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전드가 말하는 나의 AG] 허정무 “패하면 ‘아오지 탄광’ 간다는 북한과 결승전…우리도 무서웠어”

입력 2014-09-26 06:4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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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정무 전 대한축구협회 부회장은 한국축구가 1978방콕아시안게임과 1986서울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획득할 당시 주축 선수였다. 1978년 방콕대회 바레인전 도중 드리블 돌파를 시도하고 있는 허 전 부회장(오른쪽). 스포츠동아DB

5. 허정무

78년 방콕AG 살얼음 승부 속 공동우승
서로 끌려갈 일 없었으니 다행이지 뭐…
서울AG 8강전 퇴장 하마터면 팀 질뻔
선수촌선 몸싸움 선수들 날 피하기도
그래도 두번이나 金…난, 복받은 사람

한국축구는 아시아 전통의 강호다. 8회 연속 월드컵 본선을 밟았다. 그러나 아쉬움도 있다. 아시안게임 금메달은 빛바랜 추억이다. 역대 3차례 우승을 경험했지만, 마지막 기억은 1986년 서울대회다. 그 이전 2차례는 모두 공동우승이었다. 1970년과 1978년 각각 버마(현 미얀마), 북한과 공동으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모두 태국 방콕에서 열린 대회들이었다. 이렇듯 한 번도 구경하기 어렵던 아시안게임 축구 금메달을 2번이나 딴 이가 있다. 허정무(59) 전 대한축구협회 부회장이다. 그는 2차례 출전해 모두 우승했다. 행복하고도, 아련한 꿈. 스스로 “쉽지 않은 경험을 2번이나 했던 나는 복 받은 사람”이라고 했다. 2014인천아시안게임이 한창인 가운데 최근 독일로 축구 단기연수를 떠난 허 전 부회장은 ‘이광종호’의 선전을 기원했다.


● 달갑지 않았던 북한과의 조우

1978년은 국가대표 1진인 화랑의 전성기였다. 화랑은 필요할 때 꾸려지는 충무(2진)와는 달리, 진정한 대표팀이었다. 그해 방콕아시안게임을 앞두고 2차례 국제대회를 평정했다. 국내 대통령배와 말레이시아 메르데카배를 차지했다. 자신감이 하늘을 찔렀다. 그렇게 12월 방콕아시안게임에 나섰다. 예선라운드를 통과하고, 준결승리그에 올랐다. 첫 상대는 중공(현 중국). 만만치 않았다. 고전하다 허 전 부회장의 도움을 받은 차범근 전 SBS 해설위원의 결승골로 1-0으로 이겼다. 중국으로선 2010년 2월 동아시안컵까지 이어진 ‘공한증’으로 불리는 극심한 징크스의 출발이었다.

결승 상대는 북한이었다. 당시 북한은 우리보다 전력이 앞섰다. 4년 전 테헤란아시안게임에서 북한을 피하기 위해 한국이 쿠웨이트에 일부러 져 예선 탈락했다는 얘기도 돌았다. “시대가 그랬다. 북한과 교류도 거의 없었고, 모든 걸 경쟁하던 시기였다. 북한에 지는 건 상상도 못했다. 정치와 축구가 구분될 수 없었다.”

두려운 것은 우리만이 아니었다. 북한의 중압감도 상당했다. “우리에게 패하면 아오지 탄광에 끌려간다는 소문이 돌았다. 물론 우리도 떨렸다. 안기부도, 국민들도 정말 무서웠다”는 그의 말처럼 양측 벤치는 바짝 긴장했다. 결국 결승답지 않은 결승을 치렀다. 진검승부를 내고픈 허 전 부회장의 속내와 달리 남북은 연장까지 서로 상대 진영을 향해 길게 공을 내지르며 시간을 보내다 함께 시상대에 섰다.

시상식에선 웃을 수 없는 해프닝도 벌어졌다. 북한의 누군가와 당시 대표팀 주장 김호곤 전 울산현대 감독이 시상대에서 옥신각신 몸싸움을 벌인 것이다. 그만큼 기 싸움도 치열한 시절이었다. “내심 멋진 승부를 기대했지만, 다행스럽다는 생각도 들었다. 내용은 필요 없이 무조건 결과를 내야 했으니…. 하긴, 우리도 북한선수들도 조용히 끌려갈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 진정한 멀티 플레이어가 됐던 서울아시안게임의 기억

현대축구에서 가장 강조되는 것이 다양한 포지션을 소화할 수 있는 ‘멀티’ 능력이다. 대부분의 팬들은 허 전 부회장을 출중한 미드필더로 기억하지만, 실은 골키퍼를 제외한 모든 포지션을 소화한 선수였다. 1978년 방콕아시안게임 중국전 도중 오른쪽 풀백을 맡던 김호곤 전 감독이 부상으로 빠지자, 한국 벤치는 허 전 부회장에게 그 자리를 맡겼다. 전반 어시스트를 한 뒤 후반 들어선 측면 수비수로 나섰다.

네덜란드 아인트호벤에서 활약한 1982년 뉴델리아시안게임을 건너뛴 그는 1986서울아시안게임에 다시 출전했다. 그해 멕시코월드컵을 마친 직후라 역시 우승을 확신했다. 도무지 적수가 없었다. 조별리그에서 중공과 또 마주쳐 4-2 완승을 거뒀다. 그러나 위기가 왔다. 허 전 부회장은 이란과의 8강전에서 경고누적으로 퇴장 당했다. 1-0 리드 상황에서 관중석으로 올라갔다. 후반 종료 직전 동점골. 가슴이 철렁했다. 연장을 잘 버티고 승부차기 끝에 4강 진출에 성공했지만, 하마터면 그의 축구인생도 함께 날아갈 뻔했다. “정말 무섭더라. 8년 전 북한과의 결승전은 아무 것도 아니었다. 어찌나 초조하던지, 손톱이 죄다 뜯겨 있었다. 내내 기도하면서 봤다. 다행히 4강 상대가 인도네시아였고, 다시 출전한 결승에서 사우디아라비아를 만나 유종의 미를 거뒀다.”

당시 선수촌에서 소소한 추억도 만들었다. 중국의 주포였던 마린을 대인 방어하는 게 그의 임무였는데, 얼마나 몸싸움이 심했는지 아침식사를 하다 허 전 부회장을 본 마린이 그 자리에서 일어섰다. “마린도, 이름 모를 이란의 한 공격수도 밥 먹다 그냥 갔다. 얼마나 싫었으면 그랬을까 싶어 쓴웃음이 났다. 그게 다 추억이다. 여러 포지션을 소화한 것도, 당시에는 서운했지만 이젠 아니다. 우리 후배들도 영원한 추억을 만들었으면 좋겠다.”

인천|남장현 기자 yoshike3@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트위터 @yoshike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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