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18년째…큰 행복 만든 ‘추캥’의 기적

입력 2016-09-06 05: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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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지난해 충남 논산에서 열린 ‘추캥’ 자선경기에서 정대세(왼쪽)가 연제민과 볼을 다투며 즐겁게 뛰고 있다. ② 논산시 어린이들이 경기장 한편에 모여 선수들과의 만남을 기다리고 있다. ③ 추캥은 6·25전쟁 참전용사 및 미망인들을 위한 플래카드를 제작해 감사의 뜻을 전했다. ④ 서울이랜드FC 박건하 감독(오른쪽)이 결연증서를 전달하고 있다. ⑤ 정성룡, 이호, 백지훈(왼쪽부터)이 팬들에게 사인을 해주고 있다. 사진제공|오장은 수원삼성 선수

2. 축구선수 자선모임 ‘추캥’

동네 조기축구회 자선행사로 출발
이젠 올스타전 방불 화려한 라인업
오장은 “8∼9월만 되면 피가 끓어”


매년 K리그를 마친 12월이면 귀중한 휴가를 반납하고 가슴속부터 따뜻해지는 겨울을 나는 이들이 있다. 축구선수들이 한마음으로 모여 만든 봉사단체 ‘추캥(축행·축구로 만드는 행복)’이다. 1999년 시작된 추캥의 나눔활동은 선수들뿐 아니라 팬들의 폭발적 관심이 더해지며 어느덧 한국축구를 대표하는 상징적이고 모범적인 봉사활동으로 자리매김했다. ‘배려’를 실천하는 축구계의 간판 모임이다.


● 작은 마음이 모여 전국구가 되기까지

추캥의 시작은 경상남도 함양군 안의면의 작은 시골이었다. 산 좋고 물 좋은 곳에 몸과 마음을 치유하기 위해 아는 선수들만 모여드는 쉼터에서 비롯됐다. 추캥의 핵심 멤버인 오장은(31·수원삼성)을 비롯해 정혁(30·안산무궁화)과 조성환(34·전북현대) 등 창립 멤버는 조촐했다. 프로선수는 7∼8명에 불과했고, 아마추어선수들을 합쳐도 겨우 11명이었다. 동네 주민들의 배려에 보답하는 마음으로 출발한 추캥은 해를 거듭하며 규모를 불려나갔다. 첫 해에는 동네 조기축구회와 함께 공을 차고, 직접 구매한 공을 기부하는 방식으로 소박하게 치러졌다. 이후 보육원, 양로원 등 손길이 필요한 동네 곳곳으로 범위를 넓혀나갔고, 정성을 모아 불우이웃을 위한 기부금도 전달했다. 최근 들어서는 지역을 불문하고 군부대를 방문하거나 자선축구대회를 열며 더욱 많은 이들에게 손을 내밀고 있다.

올해로 벌써 18년째를 맞은 추캥은 이제 한국축구선수라면 한 번쯤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이 없을 정도로 인기가 뜨겁다. 매년 열리는 자선경기 때는 올스타전을 방불케 하는 화려한 라인업이 꾸려진다. 오장은도 “초창기에는 선수들에게 참여를 부탁하는 식이었는데, 이제는 선수들이 ‘올해는 언제해요?’라고 먼저 물어온다. 지금은 누가 멤버라고 정해놓은 것이 없다. 일단 하고자 하는 의지가 있는 선수라면 누구든 참여할 수 있다”며 웃었다.


● 선수들의 손으로 직접 만드는 나눔 축제

선수들의 자발적 모임인 추캥에선 작은 것 하나까지 선수들의 손길을 거치지 않는 것이 없다. 단체 이름과 로고도 선수들이 직접 머리를 맞대고 만들었다. 자선행사를 앞두고는 선수단이 타고 갈 버스 대절부터 숙소 예약, 장소 섭외와 스케줄 조정, 사인볼 제작 등이 모두 선수들의 몫이다. 뜻을 함께하는 축구용품업체 ‘두사커’에서 유니폼을 지원받을 뿐, 나머지는 누구의 도움도 없이 오직 선수들의 힘으로 꾸려진다.

자선경기의 열기가 후끈 달아오르면 행여나 선수들이 부상을 당할까봐 긴장을 늦출 수 없다. 지난해 논산에서 열린 자선경기에 참가했던 정대세(32·시미즈 에스펄스)는 골을 넣고 덤블링 세리머니를 펼친 뒤 절뚝이는 바람에 오장은을 깜짝 놀라게 했다. 오장은은 “선수가 부상을 당하면 책임질 사람이 나뿐이라 가슴이 철렁했다. 행사를 열 때마다 축구가 제일 쉽다는 것을 느낀다”며 당시를 떠올렸다.

자선행사를 준비하며 포기하고 싶은 순간도 많지만, “고생했다. 좋은 시간이었다. 내년에도 또 불러달라”는 동료들의 말은 나눔활동을 이어가는 원동력이 된다. 오장은은 “행사를 딱 끝낸 뒤에는 기분 좋은 뿌듯함이 몰려오지만, 또 막상 준비하려면 정말 힘들다”며 “다시는 하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면서도 8∼9월이 되면 ‘또 하고 싶다’는 의욕이 끓어오른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 베풂보다 더 큰 배움

축구로 받은 사랑을 되돌려주기 위해 시작한 일이지만, 어느새 얻어오는 것이 더 많아지기 시작했다. 어려운 이들에게 먼저 다가가면서 세상을 보는 눈이 생겼다. 오장은은 “6·25전쟁 참전용사와 미망인 분들 덕분에 우리가 지금 행복하게 살 수 있는데, 국가 지원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어렵게 살고 계신다는 것을 알고 정말 놀랐다. 이후로 계속해 그분들을 돕고 있다”며 “군인들이 있기에 우리는 마음 편히 살 수 있다. 내가 더 열심히 축구를 해야 한다는 것을 느꼈다”고 설명했다.

나눔의 장을 넘어 배움의 터전이 된 추캥에는 연령제한이 없다. 프로선수가 아니더라도 매년 인연이 닿는 고등학생 아마선수들이 2∼3명씩 행사에 참가한다. 어린 친구들이 몸소 경험해보고 ‘나도 훌륭한 선수가 돼 저런 좋은 일을 하고 싶다’는 꿈을 가졌으면 하는 바람에서다. 오장은은 “추캥과 비슷한 단체들이 더 많이 생겼으면 하는 바람이다. 서로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 더 많은 축구인이 기부나 자선행사를 많이 열었으면 한다”며 “여기서 경험해보고 ‘나도 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면 그 친구도 새롭게 만들면 된다”고 말했다.

추캥 스스로도 축구를 매개로 한 또 다른 꿈들을 꾸고 있다. 오장은은 “축구 하나만으로도 할 수 있는 게 많다. 다만 선수들은 축구밖에 몰라 하지 못하는 것일 뿐이다”며 “추캥을 통해서 나눔을 널리 퍼트리면 언젠가는 축구도 우리나라에서 제일 사랑받는 종목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소망을 밝혔다.

서다영 기자 seody3062@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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