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제 감독, 그의 ‘소수의견’ 이후가 더 궁금한 까닭

입력 2015-07-04 08: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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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소수의견’ 김성제 감독(맨 왼쪽에서 두번째). 사진제공|하리마오 픽쳐스

김성제(45) 감독은 지금 제주도에 집을 짓고 있다. 벌써 7개월째다.

손수 터를 닦고 벽돌을 쌓고 타일을 붙인다. 간혹 인부 한두 명의 도움을 받지만 거의 모두 직접 하고 있다.

집에 타일과 벽돌을 배달해주는 이들은 그의 직업이 영화감독이란 사실을 모른다. 제주도에서는 주로 ‘아저씨’로 불린다.

사실 김 감독은 몇 년 째 “직업은 있되 직장은 없는” 생활을 해왔다.

1996년 영화사 시네마서비스에 입사하고 홍보마케팅부터 시작해 2005년 ‘혈의 누’를 마지막으로 퇴사하기까지 시간을 빼면 줄곧 직장을 갖지 않았다.

영화감독이란 타이틀로 첫 영화를 내놓기까지 10년 가까운 시간이 더 걸렸다.


● “소수의견은 적당히 절망적인 영화”

김성제 감독과 그가 연출한 영화 ‘소수의견’은 닮아 있다.

그는 솔직했다. 냉담할 만큼 냉철했고 완벽에 가까울 정도로 치밀하다. ‘소수의견’ 안에는 이런 그의 성향이 온전히 녹아있다. 물론 굳이 드러내지 않지만 세상을 보는 시선에서는 온기도 느껴진다.

‘소수의견’은 노골적으로 희망을 얘기하지 않지만 세상에는 흔들리지 않는 믿음과 신념을 가진 이들이 여전히 남아 있다고 말하는 영화다.

“감정적이지 않길 바랐다. 덤덤하게 풀어낼 수 있었던 건 내게 어떤 야심이 없었기 때문인 것 같다. 여기저기 쳐다봐야 계산이 섰을 텐데, 다른 곳은 보지 않았다. 다만 시나리오 맨 앞 장에 작은 글씨로 은퇴작이 아니길 바란다는 글을 써 놓고 촬영장에 나갔다.”

‘소수의견’은 실화로도, 허구로도 읽힌다.

2009년 서울 용산 재개발 철거현장에서 일어난 공권력과 철거민의 대치, 그 과정에서 벌어진 사망 사건으로부터 모티프를 얻었지만 여러 갈래로 해석된다.

“영화에서는 모두가 위법한 상황이다. 서로의, 스스로의 양심이 맞붙는다. 모든 이야기가 끝나고 나면, 염치와 몰염치가 남는다. 그렇게, 적당히 절망적인 영화다.”

영화 ‘소수의견’. 사진제공|하리마오 픽쳐스



● 기획부터 촬영, 개봉까지 ‘드라마틱함’의 연속

김성제 감독은 2010년 봄, 영화의 원작이 된 손아람 작가의 소설 ‘소수의견’을 읽었다.

“오랫동안 준비해왔던 시나리오를 엎기로 한 날이었다. 함께 시나리오를 구상해왔던 김유평 프로듀서가 ‘네가 좋아할 책’이라면서 소설을 주더라. 책을 일고 일단 손아람 작가부터 만나야겠다고 생각했다.”

‘소수의견’은 여러 이유로 2년 동안 개봉이 지연된 ‘사연 있는’ 영화이지만, 촬영을 시작하기까지는 더 드라마틱한 일들이 겹쳐 일어났다.

2010년 6월, 김 감독은 손 작가를 만났다. ‘판권’ 문의가 목적이었지만 그보다 이야기에 대해 궁금한 것들이 더 많았다. 당시 여러 영화사로부터 판권 판매 제안을 받았던 손 작가는 김 감독이 내비치는 호기심에, 그 역시 호감을 느꼈다.

“일단 판권부터 사야 했다. 돈도, 방법도 없었다. 그때 영화사 하리마오픽쳐스의 임영호 대표를 찾아갔다. 혹시 나에게 써줄 쿠폰이 있다면, 그걸로 ‘소수의견’의 판권을 사달라고 졸랐다. 하하!”

김 감독과 임 대표는 1980년대 후반 중앙대 심리학과를 함께 다녔던 선후배 사이다.

영화 쪽 일을 하면서도 특별한 친분을 나누지는 않았지만, 김 감독의 엉뚱한 제안을 받은 임 대표가 선뜻 판권을 구입하고 제작을 시작한 데는 이야기의 힘에 동의했기 때문이다.

2013년 3월21일 영화 촬영이 시작됐다.

김 감독은 “정치 드라마로 생각했다”고 돌이켰다.

“시민사회, 로펌, 야당, 기자까지 여러 인물이 여러 이유로 뒤섞여 있다. 아주 정치적인 사람들이다. 그래도 영화에 가해자를 두고 싶지 않았다. 모든 이에게 연민을 느끼게 하고 싶었다.”

이제 촬영이 끝난 지 2년이 지났다. 영화 기획을 시작한 때도 벌써 5년 전이다. 그런데도 김성제 감독의 머리에는 ‘소수의견’에 얽힌 거의 모든 순간이 또렷한 기억으로 남은 듯했다.

가령 주인공 윤진원 변호사 역을 제안하려고 배우 윤계상을 찾아갔을 때도 그렇다. 그는 윤계상과의 첫 만남을 “면접”이라고 칭했다.

“모든 신인감독은 배우에게 면접을 보러 건다. 어떻게 표현해도 그건 면접이다.(웃음) 윤계상과 만나 내 이야기부터 했다. 영화를 잘 만들 줄 알았지만 그동안 내 인생은 마치 파도를 타는 것 같았다고. 윤계상도 비슷한 고민을 하는 듯 보였다. 서로 닮아 있다.”

김성제 감독은 농담처럼 “면접에 강한 편”이라고 했다. 대학교 졸업도 하지 않았던 때, 영화가 좋아 영화사에 취직하려던 그가 처음 찾아간 곳은 ‘소수의견’의 배급사이기도 한 시네마서비스였다.

“당시 강우석 감독님이 면접을 보는데 시네마서비스가 어떤 회사라고 생각하는지 묻더라. 전혀 예상하지 못한 질문이었다. 순간 ‘영화를 서비스하는 곳’이라고 답했고, 그렇게 뽑혔다. 하하! 대학 졸업장도 못 받고 여의도로, 광화문으로 영화 보도자료 배달부터 다녔다.”

‘소수의견’을 준비하면서도 그는 “투자가 이뤄지지 않으면 영화를 관두겠다”고 결심했다고 털어놨다. “이뤄지지 않는 일로 내 인생을 파괴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하던 때였다.

평일엔 시나리오를 쓰고, 주말엔 식당 주방에서 요리를 배운 이유도 나름대로 미래를 위한 준비였다. ‘소수의견’의 개봉이 계속 미뤄지던 작년 3월, 그는 서울 생활을 정리하고 제주도로 떠났다.

“제주도에서라면 아내와 둘이 열심히 일해서 먹고 살 수 있겠구나 싶었다. 살 집도 구하지 않고 자동차에 짐을 실어 완도에서 배를 타고 제주도로 갔다. 그때부터 제주에 살고 있다. 집이 완성되면 1층엔 작은 식당을 낼 생각이다. 영화? 물론 ‘소수의견’이 마지막 영화가 아니길 바란다.”

스포츠동아 이해리 기자 gofl1024@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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