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형모의 아이 러브 스테이지] 무보정·무반전…뻔하지만 가슴 뭉클한 이야기

입력 2014-12-04 06:5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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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화꽃향기는 자극적인 요즘 공연 트렌드를 따르지 않은 순수한 맛을 내는 뮤지컬이다. 암의 고통에 몸부림치는 미주(유정은 분)를 안고 오열하며 노래하는 승우(장덕수 분). 사진제공|카라멜엔터테인먼트

■ 뮤지컬 ‘국화꽃향기’

김하인 작가 소설 원작…벌써 세번째 무대
요즘 트렌드와는 사뭇 다른 순수한 이야기
미주를 부둥켜안고 오열하는 승우 명장면


7년을 기다려 준 승우(장덕수 분)에게 미주(유정은 분)가 처연한 얼굴로 묻는다. “왜 나를 사랑하니?” 승우가 대답한다. “당신이니까요.”

뮤지컬 ‘국화꽃향기’의 명대사다. 자칫 오글거릴 수 있는 이런 대사가 마음밭에 콕 박힐 수 있는 것은, 이 한 마디를 하기까지 승우가 미주에 대한 사랑을 얼마나 켜켜이 쌓아 왔는지를 관객들이 지켜보았기 때문이다.

김하인 작가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박해일, 고 장진영의 동명의 영화가 유명하다. 뮤지컬 버전 국화꽃향기도 관객들의 코와 마음에 꽃향기를 스며들게 만들며 초연 때부터 사랑받아 왔다. 이번이 벌써 세 번째 무대다.

국화꽃향기는 요즘 공연계에서 보기 드문 순수한 맛의 작품이다. 딱 한 줄로 이 작품의 매력을 표현하자면 ‘무보정 무반전의 감동’이다.

‘어떻게 하면 좀 더 자극적일까’, ‘화려할까’, ‘돈을 썼다는 표시가 날까’를 고민하는 요즘 공연 트렌드에 비추어 보면 국화꽃향기는 촌티가 풀풀 나는 작품일지 모른다.

하지만 때로는 ‘올디스 벗 구디스’다. 화장기 하나 없는 맨 얼굴이지만, 그래서 더 진솔하게 보이고 들린다. 뻔하게 예상되는 스토리는 뻔하게 흘러간다. 반전이 없다. 극의 템포도 우직스러울 정도로 차분하다.

대학 신입생 승우는 지하철에서 우연히 마주친 미주에게 첫 눈에 반한다. 미주가 활동하는 동아리에 가입한 승우는 기회를 잡아 마음을 고백하지만 미주에게 승우는 그저 귀여운 후배일 뿐이다.

승우가 군대에 가 있는 동안 미주는 졸업을 하고, 두 사람은 7년이란 세월을 건너 유명 라디오 PD와 무명가수의 신분으로 재회한다. 그리고 결혼과 임신. 하지만 미주에게는 말기 위암이라는 위기가 닥쳐온다. 록그룹 야다 출신의 장덕수는 승우의 순정을 섬세하게 표현한다. 이런 연기는 순애보와 스토커의 경계선을 조심스럽게 타야 한다. 시의적절하게 사용되는 소품은 안경이다.

미주 역의 유정은은 선이 곱고 여리지만 코믹한 분위기도 낼 줄 아는 배우다. 임신한 미주는 승우에게 자신이 위암에 걸렸다는 사실을 숨긴다. 뒤늦게 이 사실을 알게 되지만 승우 역시 미주를 위해 모른 척한다.

무시무시한 고통을 견디지 못하고 몸부림치는 미주를 부둥켜안고 승우가 부르는 넘버는 보는 이의 가슴을 후벼 판다. 이 작품의 가장 처절한 장면이자 명장면이다.

소극장 작품의 조미료는 멀티배우들이 쳐주어야 한다. 황서현은 미소년의 이미지를 갖고 있지만 은근 글래머러스한 몸매를 과시하며 술집 이모부터 할머니까지 다양한 역할을 소화해냈다.

마치 잉크가 3분의 1쯤 날아간 옛 일기장을 뒤적이는 듯한 뮤지컬. 겨울의 초입에서 뮤지컬국화꽃향기는 당신에게 묻는다. 지금 당신은 그(그녀)를 왜 사랑하시나요.

양형모 기자 ranbi@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트위터 @ranbi3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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