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LG’ 거포들이 고백한 ‘탈잠실’ 효과의 실체

입력 2016-07-01 05: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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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 최승준-정의윤-kt 박경수(왼쪽부터). 스포츠동아DB

박병호부터… LG서 실패한 유망주 거포 변신사
올해 정의윤 16HR·최승준 15HR·박경수 13HR
홈런성 타구→뜬공 잠실구장… 멘탈·밸런스 흔들
10년간 하위권 LG, 성장 기다릴 인내심 부족


16홈런, 15홈런, 13홈런.

SK 정의윤(30)과 최승준(28), kt 박경수(32)가 기록한 올 시즌 홈런 개수다. 이들은 ‘LG 출신’이라는 공통분모를 갖고 있다. LG 시절 이들의 한 시즌 최다 홈런은 각각 8개(2005년), 2개(2014년), 8개(2008·2009년)였다.

언젠가부터 프로야구엔 ‘탈LG 효과’란 말이 정설처럼 받아들여졌다. LG를 나와 성공한 선수들이 쏟아져 나왔고, 이는 특정팀을 조롱하는 수단이 됐다. 과연 그들의 말처럼 ‘탈LG는 과학’인 걸까. 주인공들에게 직접 물어봤다.

‘탈LG 효과’는 크게 2가지 측면으로 접근할 수 있다. 우선 LG가 홈으로 쓰는 드넓은 잠실구장이다. 국내 최대 규모(중앙 펜스까지 125m, 좌·우 펜스까지 100m, 펜스높이 2.6m)를 자랑하는 잠실구장에선 다른 구장에서 홈런이 될 타구가 펜스 앞에서 잡히는 일이 다반사다. 물론 두산도 LG와 함께 잠실구장을 쓴다. 빠질 수 없는 2번째는 그간 LG의 사정과 팀 문화다.


공통점, 타자친화적 홈구장 새로 만났다

‘탈잠실 효과’는 LG에서 나온 뒤, 홈런을 펑펑 때려내고 있는 거포들이 직접 증명했다. 올해부터 메이저리그에서 다시 ‘트윈스’ 유니폼을 입게 된 미네소타 박병호는 2011년 7월 31일 트레이드 마감일에 넥센으로 이적한 뒤, 4년 연속 홈런·타점왕으로 KBO리그를 평정하고 태평양을 건넜다. 박병호는 ‘한국의 쿠어스필드’로 불렸던 목동구장에서 장타에 관한 잠재력을 완벽하게 폭발시켰다.

바로 여기 주목할 부분이 있다. 유독 작은 구장으로 옮긴 뒤 성공한 선수들이 많다. LG에서 10년 동안 기록한 홈런(31개)을 불과 1년 반 만에 기록(이적 이후 30일까지 30홈런)한 정의윤이나, 6월에만 11개를 몰아친 최승준은 KBO리그 최고 타자친화적 구장이 된 인천 SK행복드림구장(좌·우 펜스까지 95m)의 덕을 봤다. SK는 구장 특성에 맞춰 정의윤과 최승준을 연달아 영입하며 홈구장에 맞춰 선수단을 재편했다.

그들이 말하는 ‘탈잠실 효과’의 실체는?

kt의 주장 박경수도 아마추어 때의 ‘초고교급’ 타격 재능을 마음껏 뽐내지 못했던 선수다. LG 시절 유독 타격폼 변화가 많았고, 급기야 장타보다는 방망이에 맞히는 타격, 그리고 작전수행에 더 큰 비중을 뒀다. 그러나 장타가 나오기 쉬운 수원 kt위즈파크(좌·우 펜스까지 98m)를 홈으로 쓰고 나서 지난해 22홈런으로 순식간에 중장거리 타자로 변신했다.

박경수는 “아무래도 구장이 작다 보니 잘 맞았을 때 홈런이 되는 상황이 한두 번 나오면서 자신감으로 연결된 것 같다. 같은 타구도 잠실에서는 기가 막히게 ‘딱’ 맞았는데 펜스 앞에서 잡히는 경우가 많다. 그것 때문에 밸런스가 무너지는 일이 생긴다”고 밝혔다.

잘 맞은 타구에 밸런스가 왜 무너지는 걸까. 그는 “홈런이 될 수도 있는데 외야 플라이로 아웃이 되면, 선수는 ‘더 강하게 쳐야지’, 혹은 ‘짧게 쳐야지’라는 생각을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야구는 멘탈게임이다. 똑같은 타구도 결과가 큰 차이를 불러올 수 있는 셈이다.

정의윤도 비슷한 얘길 했다. 그는 “넘어갈 법한 타구가 워닝트랙에서 잡히면 정말 허무하다. 타율, 홈런, 타점 모두 연관돼 있는데 타자로선 자꾸 반복되면 힘이 빠질 수밖에 없다. 반면 잠실이든 작은 구장이든 넘어가면 똑같은 홈런이다. 아슬아슬하게 넘어가도 타자는 기분이 좋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물론 여전히 잠실은 크다. 그러나 한 번 자신감을 찾은 이들은 잠실에 가도 똑같이 ‘자기 스윙’을 가져간다. 모두가 입을 모아 “이제 잠실이라고 다른 건 없다. 똑같이 스윙한다”고 말한다.

‘암흑기’ LG, 선수 기다려줄 여유 없었다

물론 ‘탈잠실’만으론 ‘탈LG 효과’ 모두를 설명할 순 없다. 또 다른 비밀은 그간 LG의 사정에 있다. LG는 2002년 한국시리즈 준우승 이후 무려 10년 동안 가을야구를 경험하지 못했다. 하위권을 전전하는 사이 젊은 선수들에게 기회를 주고도 인내심이 부족했다. 그 사이 코칭스태프의 교체도 잦아지면서 팀의 방향성도 오락가락했다. ‘탈LG’ 거포들이 성장할 ‘골든타임’을 놓친 셈이다.

박경수는 “A급 선수라면 큰 타구가 잡혀도 자기 메커니즘을 유지한다. 그러나 자기 자리가 확실한 선수가 아닐 경우, 그 타구 하나 때문에 ‘내일 못 나가겠다’고 생각할 수 있다”는 중요한 말을 남겼다. 빅리거 박병호도 LG 시절 오랜만에 1군 타석에 들어서도 ‘못 치면 다시 2군’이라는 압박에 시달렸다. 이들이 ‘잠실 거포’가 되기까지 인내심이 미치지 못했다.

LG는 이제 거포 유망주들을 모두 정리했다. 과거 두산이 드넓은 잠실구장에 발맞춰 ‘육상부’를 구성했듯, 기동력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더 이상 배 아플 일이 없으려면 갑작스런 방향 전환은 없어야 한다.

이명노 기자 nirvana@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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