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 발리볼] 최태웅 감독, 7년전엔 현대캐피탈 울린 얄미운 선수

입력 2016-02-26 05: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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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태웅 감독은 올 시즌 현대캐피탈의 돌풍을 지휘하고 있다. 7년 전 현대캐피탈의 3년 연속 정규시즌 우승을 저지한 팀은 삼성화재였고, 당시 그 팀의 세터는 최태웅이어서 그 스토리가 흥미롭다. 스포츠동아DB

현대캐피탈 상대 챔피언결정전 4차전
주문과 다른 토스로 삼성화재 우승 견인
신치용 감독 “세터의 판단이 허 찔렀다”
‘창의적 배구’로 초보 사령탑 우승 도전

최태웅 감독이 이끄는 현대캐피탈이 2015∼2016 NH농협 V리그에서 거침없는 질주 끝에 마침내 정규리그 우승을 차지했다. 현대캐피탈로선 7년 전인 2008∼2009시즌 이후 처음인 경사다. 의미를 높이기 위해 한 시즌 팀 최다연승 신기록인 16연승으로 우승을 더욱 뜻 깊게 했다. 김호철 감독이 지휘했던 7년전 당시의 현대캐피탈은 팀 명칭 스카이워커스처럼 공중전에 특화된 팀이었다. 이선규 윤봉우 박철우 후인정 앤더슨 권영민 임시형 오정록이 멤버였다.

최태웅은 현대캐피탈의 라이벌팀인 삼성화재 세터였다. 7년 전 챔피언결정전에서 현대캐피탈을 눈물나게 했던 그 남자가 이번 시즌 현대캐피탈의 사령탑이 됐다. 스피드와 선수들의 창의력, 동기부여를 바탕으로 한 업템포 1.0배구는 시즌 내내 화제를 몰아간 끝에 해피엔딩을 이뤘다. 현명한 리더는 세상을 바꾸고 생각이 바뀌면 행동이 달라진다는 말은 맞았다.


● 삼성화재와 치열한 선두경쟁 끝에 마지막에 웃었던 2008∼2009시즌의 현대캐피탈

2005∼2006시즌, 2006∼2007시즌 연속해서 우승했던 현대캐피탈은 2007∼2008시즌 새로운 외국인선수 안젤코를 보강한 삼성화재에 무릎을 꿇었다. 김호철 감독이 훗날 “그 때 3연패를 못한 것이 가장 아쉽다. 더 공격적으로 선수를 보강하고 우승을 위해 욕심을 냈으면 V리그 역사가 달라졌을 것”이라고 했던 시즌이었다.

그리고 맞이한 2008∼2009시즌이었다. 6개 팀이 경쟁했다. 세대교체 과정인 디펜딩챔피언 삼성화재보다는 다시 정상도전에 나서는 현대캐피탈의 우승을 예상하는 전망이 우세했다. 신협상무와 켑코45는 다른 팀에 비해 전력이 떨어졌다. 대한항공과 LIG손해보험이 플레이오프 티켓을 노렸다. 4라운드 신생팀 우리캐피탈이 시범경기로 첫 선을 보였다.

삼성화재와 현대캐피탈은 시즌 마지막까지 치열한 승점경쟁을 벌였다. 우승을 결정한 것은 뜻밖에도 1∼5라운드 동안 25연패를 했던 켑코45였다. 공정배 감독(현 한국전력 단장)이 경질된 뒤 6라운드부터 분발한 켑코45는 7라운드에서 삼성화재를 잡았다. 이 바람에 현대캐피탈은 28승7패로 삼성화재를 1게임차로 누르고 정규리그 우승을 했다.



최태웅이 세터로서는 사상 처음으로 챔피언결정전 MVP가 된 2008∼2009시즌

2008∼2009시즌 챔피언결정전은 대한항공과의 플레이오프를 통과한 삼성화재 신선호(현 성균관대 감독)의 1차전 뒤 발언이 시리즈를 뜨겁게 달궜다. 3-0으로 이긴 뒤 신선호는 기자회견에서 “손에 땀을 쥐게 하는 멋진 경기를 보여드리지 못해 배구팬에게 죄송하다”고 했다. 맥없이 물러난 현대캐피탈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3세트 막판 안젤코가 관중석으로 공을 발로 찬 장면이 나왔는데 김호철 감독은 “왜 경고나 제재가 없냐”고 심판에 항의했다.

그 발언 이후 두 팀의 경기는 더욱 뜨거웠다. 김호철 감독이 “창자를 잘근잘근 씹어 먹는다는 자세로 싸우라”고 선수들을 독려한 2차전은 3-0으로 현대캐피탈이 이겼다. 3차전은 안젤코의 원맨쇼가 벌어져 삼성화재가 3-1 역전승했다. 그리고 맞이한 4차전. 풀세트까지 혈투가 이어졌다. 여기서 당시 삼성화재 세터 최태웅이 등장한다. 9-9에서 최태웅의 토스가 예상을 벗어났다. ‘당연히 안젤코에게 가야한다’고 믿었던 신치용 감독은 물론 상대 팀마저 속이고 고희진에게 향했다. 12-11에서도 안젤코 대신 신선호를 선택했다. 2번의 속공은 모두 성공했고 삼성화재는 결국 우승했다.

세터로서는 처음으로 챔피언결정전 MVP에 오른 최태웅은 “승부처에서 흐름상 속공이 통할 것으로 믿었다. 토스하는 순간 상대 블로킹이 제대로 따라오지 못하는 것을 봤다”고 했다. 신치용 감독은 “감독과 세터의 판단이 서로 다르면 범실이 날 때가 있다. 안젤코를 믿자고 주문했지만 세터가 나름대로 상대 허를 잘 찔렀다”고 했다.

이날의 기억은 2009∼2010시즌 두 팀의 챔피언결정전 7차전 5세트에서 신치용 감독을 움직이게 했다. 최태웅 대신 유광우를 선택한 결정의 단초가 됐다. 최태웅은 시즌 뒤 삼성화재로 이적한 FA 박철우의 보상선수로 현대캐피탈 유니폼을 입게 됐다.


감독 최태웅은 현대캐피탈을 어떻게 변화시켰나

성인 남자배구를 대표하는 명장 신치용 김호철로부터 많은 것을 배운 최태웅 신임감독은 올 시즌 현대캐피탈 선수들의 생각을 변화시켰다. 그동안 꼭 이겨야 한다는 부담에 항상 마음이 급했고 몸이 무거워졌던 선수들이었다. 부담 대신 재미와 창의력, 동기부여를 주기 위한 감독의 노력이 놀라운 변화의 시발점이었다. 지난 시즌과 비교해 선수구성에서 특별하게 달라진 것은 없지만 감독교체가 이처럼 상상하기 어려운 변화를 만들어낼 줄은 몰랐다. 선수들이 자발적으로 하고자 하는 의욕이 생기도록 한 젊은 감독의 비전과 설득이 만든 결과였다.

시즌 전 출발은 기대보다 걱정이 앞섰다. 전반기까지만 해도 새로운 배구의 실험결과는 누구도 장담하지 못했다. 하지만 4라운드 이후 현대캐피탈은 결점을 줄이며 완전체를 향해 스스로 진화했다. 그 변화는 진행형이고 선수들의 창의력과 흥이 가미되면서 상대 팀이 쉽게 대하기 힘든 단계에 왔다. “솔직히 지금 현대캐피탈하고 경기하기가 무섭다. 워낙 플레이가 빠른 데다 네트 저편에서 4명의 선수가 여기저기에서 솟아오르는데 어디에서 공이 날아올지 모르겠다. 망신당할 수 있어 부담스럽다.” 어느 구단 관계자가 현대캐피탈과의 경기를 앞두고 했던 넋두리다. 현대캐피탈의 업템포 1.0배구는 봄배구에서도 상대팀에게 공포다.

김종건 전문기자 marco@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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