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화장’ 안성기…중년의 삶과 죽음 그리고 욕망을 말하다

입력 2015-03-19 06:5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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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안성기가 영화 ‘화장’을 통해 삶과 죽음에 관한 심오한 질문을 던진다. 동시에 안성기는 특유의 중후하고 은은한 분위기로 관객을 사로잡는다. 김민성 기자 marineboy@donga.com 트위터 @bluemarine007

임권택 감독의 선택·김훈 작가의 소설원작
파격멜로를 선택한 이유



오줌주머니 찬 50대·죽어가는 아내
정말 안 된 중년 남성의 삶에 공감


“영화를 다시 시작한 게 1978년이다. 영화 하는 사람을 이상하게 보던 때였다. 어딜 가던 문전박대였다. 사람들의 그런 생각을 불식시키고 싶었다.”

벌써 36년이 지났지만 안성기(63)는 당시의 ‘결심’을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다. 굳이 과거의 다짐까지 꺼낸 배경은 ‘왜 멜로영화를 하지 않느냐’는 질문이었다. 4월9일 개봉하는 영화 ‘화장’(제작 명필름)으로 중년의 욕망 그리고 삶과 죽음에 관한 질문을 던지는 그는 “주제가 강한 영화를 하다보니 이젠 사랑을 연기하는 게 나와 맞지 않는 느낌”이라고 했다.

‘화장’은 안성기란 배우가 없었다면 세상에 나오기 어려웠을지 모른다. 적당한 성공과 덕망을 갖춘 50대 중년을 연기할 만한 배우는 많지 않다. 연출자 임권택 감독부터 제작사까지 처음부터 안성기를 떠올렸다. 그의 생각도 다르지 않았다. 시나리오가 나오기도 전, 출연 제안을 받자마자 “바로 오케이”를 한 이유다.

알려진 대로 ‘화장’은 작가 김훈이 2004년 발표한 단편소설이 원작이다. 그해 이상문학상 대상 수상작이다.

“집에 있는 책들을 한 번씩 정리해 버려도 이상문학상 전집은 반드시 보관한다. 1회부터 모은 책이 전부 있다. 단편소설은 짧은 분량으로 압축된 이야기다. 연기에 큰 도움이 된다. 10년 전쯤 이상문학상 전집에서 ‘화장’을 처음 읽었다. 김훈 작가의 대단한 필체 덕분에 내용을 전부 기억할 정도였다. 잊기 어려웠다.”

극중 안성기는 “주변 모든 환경으로부터 억압받고 고통받는 사람”이다. 전립선염 탓에 남몰래 소변 주머니를 차고 다니는 그는 죽어가는 아내(김호정)를 정성스레 병간호한다. 집에서도, 사회에서도 더할 나위 없는 남자이지만 가슴은 텅 빈 듯하다. 젊은 여직원(김규리)이 풍기는 건강한 향기에 걷잡을 수 없이 빠져드는 모습은 그래서 설득력이 있다.

“웬만한 중년 남자라면 거의 공감할 거다. 아…. 정말 안 된 남자다.”

배우 안성기. 김민성 기자 marineboy@donga.com 트위터 @bluemarine007


임권택 감독과는 2002년 ‘취화선’ 이후 13년 만에 재회했다.

“어린 시절, 제목도 생각나지 않는 작품(‘십자매 선생’)을 포함하면 8편이다. 달라진 건 없다. 매일 아침 모여 그날 찍을 내용을 회의해 정하는 방식도 같다. 감독님은 좋고 나쁨이 확실하다. 표현이 안 될 땐 감정이 나올 때까지, 끝까지 간다.”

최근 안성기는 여러 장르와 무대를 넘나들며 연기 활동을 잇고 있다. 지난해 액션영화 ‘신의 한 수’로 흥행을 맛봤고 할리우드 영화 ‘더 라스트 나이츠’ 촬영도 마쳤다. “새 경험을 하자”는 마음으로 나선 무대였다. 모건 프리먼이 주인공이며, 판타지 장르라는 점도 매력으로 다가왔다. 복병은 ‘영어 대사’였다.

“동양인 군주 역이라 영어 발음에 크게 신경 쓰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웬걸! 제작진이 완벽한 발음을 원했다. 대사 분량도 엄청났다. 아침에 눈뜨자마자, 자기 전에 심지어 화장실에까지 영어 대사를 쭉 외웠다. 뇌가 쉴 틈이 없었다.”

그러면서 안성기는 “나이가 들면 말이 많아진다”고 했다. 자신이 아니라 요즘 주로 맡고 있는 영화 속 인물에 관한 얘기다. 젊은 후배들과 호흡하며 그들의 극중 캐릭터를 보완해야 하는 역할이란 설명이다.

“스트레스가 많다. 그래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는 ‘인정사정 볼 것 없다’이다. 대사가 거의 없었다. 하하!”

이해리 기자 gofl1024@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트위터@madeinhar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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