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준의 18.44m] 김성근 감독이 뭇매 맞는 이유

입력 2016-06-23 05: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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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근 감독은 2014년 11월 청와대 강연에서 “리더가 욕을 바가지로 먹어도 내 뒤의 사람이 편하게 일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지금 한화는 그런 팀인가? 스포츠동아DB

위장 선발=승부수, 혹사=벌떼야구 미화
150억원 투자한 구단에게 “돈 없다” 불평
약자 위하는 국민정서 불구 팬들 비난 쇄도



#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은 추리소설의 형식을 띠지만 본질은 열린사회와 닫힌사회의 대립을 이야기한다. 중세 유럽의 수도원에서 연쇄적으로 수도사들이 살해된다. 열린사회를 상징하는 영국 출신 윌리엄 수도사가 미궁 속의 의혹을 풀어 가는데 끔찍한 것은 연쇄살인 자체가 아니라 그 동기였다. 예수님의 웃음에 관한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을 수도사들이 읽지 못하도록 수도원의 권력자이자 닫힌사회를 상징하는 호르헤 수도사가 책에 독을 바른 것이다. 수도원이라는 폐쇄된 공간의 권력자는 관용이 아니라 말살을 통해 세상의 진보를 막으려 한 것이다. 내 이상이 옳기에 내가 행하는 수단까지 정당화된다는 발상이 섬뜩하다.


# 기자는 본질적으로 정보유통업자다. ‘기레기(기자와 쓰레기의 합성어)’라는 조롱에는 ‘기자가 정보를 자극적으로 왜곡하거나 정말 독자들에게 필요한 정보를 못 준다’는 대중의 불신이 깔려있다. 통신기술이 발전할수록 취재원과 대중을 중계하는 저널리즘의 위기는 심화될 수밖에 없다. 뉴욕대 미첼 스티븐스 교수의 ‘지혜의 저널리즘’에서는 ‘이제 뉴스는 팩트가 아니라 관점을 제시해야 한다’고 선언한다. 이 세상에 객관적 진실은 없다는 전제가 깔려있다. 가령 한화 감독이 아무리 무소불위의 권력자일지라도 그의 말이 한화 야구단의 진실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다. 그저 한화 감독의 ‘견해’일 뿐이다. 그러나 과거에, 어쩌면 지금도 일부에서 그의 말은 ‘복음’처럼 받아들여졌다. 이견을 표현해 ‘역린’을 건드리면 ‘파문’당하기 십상이다. 한국사회의 병폐인 파시즘적 폭력에 다름 아니다.


# 최근 만난 중견급 현역 야구감독은 “야구가 변했다”는 말을 했다. 이제 ‘제아무리 감독이라도 이상한 야구를 하면 팬들이 가만두지 않는 세상이 됐다’는 뜻으로 들렸다. 예전엔 팀의 사정을 가장 잘 안다는 보호막을 가진 감독의 말은 무비판적으로 수용됐다. 감독의 영향권 아래 놓인 기자가 설령 정보를 비틀어도 그런 줄 알아야 했다. 위장선발은 승부수로, 혹사는 벌떼야구로, 사인훔치기는 당한 놈이 바보로, 150억원을 투자한 구단한테 “돈이 없다”고 욕보여도 그냥 통할 수 있던 시대였다. 그러나 이제 야구인과 기자는 그냥 넘어가도 팬들이 용납하지 않는 세상이 왔다. 정보의 대칭성이 이뤄진 세상에서 눈을 뜬 팬들은 ‘아닌 야구를 아닌 야구’라고 말하기 시작한 것이다. 한화야구의 혹사에 대해 “팀 내부 사정을 모르고 하는 소리”라는 감독의 일축에 굴하지 않는 비판적인 팬들이 영화 ‘스포트라이트’의 대사처럼 “아이를 키우는 것도 마을 전체의 책임이고, 학대하는 것도 마을 전체의 책임”이라고 맞서는 세상이 온 것이다.


# 김성근 감독은 2014년 11월 청와대에서 강연을 했다. 거기서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피한다는 것 자체가 리더의 자격이 없다”고 말했다. 지금 몸소 그 자격을 실천하고 있다. 강연 뒤 동아일보는 비판 사설을 실었다. ‘결과만 내면 대중은 가만있으니까 소통 따위에 구애받지 말고 뜻한 바를 강행하라’는 충고(?)는 지금 청와대가 듣고 싶은 말일 뿐이라는 요지로 기억된다. 세월이 흘러 이 강연을 다시 보니 왜 한화가 꼴찌를 하는데도 약자에 약한 국민정서에 안 맞게 적잖은 야구인, 팬들이 이 팀의 몰락을 동정하지 않는지 알 것 같다. 이제 눈을 뜬 야구팬들은 규칙을 어기는 것만 아니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기려드는 야구의 편협함과 촌스러움을 거부하는 것이다. 납득가능하고 열린 과정을 원하는 시대다. 김성근 야구를 지지하지 않는 팬 상당수는 김 감독의 무능을 탓하는 것이 아니다. 오직 자기밖에 모르는 김 감독의 무례를 혐오하는 것이다. 한국사회를 이끄는 위정자들과 기업인들이 “세상 손가락질을 이겨야 리더”라는 마인드의 소유자의 강의를 들어왔다고 생각하니 ‘장미의 이름’보다 더 섬뜩하다.

김영준 기자 gatzby@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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