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형모의 아이러브 스테이지] 소극장에 모인 대작 스태프들 “연애를 부탁해”

입력 2015-09-03 05: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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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연애를 부탁해’는 삼포를 넘어 사포, 오포 시대를 살아가는 오늘날 젊은이들의 애환을 다룬 작품이다. 묵직한 소재를 취했지만 가볍고 유쾌하고 웃기다. 사진제공|인아츠컴퍼니

■ 대학로 공간아울서 공연 ‘연애를 부탁해’

‘엘리자벳’ 연출·‘지킬…’ 음악 감독 등
초호화스태프진 소극장 연극 의기투합
비정규직 연인들의 스토리…롱런 예감

아메리카노, 에스프레소만 마시다 보면 가끔은 달달한 ‘맥X커피’ 같은 게 당긴다. 가루커피에 설탕과 프림을 듬뿍 넣은, 달달하고 걸쭉한 커피 한 모금 마셔주면 점심에 먹은 돼지불백이 쑥 내려가는 것만 같다. 오늘은 자판기 커피 같은 달달한 연극 한 편 소개해 드린다. 제목은 ‘연애를 부탁해’. 진한 원두 향을 내뿜는 대극장 작품에 살짝 질린 관객이라면 모처럼 가벼운 소극장 나들이하기에 딱인 작품이다. 착한 티켓 가격은 덤이다.

‘연애를 부탁해’는 뚜껑을 따기 전부터 화제가 되었던 작품이다. 그 이유가 꽤 흥미로운데, 배우들보다 오히려 스태프진이 더 화려한 보기 드문 경우였기 때문이다.

뮤지컬 ‘엘리자벳’, ‘몬테크리스토’, ‘해를 품은 달’ 등 대작 뮤지컬에서 연출(국내 연출 포함)을 맡은 박인선이 연출 겸 극작을 맡았다. 여기에 ‘지킬 앤 하이드’의 원미솔 음악감독, 유명 작품 중 그의 손을 거치지 않은 작품을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조명디자이너 구윤영, 무대디자이너 이엄지, 음향디자이너 김지현, 영상디자이너 송승규 등 한 마디로 ‘월드 클래스급’ 제작진이 참여했다. 대학로 소극장 연극 한 편을 위한 스태프진이라 하기엔 믿어지지 않을 정도다. 닭 잡는 데 소도 아니고, 드래곤 잡는 칼이 동원된 느낌이다.

‘연애를 부탁해’는 ‘비정규직 연인들의 정규직 애인되기 프로젝트’라는 모티브로 시작됐다. ‘삼포(연애·결혼·출산 포기)’를 넘어 인간관계와 주택구입까지 포기한다는 ‘사포’, ‘오포’ 세대가 되어 버린 오늘날 젊은이들의 이야기다.

비정규직의 비애, 갑의 횡포, 사교육 열풍, 연애조차 ‘썸’으로 해소해버리는 아픈 소재들이 등장한다. 극의 무대는 새로운 주거 문화가 된 셰어 하우스. 방 얻을 돈이 부족한 젊은이들이 생판 모르는 사람들과 집을 나누어 쓰는 것이다.

찌질한 소재로 찌질하지 않게 웃기는 작가의 솜씨

참으로 무거운 이야기를 무겁지 않게 풀었다. 연출 겸 작가인 박인선의 솜씨다. 군대생활을 유쾌하게 그렸던 뮤지컬 ‘스페셜레터’의 작가이기도 한 박인선은 ‘찌질하고 더러운 소재로 찌질하지 않고 더럽지 않게 웃기기’의 달인이다. 어디선가 들은 듯한 유머, 본 듯한 장면을 물에 설탕 풀 듯 자연스럽게 밀어 넣는 감각도 일품이다.

평생 비인기 종목인 전직수영선수 이정우, 강원도 영월출신의 학원강사 최미현, 9급 공무원이 꿈인 서익호, 아이돌 지망생이지만 실은 백수인 이현실이 등장인물이다. 수영 실업팀이 느닷없이 해체되면서 실업자가 되어 버린 이정우는 어머니에게 보낼 전세금을 올리기 위해 자신의 집을 셰어하우스로 내놓고 최미현, 서익호, 이현실이 하나둘씩 입주하면서 벌어지는 에피소드로 극이 진행된다.

남자 둘에 여자 둘이 한 집에 산다? 뻔한 결말에 예견된 해피엔딩이지만 연신 무릎을 쳐가며 웃지 않을 수 없도록 만들어졌다. 옥주현은 “먹어봤자 내가 아는 그 맛”이란 다이어트 명언을 남겼지만, 이런 건 ‘아는 맛이지만 손이 절로 갈 수밖에 없는 맛’에 해당한다. 서울 대학로 공간아울에서 공연 중이다. ‘옥탑방 고양이’ 이후 제대로 된 대학로 소극장 ‘롱런 작’이 출현했다.

양형모 기자 ranbi@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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