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권율 “이순신 동상 앞에서 합격, ‘명량’은 운명”

입력 2014-08-29 11:0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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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명량’서 이순신의 아들 이회 역을 맡은 배우 권율. 방지영 기자 doruro@donga.com

“아버님은 왜 싸우시는 겁니까?”

영화 ‘명량’(감독 김한민)속 ‘이회’역 권율은 아버지 이순신(최민식)에게 또 묻고 물었다. 스크린을 바라보며 우리가 이순신에게 묻고 싶었던 것들을 대신 물어보며 갈증을 해소했다. 아버지에 대한 강한 믿음과 존경을 지닌 이순신의 아들을 연기했던 권율 충무공 이순신에게 역시 마음속으로 또 묻고 물었다.

“왜 싸웠을까요? 국사시간에 우리는 그냥 이순신 장군이 이렇게 저렇게 싸워 승리를 거뒀다고만 배우잖아요. 근데 막상 연기를 하니 왜 싸웠는지 궁금하더라고요. 아마 영화를 보는 모든 분들이 그러진 않았을까요? 다시금 이순신 장군을 생각하게 되는 계기를 마련하게 됐다는 것만으로도 벅찬 감격을 느끼고 있어요.”

권율과 ‘명량’과의 만남은 운명적이다. 권율은 임진왜란 7년 간 군대를 총지휘한 장군의 이름이다. 이순신 장군이 바다를 지킬 때 권율 장군은 땅을 지켰다. 배우 권율이 권세인이라는 본명 대신 예명을 쓰기로 결정했을 때쯤 ‘명량’ 시나리오가 들어왔고 캐스팅 합격 소식도 서울 광화문 이순신 동상 앞에서 들었다.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처럼 들릴 수 있겠지만 그에겐 ‘운명’ 같은 만남이었다.

“이렇게 되려고 이름이 바뀌었나 싶어요. ‘이회’ 역이 있는 건 진즉에 알고 있었고 게다가 최민식 선배 아들이잖아요. 제 나이 또래 배우들이 얼마나 하고 싶었겠어요. 저도 오디션 보고 오매불망 결과를 기다렸어요. 붙었다는 소식에 뛰어다닐 듯이 좋았어요. 그 다음 주에 바로 통영 내려가서 거북선 보고 오고 바다를 보면서 이순신 장군님께 감사드리는 마음으로 ‘열심히 찍겠다’고 했죠.”

배우 권율. 방지영 기자 doruro@donga.com


권율이 맡은 ‘이회’는 누명을 쓰고 모진 고문을 당한 아버지의 곁을 지키며 아버지 이순신과 나라의 안위를 진심으로 걱정한다. 이순신의 굳건한 심지와 강인한 정신력을 물려받았지만 부상으로 출정이 어려운 이번 전투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감을 떨칠 수 없다. 하지만 절대적으로 신뢰하는 아버지의 신념을 믿고 그의 결정을 묵묵히 따른다. 겉으로 보기엔 쉬워 보이는 연기일지 모른다. 하지만 정작 역할을 맡은 권율은 머리를 쥐어짜며 고민했다. 그는 이회를 연기해야 할 뿐 아니라 아버지로서 이순신의 모습을 보여주는 아들 ‘이회’도 보여줘야 했기 때문이다. 결코 튀어도, 안 튀어도 안 되는 인물이었다.

“복합적인 감정을 처리하느라 힘들었어요. 이회는 이순신의 아들이자, 조선 수군이었고 20대 혈기왕성한 청년이잖아요. 몸이 불편하신 아버지가 전장에 뛰어드는데 얼마나 나라가 원망스럽고 울컥하겠어요. 근데 그걸 모두 다 드러내면 너무 튀니까 균형을 유지하는 게 중요했어요. 어려운 게 많았지만 연기를 하면서 벅찬 부분이 많아서 이순신 장군을 전심으로 존경하게 되고 왜 그러셨는지 궁금해서 진심을 다해 더욱 몰입했던 것 같아요.”

혼신을 다했기에 후회도 없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관객들이 이순신 장군을 다시 떠올렸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그에게 ‘명량’은 충분한 의미가 된다. 그는 “우리나라 국민이라면 다 알고 있는 이순신 장군이 정말 왜 싸워야 했는지 영화를 통해서 알게 되고 다시금 이순신 장군을 생각하게 되는 계기를 마련하게 됐다는 것에 벅찬 감정을 느끼고 있다. 아직도 우리에게 그를 향한 존경심이 남았다는 것을 확인하게 된 것 같다”고 말했다.

배우에게 좋은 영화, 캐릭터처럼 중요한 것은 바로 동료배우다. 권율은 흔치 않은 캐릭터를 연기한 것 뿐 아니라 기라성 같은 선배들을 만나기도 했다. 아버지 역할 최민식을 비롯해 류승룡, 조진웅, 김명곤 등 한 작품에서는 쉽게 만날 수 없는 연기파 배우들과 함께했다. 특히 최민식과는 실제로도 “아버지, 아버지”라 부르며 그의 정서와 감정에 집중하기 위해 한시도 눈을 떼지 않았다.

“감격스러웠죠. 평소 존경했던 선배들과 함께할 수 있다니…. 꿈을 이뤘다는 기분보다 앞으로 선배들과 작품에서 만날 수 있다는 생각에 더 감격한 것 같아요. 특히 아버지셨던 최민식 선배는 정말 친아들처럼 대해주셨어요. 같이 지내면서 모든 감정을 공유하셨고요. 모든 배우들과 스태프들이 이 대서사시 같은 작품에 모든 명분을 거셨다는 것을 온 몸으로 느꼈어요. 동지애보다 전우애를 느낀 작품이었어요.”

배우 권율. 방지영 기자 doruro@donga.com


권율은 배우로서 꽉 찬 7년을 보냈다. 드라마 ‘달려라 고등어’(2007)로 데뷔를 한 그는 ‘대왕세종’(2008), ‘아가씨를 부탁해’(2009), 영화 ‘내 깡패 같은 애인’(2010), ‘피에타’ (2012), ‘잉투기’ 등 다양한 매력으로 충무로 기대주로 자리매김했다. 그는 “벌써 7년이 됐네요”라며 짧지만 연기자로 살아온 나날들을 회상했다. 어려운 순간도 많았지만 포기하지 않았고 빨리 가려 했지만 그게 정답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 지금, 천천히 걷는 것에 즐거움을 느끼고 있다.

그는 “힘든 시기도 많았고 괴로웠던 순간들도 많았다. 예전엔 빨리 배우가 되고 싶단 조급함과 싸우기도 했지만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는 것 같다. 하나씩 발전해나가는 게 더 중요하다. 예전엔 문제 10개 중에 1개만 풀 줄 알았다면 지금은 3개 정도는 거뜬히 풀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숙제를 하나씩 풀고 있는 권율, 자신에게 다가오는 또 다른 문제들에 도전하려 한다. 색다른 연기나 캐릭터도 대환영이다. 그는 “이순신 장군께 누를 끼치면 안 되는데…”라고 농을 던지며 “비정상적인 캐릭터를 해보고 싶다”고 눈을 반짝였다.

“약간 비상식적인 캐릭터를 해보고 싶어요. 사회성 떨어지고 광적으로 집착하고…. 스토커나 사이코패스 같은 사람들 있잖아요? 쓸데없는 곳에 치밀히 계산하고 스스로는 나름 천재라고 생각하는 그런 캐릭터를 해보고 싶더라고요. 잘 어울리겠다고요? 그런 소리 자주 듣긴 했는데, 저 그렇게 생겼나요? (웃음)”

동아닷컴 조유경 기자 polaris27@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사진|방지영 기자 doruro@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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