움보다는 신비감을 장착한 중성적인 매력에 중점을 둔 것도 좋았다. 관객은 ‘김다현’을 보러 갔다가 ‘송 릴링’을 품고 나오는 기이한 경험을 하게 된다.

에필로그 한 토막. 실존인물인 이들 커플은 훗날 어떻게 되었을까.

두 사람은 사면된 이후 몇 차례 전화통화를 했을 뿐 직접 만난 일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쉬 페이푸는 ‘중국판 마타하리’라는, 세상이 자신에게 덮어씌운 이미지를 적극적으로 이용하며 TV에 출연하는 등 유명세를 탔다. 버나드 브루시코는 이후 자신의 성 정체성을 인정하고 다른 남자들과 교제하며 살았다는 후문이다.

양형모 기자 ranbi@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트위터 @ranbi3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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