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형모의 아이러브 스테이지] 금요일 밤 달달한 사랑의 에피소드

입력 2016-06-23 05: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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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모스트 메인’은 오로라를 볼 수 있는 미국 북동부의 가상의 작은 마을에서 한 날에 일어난 에피소드를 묶은 연극이다. 각 에피소드마다 두 명의 연인이 등장해 예쁘고 애틋한 사랑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사진제공|공연배달서비스 간다

■ 연극 ‘올모스트 메인’

옴니버스 형식의 남녀 이야기
참 능청스러운 김호진의 연기
이지숙·김지민의 코믹도 좋아


참 예쁜 연극이다. 10대 시절, 여자친구에게 줄 생일선물을 사기 위해 아파트 상가를 대여섯 바퀴나 돌고 난 뒤에야 고른 소품 같은 연극이랄까.

‘나와 할아버지’, ‘유도소년’, ‘뜨거운 여름’을 선보인 극단 간다의 작품이다. 간다는 팬층이 두터운 대학로 간판 스타극단이다. 배우도 아닌 극단이 고정 팬층을 보유하고 있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다. ‘믿고 보는 극단’이란 별명도 갖고 있다.

올모스트 메인은 그러니까, ‘거의 주연이 될 뻔한 배우 이야기’는 아니고 마을의 이름이다. 미국 북동부에 있는 메인 주에서도 북쪽의 세 마을이다. 진짜 이런 마을은 없다. 작가가 만들어낸 가상의 마을이다. 워낙 벽촌이라 지번 정리가 되지 않아 지도에도 나오지 않는다. 머지않아 메인 주에 편입이 된다고 해서 ‘거의 메인으로 보면 된다’라는 의미의 ‘올모스트(Almost) 메인’으로 불린다.

황량하기 그지없는 이 마을의 유일한 매력은 오로라를 볼 수 있다는 점이다. 연극 올모스트 메인은 달빛도 없는 한 겨울, 차갑고 청명한 금요일 밤에 동시다발적으로 벌어지는 사랑의 에피소드를 그린 작품이다. 옴니버스 형식으로 보면 되겠다. 작가(존 카리아니)의 솜씨가 대단해 정말 단 하나의 에피소드도 버리고 싶지 않다. 정확히 있어야 할 자리에, 딱 필요한 만큼만 음표를 사용했다는 모차르트의 작품을 마주하는 기분이다.


● 에피타이저부터 디저트까지, “버릴 게 없는 애틋한 사랑의 만찬”

그 중 몇 가지를 소개하고 싶다.

‘통증(The Hurts)’는 세탁실에서 벌어지는 에피소드이다. 선천적으로 통증을 느끼지 못하는 남자와 우연히 마주친 동네주민 여자의 이야기. 실수로 다리미판을 휘둘러 남자를 때리지만 남자는 “괜찮다. 나는 통증을 느끼지 못 한다”며 당황해 하는 여자를 안도시킨다. 마지막 반전이 깜찍하다.

‘슬픔과 기쁨(Sad and Glad)’도 좋아하는 에피소드. 헤어진 여자친구를 술집에서 재회한 남자의 이야기이다. 자신이 아버지의 사업을 이어받게 되었다는 것(이제 백수가 아니야), 친구들과의 추억(그땐 참 즐거웠는데) 등을 장황하게 늘어놓던 남자는 “관계를 다시 시작하고 싶다”는 말을 어렵게 꺼낸다. 하지만 돌아온 답변은 “나 내일 결혼해”. 웃으며 여자를 보낸 남자는 여자가 사라지자 비로소 슬픔에 빠진다. 오열 직전의 남자에게 웨이트리스가 다가와 말을 건넨다. “오늘은 금요일 밤. 슬픈 일이 있는 사람은 맥주가 공짜예요.”

우리말로 뭐라 표현해야 적당할까. ‘Seeing the Thing’은 올모스트 메인의 에피소드 중에서 가장 빵빵 터지는 이야기다. 오랫동안 막역한 친구로 지내온 남녀가 한 침대로 들어가기까지, 여자 집 안마당에서 벌어지는 에피소드를 그린다. 여자 역의 선머슴 연기가 이 에피소드의 압권이다. 배우 정선아가 이 배역의 간판이었는데, 이번 시즌에서는 김지민·유주혜·서은아가 연기한다. 툭하면 남자의 뒤통수를 갈기고 엉덩이를 향해 돌려차기를 날리는 터프한 여인이다.

개인적으로는 이 작품의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를 참 좋아한다. 그러니까 요리로 치면 에피타이저와 디저트다. 하나의 에피소드를 나누어 전반부는 프롤로그로, 후반부는 에필로그로 사용했다. 작가의 감각이 반짝반짝하다.

벤치에 앉은 남녀의 이야기이다. 갓 사랑을 시작하려는 사이다. 지구는 크고 둥글다. 두 사람이 가까이 다가갈수록, 물리적으로 두 사람은 (시각에 따라) 점점 멀어진다. 떠나가는 여자를 향해 남자가 외친다. “우린 더 가까워지고 있어. 가까워진다!”. 여기까지가 프롤로그. 과연 두 사람은 어떤 에필로그를 맞이하게 될까.

이 작품의 문을 열고 닫는 김호진의 연기가 참 능청스럽다. 관객을 웃길 수 있는 ‘계산’이 가능한 배우이다. 군더더기가 없다. 노래를 참 잘 하는 뮤지컬 배우이기도 한 이지숙과 김지민의 코믹연기도 흥미롭다. 두 사람이 귀엽게 망가지는 연기를 볼 수 있는 작품은 올모스트 메인 밖에 없을 것이다. 이지숙의 “나 내일 결혼해” 장면이 참 좋았고, 김지민의 오른발 돌려차기는 굉장했다!

7월3일까지 서울 대학로 상명아트홀 1관에서 공연한다. 막공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조금 서둘러야겠다.

양형모 기자 ranbi@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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