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국의 야구여행] 모두가 해바라기 꿈꿀 때, 달맞이꽃으로 핀 박한이

입력 2015-06-12 05: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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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박한이는 데뷔 후 14년 연속 세 자릿수 안타라는 성적에서 알 수 있듯 꾸준함의 대명사다. 성실하고 우직한 모습에 팀 동료들과 팬들은 박한이를 더욱 좋아한다. 스포츠동아DB

가성비·꾸준함의 대명사 ‘착한이’ 박한이
“딱 그 정도 선수란 말 듣지 않기 위해 노력”
자신보다 팀·동료 빛내는 조연 역할 충실


친근한 동네 형 같은 푸근한 모습만 보면 ‘순한이’지만, 내면의 승부욕만큼은 ‘독한이’다. 돈복에 있어선 ‘박한이’지만, 가성비에 있어선 ‘착한이’다. 늘 ‘착한’ 계약에 늘 ‘착한’ 활약. 있을 땐 몰라도, 없을 땐 티가 나는 존재. 삼성 박한이(36)에게는 언제부터인가 ‘착한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박한이는 2013년 말 삼성과 4년 28억원이라는 ‘소박한’ FA(프리에이전트) 계약을 했다. 2009년 생애 첫 FA 때 2년간 10억원에 사인했고, 두 번째 FA 때도 남들에 비해 제대로 대우받지 못한 계약을 했다. 웬만한 주전급이면 계약기간 4년에 50억∼60억원이 우스워진 프로야구 FA 시장. 그래서 그의 계약은 남들이 보기에는 헐값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계산에 능하지 못한 탓일까. ‘투박한’ 외모만 보고는 그렇게 오해하기 십상이다. 그러나 그는 삼성 선수단 내에서 누구보다 수가 ‘빠른이’로 통한다. “한이랑 오목하고 장기를 두면 못 이긴다”고 팀 선배 이승엽(39)은 귀띔한다. 단지 세상을 살아가는 셈법에 약하고, 약삭빠르지 못할 뿐이다.

많이 부족해 보이고, 많이 손해 본 듯한 FA 계약. 그러나 정작 본인은 ‘안분지족(安分知足)’이다. 오히려 “받은 돈 이상으로 잘해야 한다. 안 그러면 큰일 난다”며 ‘순박한’ 미소를 짓는다. ‘바보 아냐?’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오지만, 이유를 들어보니 일리가 있다.

“만약에 말이죠. 제가 만약 야구를 못하면 남들이 다 그럴 것 아닙니까. ‘거 봐라, 박한이는 딱 그 정도 수준의 선수였어’라고. 그런 평가를 듣지 않기 위해서라도 더 열심히 하고, 잘해야 합니다. 야구 잘하면 ‘착한이’지만, 야구 못하면 이 바닥에서 하루아침에 ‘먹튀’ 되는 거죠.”

이미 지나간 시간에 상처받거나 미련을 두지 않는다. 그 대신 땀의 가치를 믿고 책임감 하나로 뚜벅뚜벅 자신의 길을 걸어간다. 그런 정직함으로, 그런 성실함으로, 2001년 프로 데뷔 이후 지난해까지 14년 연속 세 자릿수 안타를 기록했다.

곱셈과 나눗셈이 대접받는 바쁜 세상, 중간과정을 생략하고 모두가 지름길을 찾고 일확천금을 꿈꾼다. 그러나 박한이는 덧셈과 뺄셈의 미덕과 가치가 느껴지는 아날로그 같은 야구인생을 살아간다. 모자란 것은 덧셈으로 채우고, 넘치는 것은 뺄셈으로 깎는다. 천천히, 정확히, 그리고 꾸준히, ….

올 시즌 초반 부상 여파로 한 달 가까이 1군 엔트리에서 제외돼 세 자릿수 안타 행진이 중단되지 않을까 걱정됐지만, 그는 또 또박또박 안타를 치면서 3할대 타율을 이어가고 있다. 15년 연속 100안타쯤은 충분히 넘어서고도 남을 안타생산 속도다. 내년이면 새 구장에서 양준혁이 보유하고 있는 역대 최고 기록인 16년 연속 세 자릿수 안타와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다.

박한이의 야구를 설명하려면 언제나 고민이다. 엄청난 파워를 자랑하는 것도 아니고, 아주 빼어난 스피드를 보유한 것도 아니다. 모두가 놀랄 만한 정확도를 지닌 것도 아니다. 잘하기는 하는데, 특출 난 기록도 없다. 어찌 보면 향기도 없고, 어찌 보면 색깔도 없다. 그렇지만, 그래서, 그는 우리에게 더 친근하게 다가오는지 모른다.

꼭 향기가 있어야만 꽃일까. 꼭 색깔이 있어야만 꽃일까. 프로 15년차 감초. 모두가 찬란한 빛을 좇는 해바라기를 꿈꿀 때, 박한이는 자신보다는 동료, 나보다는 우리를 빛내는 조연 역할에 충실했다. 밤에 피었다 해 뜨기 전에 조용히 지는 은은한 달맞이꽃처럼.

이재국 기자 keystone@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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