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일동포 배우 현리 “이창동 감독과 전도연, 나를 설레게 했다”

입력 2015-03-28 08: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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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현리. 스포츠동아DB

배우 현리(29)는 연기를 접하고 연기자를 직업으로 택할 때 느낀 감정을 잊지 않고 있다.

“내 안에 혁명이 일어나고 있구나.”

일본 도쿄에서 태어나고 자란 그는 현재 일본 영화계가 주목하는 배우다. 주연영화 ‘더 보이스 오브 워터’가 올해 2월 열린 베를린국제영화제 포럼부문에 진출하면서 그를 향한 관심의 시선은 더욱 뜨거워지고 있다.

현리에게 연기는 ‘운명’처럼 왔다.

재일동포 3세인 그는 “한국으로 와 무언가에 도전해야 한다는 생각을 늘 해왔다”고 했다. 연기를 접한 건 2007년. 연세대학교 국제학부에 교환학생으로 진학한 직후였다.

“학교 다니며 3년 동안 연기공부를 했다. 일본에선 국어를 잘해서 법대(아오야마 가쿠인 대학)를 다녔지만 한국어로 대사를 외워 연기하기란 쉽지 않았다. 주로 많은 양의 대사를 독백하는 연기를 했다. 그렇게 한국어 실력이 늘었다.”

학업을 마치고 돌아간 그는 일본에서 먼저 연기를 시작했다. 우연히 응했던 영화 오디션에 합격한 뒤 길이 열렸다. 그로부터 3~4년이 흐른 지금은 실력도, 인기도 올랐다.

특히 지난해 개봉한 ‘더 보이스 오브 워터’가 해외에서까지 주목받은 덕분에 일본 영화계의 시선을 받는 배우로도 성장했다.

NHK 50부작 대하드라마 ‘야에의 벚꽃’으로 주목받기 시작했고, 영화 ‘인 더 히어로’, ‘밤으로 가는 길’, ‘인터미션’ 등으로 쌓아온 실력이 마침내 인정받은 셈이다.

현리의 부모는 딸에게 아낌없는 지원을 해왔다.

그가 중학생일 때는 영국 옥스퍼드대학교 서머스쿨로 보내 현지 문화를 익히게 했다. 미술이나 음악을 배울 기회도 마련해줬다. 한국인으로, 일본에서 나고 자란 그가 다양한 문화와 사람을 접하며 자라도록 돕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겪는 ‘소외감’은 피하지 못했다.

“유년기, 알게 모르게 소외감을 느꼈던 것 같다. 초등학교 6년 동안 담임선생님이 같았다. 그 분의 배려와 관심으로 따돌림 당하지 않고 문제없이 학교생활을 했지만 그래도 한국인이다 보니 갖게 되는 마음이 있었다.”

그 마음이 비로소 치유된 건 연기를 시작한 뒤였다.

“연기할 때는 어느 나라 사람이고, 어느 환경에 있든 지 다 똑같다는 생각이 든다”며 “특히 영화는 언어까지 뛰어넘지 않나. 연기로 여러 나라 사람과 소통할 수 있다는 걸 알았다”고 했다.

○“한국 문화 익히고 싶어 전통무용도 배워”

주로 도쿄에 머무는 현리는 요즘 한국무용을 배우고 있다. “전통무용을 배우면 그 나라의 문화까지 익힐 수 있다는 생각”에서 선택한 새로운 취미다.

“연기가 시작된 건 3000년 전이지만, 무용은 그 보다 먼저 생기지 않았나. 나라의 문화성이 무용에 담겨 있다. 몸으로 문화를 체득하고 싶었고, 그래서 한국무용을 택했다.”

현재 홍콩에서 진행 중인 제39회 홍콩국제영화제에 ‘더 보이스 오브 워터’를 갖고 참석 중인 그는 “여건이 허락한다면 5월에 열리는 전주국제영화제에도 꼭 참석하고 싶다”고 했다.

한국영화와 감독, 배우들을 향해 갖고 있는 ‘로망’도 크다.

“이창동 감독님의 ‘밀양’, 그 영화에 출연한 전도연 씨의 모습을 보고 커다란 충격을 받았다. 류승범, 배두나처럼 개성 있는 배우가 좋다. 지금 한국은, 마치 70, 80년대 일본 영화를 보는 것처럼 좋은 감독님이 많이 활동하고 있다.”

현리는 “밖으로 나아가고 싶은 희망이 있다”고 말했다. 그가 가리키는 ‘밖’은 한국 그리고 미국과 유럽이다.

“문화가 정치나 갈등의 벽을 허무는 순간을 많이 봐왔다. 내가 중학생 때였다. 일본에서 ‘욘사마’ 신드롬이 일어나고 한류가 만들어졌다. 상상도 못한 일이다. 그 한류가 탄생하는 걸 보고 ‘나도 연기자가 될 수 있겠다’는 가능성을 봤다.”

그는 한 번도 일본 이름을 가져본 적이 없다. 본명은 이현리. 연기를 할 땐 성만 떼어낸 현리라는 이름을 쓴다.

“일본에선 흔한 이름이 아니다. 한국 이름 그대로 연기자로 활동하는 사람도 나 뿐 인 것 같다. 내 진짜 이름을 쓰고 싶었다. 나는 한국인이니까.”

이해리 기자 gofl1024@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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