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인터뷰] 유창혁 감독 “중국과 힘든 경쟁…누군가 나서야 했다”

입력 2014-05-20 06:5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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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시대를 풍미했던 바둑스타 유창혁. 바둑 국가대표팀 사령탑에 오른 그는 최근 중국에 밀려 수모를 겪고 있는 한국을 다시 ‘세계바둑최강국’으로 끌어올리기 위해 선수들과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사진제공|한국기원

■ 유창혁 바둑국가대표 감독

세계대회 우승자 못낸 한국바둑의 위기
중국은 천재 신예 계속 나올 기반 갖춰
대표팀, 매주 5일간 하루 7시간씩 훈련
대국-연구회 통해 세계최강 탈환 구슬땀


최근 홍명보 감독이 이끄는 한국축구대표팀의 월드컵엔트리 23명의 명단이 전 국민의 뜨거운 관심 속에 발표됐다. 브라질월드컵에 출전해 대한민국의 명예를 걸고 그라운드를 누빌 태극전사들의 이름이 한 명씩 호명될 때마다 TV를 지켜보던 국민들의 가슴이 벅차올랐다. 그런데 축구대표팀이 엔트리를 발표하기 하루 전날, 또 하나의 국가대표팀이 출정했다는 사실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 바로 바둑 국가대표팀이다. 한국바둑은 10여 년 전만 해도 세계대회를 휩쓸며 ‘세계바둑최강국’으로 군림했지만 최근에는 중국바둑에 밀려 곤고한 세월을 보내고 있다. 급기야 지난해에는 18년 만에 처음으로 한 해 동안 단 한 명의 세계대회(개인전) 우승자도 배출하지 못하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 바둑 국가대표팀의 출범은 이런 위기감 속에서 이루어졌다. 한국바둑 중흥의 사명을 어깨에 진 남자. 국가대표 상비군 소위원회에서 만장일치로 사령탑에 오른 유창혁 감독(프로9단)을 서울 홍익동 한국기원 국가대표 훈련실에서 만났다.


-바둑 국가대표팀의 감독이라는 중책을 맡게 됐다. 어깨가 무거울 텐데.

“무겁다. 하지만 중국과 경쟁하기 위해서는 누군가가 책임을 지고 앞장서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국가대표 선수들은 어떻게 훈련을 하고 있나.

“매주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훈련을 한다.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다. 선수들은 물론 코칭스태프도 전 일정을 함께 하고 있다.”


-선수선발은 어떻게 했나.

“국가대표 11명(남자 7·여자 4)은 매월 한국기원이 발표하는 랭킹에 따라 선발했다. 그 밖에 상비군 18명은 선발전을 치렀다. 선발전은 한 번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4개월마다 치를 예정이다. 성적 우수자는 위로 올라가지만 부진한 사람은 퇴출될 것이다.”


-프로기사들로서는 처음 해보는 ‘선수’ 생활이 쉽지 않을 것 같다.

“프로기사는 자유직업이다. 어딘가에 구속이 되어 훈련하는 것을 부담스러워하는 면이 없지 않다. 그래서 국가대표 선수들에게는 개인일정에 따라 다소 자율을 인정하는 편이다. 하지만 상비군부터는 엄격하게 관리한다. 훈련에 빠져야 할 사정이 생기면 반드시 사전에 허락을 받아야 한다.”


-훈련 내용은 어떤 것인가.

“대국과 연구회가 5-5다. 대국을 하더라도 끝나고 나면 복기를 하면서 철저하게 연구한다. 세계대회 일정이 다가오면 대회에 맞춰 훈련 스케줄을 짠다. 한국기원 4층 국가대표 훈련실은 ‘선수촌’이자 매일 ‘미니 세계바둑대회’가 열리는 곳이다.”


-선수들에 대한 지원은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지.

“국민체육진흥공단(2억원), 원익(1억원), 사이버오로(1억원)가 예산을 지원했다. 하지만 선수들에게 가장 매력적인 지원은 ‘강해질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는 점이다. 프로 중에서도 손꼽히는 강자들이 한 자리에 모여 연구하고 허심탄회하게 의견을 나눌 수 있는 환경은 쉽게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국가대표가 되기 위한 경쟁률이 높다.”


-유 감독은 ‘세계 최고의 공격수’로 불리며 한 시대를 풍미한 바둑스타다. 유 감독이 세계대회를 우승하던 시절에는 충암연구회, 소소회와 같은 프로기사 연구회가 활성화되어 있었는데.

“맞다. 중국의 국가대표제도는 충암연구회와 소소회를 본 딴 부분이 많다. 이제는 거꾸로 우리가 중국의 국가대표제도를 보고 배우게 됐다. 자존심은 상하지만 승부세계에서는 어쩔 수 없다. 배워서 더 강해지는 수밖에.”


-한국바둑이 중국바둑에 이처럼 처절하게 밀리게 될 줄은 몰랐다.

“사실 우리는 세계를 제패하던 시절에조차 기반이 약했다. 뛰어난 몇 사람에게 의존한 세계제패였으니까. 중국은 이제 천재적인 신예들이 수도 없이 나올 수 있는 기반을 갖추고 있다.”


-국가대표 시스템이 필요한 이유는 무엇인가.

“선수들의 기량을 높이는 데에 적합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보겠다. 중국의 경우 국가대표로 선발되기 전의 신예는 한국 신예와 실력이 비슷하다. 그런데 국가대표팀에 발탁이 되고 3∼5년쯤 지나면 그들은 거의 세계 정상급에 도달한다. 그런데 우리는? 여전히 신예 수준이다. 저들은 ‘팀’이 되어 모여 노력을 하고, 우리는 개개인이 ‘알아서’ 해야 하니까.”


-중국과의 수준차이가 도대체 얼마나 나는 것인가.

“국가대표는 조금만 훈련을 하더라도 얼마든지 중국과 경쟁이 가능하다. 문제는 아래로 갈수록 차이가 벌어진다는 것이다. 특히 신예들 사정이 심각하다. 한국의 일류 신예가 중국에 가면 평범한 수준이라고 보면 된다.”


-마지막으로 바둑팬들에게 한 마디.

“이제 일본과 대만도 만만치 않은 시대가 됐다. 한국바둑계가 10년 이상 노력하지 않은 결과다. 다행히 한국도 국가대표팀이 출범했다. 한국을 대표한다는 자부심을 갖고 선수부터 상비군, 육성군까지 모두 내 생각보다 훨씬 더 열심히 해주고 있다. 이런 자세로 꾸준히만 해준다면 분명히 한국바둑계의 앞날이 밝을 것이다. 다시 한 번 한국바둑이 날아오를 수 있도록 믿고 기다려 주시길 부탁드린다.”


● 유창혁 감독은?

1966년 서울태생. 1984년 세계아마바둑선수권 준우승·프로입단. 세계대회 그랜드슬램(1993년 후지쯔배, 1996년 응씨배, 2000년 삼성화재배, 2001년 춘란배, 2002년 LG배). 현 한국기원 상임이사 겸 바둑국가대표팀 감독.

양형모 기자 ranbi@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트위터 @ranbi3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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