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널 기다리며’ 심은경, 자만을 버리고 초심을 찾다

입력 2016-03-09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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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나 꼭 TV에 나와서 연기할거야.”

어린 시절 심은경은 어머니께 이렇게 말하곤 했다. 당시 9살의 나이, 이토록 연기를 하고 싶어 하고 좋아했던 소녀. 현재 그 소녀의 이름 앞에는 ‘최연소 흥행퀸’, ‘충무로 대세 배우’ ‘연기파 배우’ 등 무거운 수식어들이 따라다닌다. 과연 그 소녀는 지금 행복할까?

지난 2003년 드라마 ‘대장금’의 단역으로 데뷔한 심은경은 ‘써니’(2011), ‘광해, 왕이 된 남자’(2012), ‘수상한 그녀’(2014)로 약 2800만 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최연소 흥행퀸’이라는 수식어를 얻게 됐다.

하지만 이후 일본 드라마 ‘노다메 칸타빌레’를 원작으로 한 KBS2 드라마 ‘내일도 칸타빌레’에서 뜻하지 않게 연기력 논란에 휩싸이게 된다.

마음고생을 적잖이 했을 터. 그런 그녀가 데뷔 13년 만에 처음으로 스릴러 장르에 도전하는 모험을 택했다.

“스릴러 장르에 관심이 많아서 도전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런 저런 시나리오를 보던 중 ‘널 기다리며’ 속 희주 캐릭터가 기존에 봐왔던 캐릭터와는 다른 오묘한 매력이 있어 선택하게 됐죠. 어린 아이 같은 순수한 면과 동시에 복수에 차있고 내면에 괴물이 존재하는 잔인성이 공존하는 캐릭터여서 끌렸어요.”


하지만 희주 캐릭터는 데뷔 13년차 배우 심은경에게도 쉽지 않았다. 죽은 아빠의 동료 형사 대영(윤제문)의 도움으로 경찰서에 출근하며 월급을 받고 생활하는 안타깝고 순수한 소녀지만, 집에서는 살인 사건 기사들을 수집하며 15년 동안 아빠를 죽인 살인범이 출소하는 날만을 기다리는 복수에 가득 찬 캐릭터. 심은경은 희주를 연기하면 할수록 고민에 빠지게 된다.

“희주는 다른 영화를 준비할 때보다 고민이 많이 됐어요. 오히려 영화를 들어가기 전에는 이 캐릭터를 쉽게 이해했었는데 막상 시나리오를 읽고 감독님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마냥 쉽게 생각할 수 있는 캐릭터가 아니었죠. 희주 안에는 철학적 메시지도 담겨 있고, 실제로 희주의 입에서 그런 대사들이 나오고, 순수함과 잔인함 양극단의 모습이 공존하면서 대사도 문어체였어요. ‘어떻게 내가 튀지 않고 관객들이 이 캐릭터에게 잘 이입될 수 있도록 할 수 있을까’가 어려운 숙제였어요.”

‘숙제’. 자신이 연기해야할 캐릭터에 대한 고민을 이렇게 표현한 심은경의 발언에서 그녀가 가졌을 부담감을 짐작할 수 있었다.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던 심은경은 앞서 ‘써니’나 ‘수상한 그녀’에서와는 다른 접근 방식을 취했다.

“‘써니’나 ‘수상한 그녀’는 프리단계부터 미리 짜고 들어간 게 있었어요. ‘써니’에서 나미를 순수하고 어리벙벙한 캐릭터로 설정하고 빙의 장면에서도 감독님과 연습을 많이 하고 들어갔죠. ‘수상한 그녀’도 나문희 선생님과 많이 맞춰보고 감독님과 프리단계 때 이야기를 많이 나누고 들어갔어요. 두 작품 다 촬영하면서 제가 가졌던 의문들이 풀렸던 케이스였죠. 그런데 이번엔 완전히 반대 경우였어요. 이 캐릭터는 계산을 하고 짜면 오히려 방해가 될 것 같은 느낌이 들었죠.”


데뷔 13년차지만 아직 23살의 어린 나이, 선뜻 공감하기에는 힘든 캐릭터였고 심은경이 자신만의 희주를 만들어 나가는 과정이란 쉽지 않았다.

“촬영하면서 대사 처리 부분이 가장 신경 쓰였어요. 문어체가 베이스인 캐릭터여서 제가 기존에 해왔던 캐릭터 대사와는 달랐죠. 그래서 최대한 감정을 배재하고 아무렇지 않게 내뱉듯이 대사하려고 노력했어요. 또 희주의 모습을 극단적으로 보여주는 것보다는 진짜 희주가 가졌을 감정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15년 동안 복수를 품고 산 이 친구의 이중성과 광기어린 모습을 극명하게 보여준다고 해서 관객들이 진짜 소름이 돋을까. 그게 진짜 선악을 보여줄 수 있는 최선일까. 의문이 들었죠.”

끝없는 고민의 소용돌이. 심은경은 희주를 연기할수록 힘들어져야 했다. 이는 비단 캐릭터에 대한 것뿐만 아니라 스스로에 대한 의문점에서 시작됐을 터. 배우로서 나아가야할 길, 스스로에 대한 성찰, 내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들은 깊어져만 갔다.

“얼마 전까지 부담이 컸어요. 감사하게도 저에게 많은 수식어를 달아주시는데 과연 거기에 걸 맞는 사람인가 하는 생각이 스스로 들었죠. 뭐가 맞는 건지 분간이 안가고, 어떤 배우의 길을 가야하는 건지, 명성을 얻고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걸 선택해야 하나, 아니면 내가 하고자 하는 것에 주력을 해야 하나. 갈등도 있었고 많이 흔들렸어요.”


심은경은 ‘성공·정상’이라는 다소 위험할 수 있는(?) 단어를 과감하게 사용하며 자신이 가졌던 고민을 솔직하게 털어놨다. 한 치의 거짓도 없었다. 그렇게 ‘널 기다리며’ 촬영이 끝나고 스스로에게 솔직해진 끝에 심은경은 자신이 나아가야 할 길을 찾게 됐다.

“대중의 시선도 많이 의식했고 너무 위만 보고 빨리 정상에 가고 싶다는 생각만 한 것 같아요. 돌이켜보면 그게 전부가 아니고 내가 진짜 행복해질 수 있는 삶이 아닌데. 연기를 너무 하고 싶었고, 할 수 있다는 자체만으로도 행복했었던 시절이 있었는데 그 모습을 잃어버린 느낌이어서 후회도 반성도 많이 했어요. 너무 자만했고 복에 겨운 생각을 많이 한 것 같아요.”

마지막으로 심은경이 강조한 것은 ‘초심’이었다. 너무 당연해서 오히려 낯설게 느껴지는 그 말. 흔하디흔한 말이지만 지키기는 가장 어려운 그것 ‘초심’.

“연기 하나만 생각하던 그때의 그 초심을 다시 찾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요. 또 연기가 너무 하고 싶고요. 더 이상 스스로 자만에 빠지지 않고 제가 가진 신념을 잃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이제 스스로 많이 담담해지려고 해요. 물론 부담감도 없지 않아 있지만 그 역시도 감사하고 제 일에 묵묵히 최선을 다하는 게 현재 제가 내릴 수 있는 결론인 것 같아요.”

동아닷컴 김미혜 기자 roseline@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사진|동아닷컴 국경원 기자 onecut@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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