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를 깨달은 특급도우미 정대세, 수원을 살리다

입력 2015-04-01 05: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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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대세가 달라졌다. 무리한 슛보다는 영리한 도움으로 팀에 기여한다. 수원 서정원 감독은 “희생의 의미를 찾았다”고 평가했다. 3월 18일 호주 골드코스트에서 열린 2015 AFC 챔피언스리그 조별리그 G조 3차전 브리즈번 로어와의 원정경기에서 득점한 정대세(오른쪽 2번째)가 동료들의 축하를 받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서정원 감독 ‘패싱축구’에 철저히 변화
성남전 연속AS 등 완전체 공격수 변신
“가족이 날 지켜본다는 생각으로 뛴다”

“스트라이커의 존재 목적은 딱 하나라고 봐요. 골이죠.”

K리그 클래식(1부리그) 수원삼성 정대세(31)의 주관은 뚜렷했다. 언제 어디서나 공격수는 골로 말해야 한다는 일종의 고정관념이었다. 축구화를 신고, 포지션을 결정한 뒤 항상 같은 마음가짐이었다. 일본(가와사키 프론탈레·2006∼2010년)에서도, 독일(VfL보훔·FC쾰른·2011∼2012년)에서도 한결같았다.

전통의 명가 수원은 짧지 않았던 부진의 터널을 지나 2014시즌 클래식 정규리그 2위에 올랐다. 정대세는 지난해 7골·1도움을 올렸다. 만족할 수 없었다. 더 이상 주전도 아니었고, 기록도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교체 멤버로 이 정도면 나쁘지 않다”며 자위했지만, 붙박이 공격수로 뛰며 10골·2도움을 올린 2013시즌과 북한대표팀의 일원으로 출전한 2010남아공월드컵을 돌이켜볼 때 자존심이 상하는 것은 당연했다. 외부에선 ‘한 물 갔다’는 냉혹한 평가를 내렸고, 팀에선 ‘계륵’처럼 비쳐졌다. 있으면 좋지만, 없어도 딱히 상관이 없는….

수원이 올해 초 경남 남해와 스페인 말라가에서 동계전지훈련을 하며 새 시즌에 대비할 때도 가시방석이었다. 계약기간 마지막 해. 구단과 연봉 조정도 매끄럽지 못했다. 어렵게 합의점을 찾았어도 서로 양보해야 했다. 그렇다고 상황이 좋은 것도 아니었다. 올 시즌을 앞두고 이뤄진 전력보강은 대부분 공격진에 초점이 맞춰졌다. 카이오, 레오 등 경쟁자들이 지난해보다 오히려 늘었다. 남해 전지훈련 당시 정대세는 “머리가 복잡하다. 수원 아닌 다른 K리그 팀은 무의미한데, 조금 답답한 마음이다”고 말할 정도였다.

살 길을 찾아야 했다. 변화가 필요했다. 플레이도, 마음도 바꿔야 했다. 수원 서정원 감독이 추구하는 ‘패싱 축구’에 철저히 녹아야 했다. 그는 ‘자이니치(재일한국인 또는 북한인)’다. 스스로 존재감을 드러내지 못하면 곧 도태되는 경계인이었다. 그런데 K리그는 그렇지 않았다. ‘나’보다는 ‘우리’가 우선이다. 정대세의 수원이 아닌, 수원의 정대세가 먼저다.

다행히 그는 프로였다. 이를 악물고 땀 흘린 결과, 또 다른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선발과 교체 출전에 연연하지 않기로 했다. 그 대신 필드에 있는 한 모든 힘을 쏟았다. 가족의 힘도 컸다. 자기만을 바라보는 아내, 지난해 10월 태어난 아들 태주를 보며 용기와 위안을 얻었다.

그렇게 욕심을 버린 결과는 ‘특급 도우미’였다. 예전 같으면 슛을 할 때, 지금은 좀더 좋은 위치의 동료에게 볼을 배급한다. 3월 14일 인천과의 홈경기(2-1 승)와 22일 성남 원정경기(3-1 승)에서 연속 어시스트를 올린 데 이어 2015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에서도 골과 도움을 기록하며 ‘완전체 공격수’로 재탄생했다. 본인도 “신기하다. 왜 이렇게 도움을 잘하는지 나도 잘 모르겠다. 어찌됐든 항상 가족이 날 지켜본다는 생각을 하며 뛴다. 더 이상 엉뚱한 행동을 하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채찍질을 한다”며 웃었다.

서 감독의 말에 해답이 있다. “희생의 의미를 찾은 것 같다. 자존심을 버리고 공존하는 선수가 됐다. 참 고맙다.” 달라진 정대세가 가져온 긍정의 바람은 수원 상승세의 원동력이다.

남장현 기자 yoshike3@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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