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 그때 이런 일이] 조용필, 뮤지컬 공연 연기 발표

입력 2015-08-18 07: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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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조용필-그의 약혼녀 안진현(왼쪽)

■ 1994년 8월 18일

‘거장’이라는 별칭과 동급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가왕’(歌王). 조용필(사진)을 표현하는 또 다른 말이다. ‘가왕’에 등극하기까지 조용필에게 영광만 있었던 건 아니다. 1968년 그룹 애드킨즈의 멤버로 무대에 처음 나온 뒤 지난 46년 동안 숱한 좌절과 실패를 맛보기도 했다.

1994년 오늘, 조용필이 서울 강남의 한 호텔에서 기자들을 긴급히 만났다. 자신이 직접 무대에 올리려던 뮤지컬 ‘서울신화 : 어느 예술가의 초상’(서울신화)의 공연을 불과 20여일 앞두고 이를 이듬해 5월로 연기한다고 밝혔다. “준비가 부족하다”는 이유를 설명했다. 예매된 3500여장의 티켓도 환불 조치했다.

‘서울신화’는 그해 9월10일부터 30일까지 서울 호암아트홀에서 공연될 예정이었다. 뮤지컬은 1970년대를 배경으로 한 젊은 무명 가수의 이야기를 그렸다. 1975년 가수 등 연예인 대마초 사건 등도 담아 조용필의 자전적 작품으로 받아들여졌다. 대본은 조용필의 오랜 우정을 나눈 소설가 유현종 작가가 쓰고, 연출은 당시 MBC 고석만 PD가 맡았다. 조용필은 이 무대에 직접 주연으로 나서는 동시에 물론 음악감독을 맡아 모든 곡을 작·편곡했다. 그와 함께한 밴드 위대한 탄생이 연주를 맡는 것은 물론이었다.

당시는 조용필이 그해 3월 안진현 씨와 결혼한 뒤 새로운 행복에 젖어 있던 때였다. 또 뮤지컬 공연에 앞서 6월 15집을 내기도 했다. 그런 만큼 뮤지컬 공연을 연기해야 했던 조용필의 아쉬움은 더욱 컸다. 조용필은 훗날 “욕심만 앞섰지, 국내 상황을 잘 모른 채 무턱대고 덤벼들었다. 뉴욕 브로드웨이 여행 때 ‘거미여인의 키스’를 9번 관람한 적도 있다. 죽기 전에 뮤지컬을 꼭 만들어보고 싶었다”면서 “하지만 대충 하자고 생각하면 졸작에 그칠 게 뻔했다. 문 닫고 매 맞는 게 낫겠다 싶었다”(1998년 12월1일자 경향신문)고 돌아봤다.

뮤지컬은 조용필의 오랜 꿈이다. 1980년대 초반 조용필은 프랑스 파리를 찾았다 이브 몽탕의 공연이 4개월 전 이미 티켓이 매진되는 것을 보며 꿈을 더욱 키웠다. 유 작가는 1997년 4월25일자 동아일보에 “조용필은 뮤지컬에 야심 찬 꿈을 갖고 있다. 3년째 나와 브로드웨이를 들락거리며 뮤지컬 공부를 하고 있다”고 썼다. 조용필은 이후 지금까지 자신의 공연에 뮤지컬의 요소를 곁들이며 많은 팬들을 만나고 있다. ‘가왕의 꿈’은 그래서 현재진행형이다.

윤여수 기자 tadada@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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