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0억 예산 투입 ‘라커 없는 사격장’

입력 2014-09-23 06:4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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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경기장의 외부 모습. 동아일보DB

■ 인천AG 부실한 준비·운영 눈살

배드민턴, 조명 꺼져 20분간 경기 중단
도시락 식중독균 검출돼 폐기 소동도
메인프레스센터 편의시설 부족도 문제

“이거 올림픽과 축구월드컵을 치른 나라에서 개최하는 국제대회 맞습니까?”

2014인천아시안게임의 대회운영이 ‘망신’ 수준까지 다다랐다. 대회 참가 선수들과 45억 아시아인들의 눈과 귀 역할을 하고 있는 각국 미디어들은 인천에서 스포츠강국으로 자부하는 대한민국에 실망과 분노를 토로하고 있다.

대한민국은 아시아에서 세계적인 스포츠 축제인 하계올림픽과 축구월드컵은 물론 2차례 아시안게임(1986서울·2002부산)을 2차례나 개최한 스포츠 강국이다. 2018년 개최되는 평창 동계올림픽도 유치했다. 그러나 45억 아시아를 대표해 인천에 모인 각국 선수들이 마주한 것은 한껏 기대에 부풀었던 스포츠강국 대한민국이 아니었다.


● 정전으로 경기가 중단된 배드민턴

22일 축구경기가 열리고 있는 화성종합경기타운 스타디움 미디어센터는 현장 책임자가 점심식사를 해야 한다며 문을 잠갔다. 해외 취재진은 황당한 표정을 지으며 돌아섰다. 이날 일본 요미우리신문은 계양체육관의 에어컨 ‘강풍’이 한국에 유리하게 작용했다며 의혹을 제기했다. 그러나 이미 하루 전날 대표팀 에이스 이용대는 “배드민턴은 셔틀콕 때문에 매우 민감한 스포츠인데 에어컨 바람이 너무 강해 적응이 어렵다”고 먼저 문제점을 지적했다. 계양체육관은 20일 정전으로 조명이 꺼져 20분간 경기가 중단되기도 했다. 경기 특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에어컨 설비로 각국 선수들은 분노를 터트리고 있다. 남자단식 세계랭킹 1위 말레이시아 리총웨이도 “에어컨 바람이 너무 아쉽다”고 말했다.


● 무단으로 야구공 챙겨 사인 받는 스태프…라커 없는 사격장

국내 스포츠스타들이 즐비한 야구대표팀은 목동구장에서 황당한 일을 겪었다. 현장 지원 스태프들이 적응 훈련을 위해 공수한 미즈노 공인구를 무단으로 가져가 선수들에게 사인을 요청했다. 훈련에 방해를 받을 정도였다. 류중일 대표팀 감독이 화를 내며 제지해야 하는 수준이었다.

사격은 마인드컨트롤이 매우 중요한 종목이다. 그러나 아시안게임을 위해 300억원의 예산을 투입해 리모델링한 옥련 국제사격장에는 선수들이 경기를 준비할 수 있는 라커 등의 시설 자체가 없다. 현장에서는 “300억원을 어디에 썼냐?”는 말이 쏟아지고 있다. 많은 국제 사격대회는 선수들의 개인 공간까지 지원하며 경기력 향상을 이끈다. 의무용 침대를 설치하는 경우도 많지만 옥련에는 아무것도 없다.


● 선수용 도시락서 식중독균…도시락 배달 안되기도

20일에는 남자권총 선수들에게 조직위가 약속한 점심 도시락이 배달되지 않았다. 선수들은 오후 3시까지 식사를 하지 못했다. 최악의 상황에서 경기에 나서야 했다. 이뿐만 아니다. 21일 사격과 펜싱 종목에 출전하는 각국 선수들에게 지급될 예정이었던 도시락에서 살모넬라균이 나와 모두 폐기처분하기도 했다. 이날 선수들은 빵과 우유, 초코바 등으로 끼니를 해결해야만 했다.

계양 양궁장은 조직위를 대신해 대한양궁협회가 22일 대회를 하루 앞두고 관중 및 미디어편의시설 보강을 서둘러 진행했다. 양궁은 한국의 대표적인 종목이지만 20억원을 투자했다는 전광판은 한쪽 구석에 설치돼 관중석에서 멀리 떨어진 사대에서 결선을 치려야 하는 상황이었다. 양궁협회는 서둘러 임시 전광판 추가 설치를 자체적으로 하고 있다. 또한 조직위가 유통기한이 지난 도시락을 배달해 식사도 자체적으로 해결하고 있다.

유도의 경우 통역이 큰 문제다. 순위 결정 후 중국어 통역이 늦어 기자회견이 지연됐다. 레바논 선수들은 아랍어 통역이 나타나지 않아 자체적으로 영어를 할 줄 아는 선수가 대신 통역을 맡기도 했다.


● 휴지 없는 화장실이 상징하는 인천AG

아시아 각국에서 취재진이 모인 메인프레스센터는 화장실에 휴지가 부족한 상식 이하의 일이 매일 반복되고 있다. 미화담당자는 “화장실을 계속 살피고 청소하고 있는데 사실 휴지 공급이 잘 되지 않고 있다. 우리도 정말 답답할 뿐이다”고 토로했다.

네팔의 한 취재진은 “우리나라에서만 6명의 기자가 왔다. 올림픽과 월드컵을 치른 한국에서 열리는 대회라서 편의시설과 지원에 대해 많이 기대했는데 솔직히 부족한 것이 너무 많다”고 말했다.

인천아시안게임 조직위는 여러 문제점이 동시에 쏟아지고 있지만 책임자는 뒤로 숨고 권한이 없는 실무자들만 “우리 권한 밖이다”, “적은 예산으로 치르는 대회다”는 말만 반복하고 있다. 그러나 도시락과 휴지에 큰 돈이 드는 것은 아니다. 그보다 늦은 의사결정, 능동적이지 못한 대응, 책임 회피 등이 더 큰 문제다.

인천|이경호 기자 rush@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트위터 @rushlk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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