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준의 와일드피치] 프로의 품격은 흙에서 나온다

입력 2014-05-20 06:4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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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프로야구장의 필드관리는 매뉴얼도 없고 전문성도 없을 뿐만 아니라 책임감마저 없는 ‘3무(無)필드’다. 비가 와 필드에 물이 고이면 구단이 용역을 주거나 시에서 관리를 담당하는 것이 고작이다. 전문적인 구장관리가 시급하다. 스포츠동아DB

#영화 ‘역린’에서 정조대왕을 연기한 현빈은 “작은 일도 무시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야 한다. 작은 일에도 최선을 다하면 정성스럽게 된다. 오직 세상에서 지극히 정성을 다하는 사람만이 나와 세상을 변하게 할 수 있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세월호의 슬픔 속에서 결국 선진국이 별것 아님을 새삼 실감합니다. 우리 사회 구성원이 각자의 위치에서 기본에 충실하고, 자기 직분에 책임감을 가질 때 세상은 진보한다고 믿습니다.

#LG 운영팀 임승규 차장은 4월에 자비를 들여 1주일간 미국 출장을 다녀왔습니다. 7월 말 완공될 예정인 경기도 이천의 LG 2군구장의 관리실무자인 임 차장은 미국 메이저리그가 어떻게 필드의 흙을 유지, 보수하는지 직접 보고 싶어 나홀로 출국을 한 것입니다. LA 다저스의 다저스타디움, 샌디에이고의 펫코파크, LA 에인절스의 에인절스타디움을 들러 현지 관리인들을 만났고, 그들의 일과를 곁에서 지켜봤다고 하더군요. 임 차장은 이렇게 전합니다. “구단에서 채용한 정규직 직원만 4명입니다. 경기가 열리는 날에는 5명의 파트타임 직원이 추가되고요. 아침부터 출근해 잔디부터 시작해서 마운드, 흙까지 다 점검해요. 그들이 다루는 장비는 잔디 깎는 기계, 약 뿌리는 기계 등 30개가 넘어요. 홈팀이 원정을 떠나도 잔디는 자라니까 일은 계속돼요. 경기 전에 비라도 내리면, 이 사람들이 허가를 안 해주면 선수들조차도 필드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자기가 하는 일이 전문직이라는 자부심을 갖고 있고, 바깥에서도 그렇게 대해주는 거예요.”

#지난달 어느 날 잠실구장에서 만난 허구연 해설위원은 혀를 차고 있더군요. 경기를 앞두고 비가 내리는 데 아무도 나오지를 않는 겁니다. 비를 맞고, 선수들만 타격훈련을 하고 있었고, 땅에는 물이 고이고 있었습니다. 구단이 용역을 주거나, 아니면 시에서 관리를 담당하는 것이 한국 프로야구장의 실정입니다. 구장 관리인들의 직업윤리를 탓하기에 앞서 그 어떤 매뉴얼도, 전문성도, 책임감도 실종된 현실에서 당연한 귀결에 가깝습니다. 인프라를 건설하는 일은 오히려 간단합니다. 품격은 인프라를 관리할 정성에 달려있는 것 아닐까요?


PS. 한국야구위원회(KBO)는 9월 인천아시안게임 기간, 프로야구가 중단될 때 샌디에이고의 구장관리 책임자인 요다 루크를 초빙할 예정입니다. 루크는 전국을 돌며 구장관리 매뉴얼을 한국야구장 관리인들에게 교육할 계획입니다.

gatzby@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트위터 @matsri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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