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아리랑’ 이소연, 타고난 소리꾼 뮤지컬을 만나다

입력 2015-08-03 15:3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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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아리랑’에서는 우리 가락이 퍼진다. 시대를 넘어 좋아도 불렀고 슬퍼도 불렀던 이 노래는 관객들의 어깨를 덩실거리게 하다가도 가슴을 저미게 한다. 쓰러진 민초들을 일으켰던 우리의 소리는 ‘아리랑’의 주제이자 방점이기도 하다.

마치 진득한 맛을 품은 사골 같으면서 그 맛을 더 맛깔나게 만드는 ‘비밀 재료’와 같은 소리로 ‘아리랑’의 힘을 더해주는 국악인 이소연을 만났다.

“실감이 안 나요. 하하. 창극을 하는 사람으로서 뮤지컬이라는 장르에 도전하게 돼서 설렜죠. ‘아리랑’을 읽어보니 매력적인 캐릭터가 있고 우리 소리가 적절하게 있어서 지루하지 않겠다 싶었어요. 우리 소리의 또 다른 매력을 보여줄 수 있을 것 같아서 출연을 결정하게 됐죠.”

‘아리랑’은 일제강점기 시절 파란의 시대를 살아왔던 민초들의 삶과 사랑, 그리고 투쟁의 역사까지 담아낸 작품이다. 이소연은 가족을 위해 고난과 유린의 세월을 감내하는 여성 차옥비 역을 맡았다. 차옥비는 ‘예인’으로 연기자가 우리 소리를 할 줄 알아야 했다. 고운 얼굴선이지만 강인한 모습이 묻어 있고 창극을 통해 오랜 기간 연기를 해온 소리꾼 이소연이야 말로 ‘차옥비’를 연기하기에 안성맞춤이었다.

“수난의 나날들을 이겨내는 옥비잖아요. 내제된 응어리를 절제된 소리로 표현해야 했어요. 슬픔을 초월한 슬픔이라고나 할까요? 감정을 절제하면서 고난을 표현을 많이 했어요. 예를 들어, ‘아’라는 가사만으로 하고 싶은 말을 응축해서 표현하는 장면이 있는데 직접적인 표현은 없지만 오히려 속이 시원해요.”

무대에서 판소리 뿐 아니라 뮤지컬 넘버도 소화한다. 색이 다른 음악을 하는 것에 대한 어려움이 없는지 묻자 그는 “사실 판소리 하는 분들은 대체적으로 대중가요도 잘 부른다”며 “친구들끼리 노래방 가서 대결할 정도다. 아마 ‘나가수’ 뺨치지 않을까”라며 웃으며 말했다. 노래에 대한 어려움은 전혀 없었지만 생면부지의 배우들과의 만남은 긴장이 되기도 했다.

“저를 어떻게 바라볼지 궁금했어요. 솔직히 그렇잖아요. 누구나 단계를 오르면서 주인공도 하는 건데 저는 판소리 하다가 왔는데 한 번에 주인공으로 발탁됐으니 좋게 보지 않을 수도 있을 것도 같았거든요. 그래서 잔뜩 긴장했는데 막상 가보니 다 순수하시고 공연에 대한 열정이 가득하더라고요. 가장 고마웠던 사람요? 김우형 씨요. 아무도 몰랐는데 가장 먼저 인사해주더라고요. 감사하죠. 지금은 다들 잘 지내고 있어요. 배울 점도 많고요. 특히 데뷔무대이다 보니 처음 창극을 할 때가 기억이 났어요. 순수해지는 기분이라고나 할까요?”

연출가인 고선웅과는 국립극장 레퍼토리인 ‘변강쇠 점 찍고 옹녀’로 호흡을 맞춘 바 있는 이소연은 “‘아리랑’ 시나리오를 읽어보면 굉장히 거친데 마음이 ‘몽글몽글’해지는 것이 있었다. 이 글들이 무대에서 형성화 됐을 때 어떤 모습일지 굉장히 궁금했다”라고 말했다. 덧붙여 연습실에서 있었던 일도 꺼내놨다. 그는 “고선웅 연출가께서 강조하신 것은 슬픈 장면을 슬프게 표현하지 말라고 하셨다”며 “미간의 주름은 허락이 안 됐다. 그래서 결국 모든 배우들은 이마에 청테이프를 붙이면서 연습을 해야 했다”고 말했다.

“행복하게 사랑하는 마음으로 소리를 내야한다고 하셨어요. 처음에는 도대체 뭘 어쩌라는 건지 불만이 좀 있었죠. 자세하게 알려주시지도 않았거든요.(웃음) 점점 연습을 해보니 고선웅 연출가의 의도를 알게 됐어요. 노래를 부를 때 감정이 강해지면 표정이 일그러지는 게 대부분이잖아요. 그러니까 한 가지 표정만 나오는 거예요. 그런데 미간을 펴고 감정을 표현하다보면 여러 가지 길이 생겨요. 제가 스스로 정해서 갈 수 있게요. 더 풍부하게 연기를 할 수 있게 된 것 같아요.”


이소연은 ‘아리랑’을 통해 대중들에게 판소리를 좀 더 알리고 싶은 바람이 있다. 그는 “처음엔 익숙하지 않아 어렵다고 느껴질 수도 있지만 듣다 보면 그만의 재미가 있다”며 “아마도 다 좋아하실 거란 확신이 있다”고 말했다. 이소연 역시 처음부터 판소리가 좋아서 시작한 것은 아니었다. 판소리를 좋아하시던 아버지의 바람으로 시작하게 된 소리다.

“아버지가 창을 좋아하셨어요. 그래서 자식 중 한 명을 소리를 시키려고 하셨죠. 지금이야 우리 가락이 좋아서 하는 거지만 10살이 조금 넘은 아이가 듣는 창은 정말 재미가 없었죠. 그래서 한참을 끌려 다니듯 노래를 배웠어요.”

그는 “정말 너~~무 싫었다”며 웃으며 말했다. 가장 힘들었을 때를 묻자 그는 중학생 시절을 떠올렸다. 한창 모든 것에 민감한 10대가 아니던가. 이소연은 “다른 친구들은 다 단발인데 나는 예체능을 한다고 머리가 길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친구들의 눈초리가 싫었던 것 같다. 그 때는 머리를 기를 수 있는 게 엄청난 혜택(?)같아 보이지 않나”라며 또 다른 이야기를 꺼냈다.

“사춘기도 오고 변성기도 와서 별것도 아닌 일에 예민해했어요. 어느 날 영어 시간에 선생님께서 지문을 읽어보라고 시키셨는데 변성기가 찾아와서 쉰 목소리가 나왔어요. 그래서 선생님께서 목소리가 왜 그런지 물어보셨어요. 사실 그냥 물어보신 건데 제가 괜히 민감하게 받아들인 거예요. 집에 가자마자 꺼이꺼이 울면서 창을 그만두겠다고 했죠. 긴 머리고 싹둑 자르고 단발로 다녔어요. 1년 가까이 쉬게 됐죠.”

그렇게 판소리와의 인연은 끝이 난 줄 알았는데 그 연을 다시 붙잡은 것은 이소연이었다. 그는 “모르겠다. 그냥 미련이 남았나보다”라며 “다시 연습을 했는데 자신감이 붙고 잘 할 수 있을 것 같았다”고 말했다. 본격적으로 소리를 배우겠다고 결심한 그는 다니던 대학을 그만 두고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 음악과에 지원했다. 그 때만 해도 주변인들은 “위험한 선택”이라며 그의 자퇴를 뜯어 말렸다.

“인생의 전환점이었죠. 저는 학벌이 아닌 식견을 갖고 싶었어요. 당시에는 대금 소리, 해금 소리도 구분 못 했거든요. 그런 사람이 어떻게 우리 소리를 한다고 하겠어요. 그래서 자발적으로 알아보고 끌려서 들어가게 됐어요. 학교 다니면서 재미있었어요. 아마도 그 때 자아가 다져진 것 같아요. 예전에는 악을 질러 뭔가를 해내고 득음의 경지에 닿는 것이 중요했다면 학교를 다니면서 내가 해주는 소리로 이야기가 될 수 있는 것에 집중한 것 같아요. 생각의 전환도 된 시기였어요.”

그 결과 역시 빛났다. 이소연은 중요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 적벽가 이수자다. 판소리 대가 송순섭·안숙선에 사사를 받았다. 2010년 국립창극단의 객원 멤버가 됐고 2013년에는 정식 단원이 됐다. 이젠 국립창극단의 대표 배우가 된 그는 ‘코카서스의 백묵원’, ‘숙영낭자전’, ‘청’ 등 수많은 창극무대에 서며 우리의 소리를 알렸다. 그는 “계속해서 무대에 서서 우리 소리를 하는 게 꿈”이라고 밝혔다.

“다양한 작품과 소리 그리고 무대, 여러 가지를 해보고 싶어요. 예전에 ‘안티고네’를 창작판소리로 했을 때 역시나 언어 부분에서 한계가 느껴졌거든요. 인물의 이름이 외국어라 창극으로 관객들이 듣기에 불편하셨을 거예요. 그렇다고 ‘순이, 철수’ 라고 할 수도 없고요. 번역극을 각색하는 것이나, 대중들에게 다가가기 위한 노력은 제 숙제라고 생각해요. 연구를 많이 해서 기회가 된다면 더 많은 소리를 들려드리고 싶어요. 언젠간 1인극으로 창작 판소리를 할 수도 있겠죠?”

동아닷컴 조유경 기자 polaris27@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사진제공|신시컴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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