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파고가 인터넷에 출현? 바둑계 발칵

입력 2017-01-05 05: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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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ster’와 커제의 인터넷 대국 장면

‘master’ 아이디로 세계 초고수들 연파
알파고 추정…커제 꺾고 20연승 달성


새해 벽두부터 바둑계가 발칵 뒤집혔다. 인터넷 바둑사이트에 듣도 보도 못한 인물(?)이 등장해 전 세계 초고수들을 향해 도전장을 던졌기 때문이다. 일단 그 도전장이 당돌하기 짝이 없었다. ‘master’라는 아이디를 사용하는 이 존재는 인터넷 바둑사이트 한큐바둑 게시판에 다음과 같은 내용의 공지를 올려 고수들을 자극했다.

▲본인은 1월2∼3일 딱 이틀간 20판의 대국을 하겠다 ▲대국신청을 하면 수락 여부는 본인이 결정한다 ▲본인을 처음 이기는 자에게 10만위안(1700만원)을 주겠다.

문제는 ‘별 미친!’, ‘뭐 이런 놈이!’하고 달려들었던 한중일의 고수들이 추풍낙엽이 되어 떨어져 나갔다는 점이다. 고수도 그냥 고수가 아니라 각국의 1인자들이다. 아마추어가 아니라 프로들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master는 자신이 공언한 20판의 대국을 모두 채웠고, 20연승을 거뒀다. 전성기 시절 이세돌과 1인자를 다퉜던 구리 9단이 초반 2연패를 장식(?)하더니 퉈자시, 스웨, 탄샤오와 같은 강자들이 줄줄이 바둑판 위에 누웠다. 일본에서는 이야마 유타가 나섰지만 역시 완패. 한국은 김지석(한국랭킹 7위), 강동윤(9위), 박영훈(6위), 안성준(4위), 원성진(10위)이 master의 밥 신세가 됐다. 아직도 실감하지 못하고 있다면 좀 더 충격적인 사실을 알려드리겠다. 뒤늦게 등판한 한국 1위 박정환이 깨졌고, master 20연승의 마지막 제물은 중국의 1인자 커제 9단이었다.

대국을 지켜 본 프로기사와 바둑팬들은 master가 지난해 이세돌 9단과 세기의 대결을 벌였던 인공지능 알파고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바둑사이트의 한 관계자는 “master가 알파고일 가능성은 99.999%”라고 장담할 정도. 이세돌과 대국할 당시보다 더 강해진 ‘업그레이드 알파고’라는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지난해 연말 또 다른 바둑사이트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는 점이다. 현상금을 내걸지는 않았지만 magister라는 ‘듣보잡’ 9단이 등장해 프로기사들을 상대로 무려 30연승을 기록하고 홀연히 사라진 사건이 있었다. 바둑계에서는 이 magister가 master일 것이라는 의심의 눈길을 보내고 있다. 만약 master가 알파고라면, 세계 바둑최강자들을 상대로 무려 50연승을 올렸다는 얘기가 된다.

대국내용은 더욱 혀를 내두르게 만든다. 중반도 아니고 초반 10∼25수 언저리부터 이미 master는 우위를 점했다. 무리하지 않고 부드럽게 큰 곳을 선점해 가는 master의 기풍은 고수의 풍모를 여실히 느끼게 했다. 20승 중 17승이 불계승이었다. master의 강함을 뼈저리게 체험한 구리 9단은 인간진영의 20연패를 지켜본 뒤 씁쓸히 이런 말을 남겼다.

“50연승. 생각해본 적은 있지만 막상 이렇게 당면하니 나를 비롯한 프로기사들이 부끄럽구나. 영원히 변치 않을 것이라 여긴 정석과 바둑의 진리가 master의 출현으로 완전히 파괴되었다. 잘 자자. 그리고 아름다운 내일을 영접하러 가자.”

양형모 기자 ranbi361@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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