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지못할 세상, 의리만 20여년 김보성에 힐링

입력 2014-06-11 06:5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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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에 대한 안타까움으로 빚을 내 기부를 한 김보성. 20년 동안 외곬으로 ‘의리!’를 외쳐온 그는 모델로 나선 식혜를 탄산음료 대신 자신의 식당에 들여놓으며 또 한 번 의리를 지켰다. 동아닷컴DB

믿음 없는 세상을 향한 반성일까, 신뢰 회복을 원하는 갈망일까. 최근 연예계를 넘어 대중문화 전반에서 ‘의리’라는 키워드가 각광받고 있다. 출발점은 김보성이 출연한 식혜 광고였다. 단순한 광고로만 흘려보내기에 ‘의리’의 외침과 메시지는 강렬했다. 신뢰가 무너진 사회가 반추되는 건 당연한 연상작용. 덕분에 ‘의리’를 지키는 이들은 더욱 주목받는다. 20여년 동안 주구장창 ‘의리’를 외치다 결국 광고 한 편으로 인기의 주역이 된 배우 김보성이 그렇다. 김보성의 식혜 광고를 만든 기획자들에게 ‘지금, 왜, 의리인지’를 물었다.


■ ‘의리’히트시킨 광고제작자가 생각하는 신드롬의 이유

누구나 알고는 있지만 미처 꺼내지 못한…
세월호 참사 등 상처입은 대중에게 어필
20여년 의리 외친 김보성의 인생도 공감
타 CF선 보기힘든 이유 “식혜와의 의리”


열풍을 넘어 신드롬이 될 기세다.

김보성이 출연한 15초 분량의 식혜 광고 한 편이 ‘의리’의 의미를 되새기게 하며 새삼스럽고도 뜨거운 관심을 만들고 있다. 광고에서 줄곧 ‘의리’를 외치는 김보성의 모습은 처음엔 웃음을 낳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믿음과 신뢰가 사라진 사회에 대한 아쉬움을 되새기게 하면서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사회 여느 분야 못지않게 부침이 심한 연예계에서도 화제의 키워드는 단연 ‘의리’다. 최근 소속사와 재계약한 스타들도, 함께 했던 감독과 다시 만난 배우들도 모두 ‘의리’의 측면에서 주목받고 있다.


● “누구나 알지만 떠올리지 못한 의리…광고 덕에 환기”

“광고는 15초짜리 영상이지만 그 시대를 반영하는 창이다. 시대 변화나 요구를 가장 적극적으로 담아내는 것도 광고다.”

김보성의 식혜 광고를 기획·제작한 식품회사 팔도 광고디자인팀 김기웅 팀장의 생각이다. 물론 식혜 광고를 처음 기획할 때만해도 이 정도의 화제는 예상치 못했다. 앞서 류승룡의 ‘남자라면’, 김준현의 ‘왕뚜껑’ 광고를 제작해 주목받은 경험이 있었지만 단지 보는 재미에만 그쳤을 뿐 ‘의리’ 열풍 같은 반향은 일으키지 않았다.

김 팀장은 “누구나 알고 있지만 미처 떠올리지 못했던 의리의 중요성을 김보성을 통해 공개적으로 외치면서 그 필요성이 환기된 효과가 있는 것 같다”고 했다. 공동기획자인 코마코 이정욱 차장은 “세월호 참사 등 여러 사건이 일어나면서 광고를 대하는 대중의 마음을 각별하게 만들었다”고 짚었다.

사실 이번 광고는 김보성이 없었다면 탄생하지 못했다. 기획자들은 식혜와 김보성의 이미지를 겹쳐 떠올렸다. 이유가 있다.

전통음료 식혜는 커피, 에너지 음료에 밀려 고전하면서도 20년 동안 사라지지 않고 명맥을 지켰다.

김보성 역시 이미지 변신에 사활을 건 대부분의 연예인과 달리 20여년 동안 줄곧 ‘의리’만을 외쳐왔다. 각박한 세상에서 잠시 잊혀지더라도 뚝심 있게 그 자리를 지킨다는 점에서 “서로가 닮았다”고 광고기획자들은 생각했다.

거친 남자들의 전유물처럼 여겨졌던 ‘의리’라는 키워드가 대중적인 선호를 얻을 수 있던 데는 식혜 광고의 유쾌한 표현 방식도 한 몫을 했다.

김 팀장은 “너무 심각하지 않고 재미있되 촌스럽지 않아야 한다는 기조를 유지했다”고 밝혔다.


● ‘의리 열풍’ 덕분에 해당 제품 매출 40% 상승

김보성의 광고는 이례적으로 TV보다 온라인에서 더 인기다. 온라인 버전은 1분40초 분량. 기존 광고보다 6배나 길지만 일부러 찾아보는 이례적인 분위기 속에 유튜브에서 조회수는 300만건을 넘어섰다.

‘의리’ 열풍은 주인공 김보성에게도 제2의 전성기를 안겼다. 3∼4년 동안 이렇다 할 연기 활동이 없던 김보성은 불과 한 달여 만에 광고계에서 자주 찾는 ‘블루칩’으로 떠올랐다.

그런데도 김보성이 출연하는 광고를 좀처럼 볼 수 없는 것은 “식혜와의 의리”를 저버릴 수 없다는 그의 입장 때문이다.

서울 한남동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김보성은 최근 탄산음료를 빼고 대신 식혜를 들여놨다. 이달 초에는 광고 기획자들을 식당으로 초대해 대접도 했다. 광고주와의 의리를 지키겠다는 뜻에서다. 덕분에 해당 식혜의 매출은 최근 40%가 올랐다.

이렇게 반응이 긍정적이지만 정작 광고 기획자들의 고민은 깊어지고 있다. 최소 4개월 ‘유통’을 예상하고 제작한 이 광고가 초반부터 선풍적인 인기를 끈 탓에 “금방 식상해질 수 있는” 위험에 노출됐기 때문이다. 김기웅 팀장은 “광고를 넘어설 만한 프로모션 아이디어를 고민하고 있다”며 “걱정이 크다”는 말로, 히트 광고가 만들어낸 역설적인 상황을 전했다.

이해리 기자 gofl1024@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트위터@madeinhar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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